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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저 정리/조선시대사38

세종대 척도의 탄생: 주척과 황종척을 중심으로 문중양, 2021, 「세종대 척도의 탄생: 주척과 황종척을 중심으로」, 『동방학지』 196 2023.09.21. 1. 머리말 1) 세종 28년 도량형제 상정 ① 세종 28년(1446) 민간에서 사용하는 척도의 표준을 상정했고 『경국대전』에도 그대로 수록 ② 상용되지 않는 척도인 ‘황종척’을 상용 척도의 기준으로 제시 2) 선행 연구 ① 세종 28년에 상정된 도량형제에 관한 실증적 연구 진행(박흥수, 남문현, 이종봉, 이숙희) 조선의 주척 약 20.6cm (cf. 중국 약 23.1cm) 조선의 황종척 약 34.6cm (cf. 송대 악률척 24.5cm, 28.06cm, 30.1cm) ② 여전히 남은 문제들 사용하지 않는 황종척을 왜 상용 척도의 기준으로 삼았는가? 중화 문화 수용을 추구한 조선의 주척과 황종.. 2023. 9. 23.
「뇌뢰낙락서」를 통해 본 이덕무의 역사인식 「뇌뢰낙락서」를 통해 본 이덕무의 역사인식 (2020, 『역사를 바라보는 실학자의 시선 』, 경인문화사) 2022.10.17 역사를 바라보는 실학자의 시선(양장본 Hardcover) 역사는 과거의 일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와도 이어진다. 〈역사를 바라보는 실학자의 시선〉은 10명의 저자들이 중국의 것이나 과거 고대에서 주로 영광을 찾던 시대에 과학, 지리, 언어, 예술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우리의 문화’를 이루어냈던 실학자들의 정신을 통해 그들이 과연 역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를 다루었다. 대표적인 실학자 성호이익을 통하여 실학자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현실주의적 관점이다. “천하의 일은 시세時勢가 최상이고, 행?불행이 다음이요, 옳고?그름은 최하이다.” 〈성호.. 2023. 1. 13.
서명응의 역사학과 역사비평 김남일, 2020, 서명응의 역사학과 역사비평: 『자치통감강목삼편』의 편찬배경과 정통론의 시대적 의미 2022.09.26 역사를 바라보는 실학자의 시선(양장본 Hardcover) 역사는 과거의 일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와도 이어진다. 〈역사를 바라보는 실학자의 시선〉은 10명의 저자들이 중국의 것이나 과거 고대에서 주로 영광을 찾던 시대에 과학, 지리, 언어, 예술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우리의 문화’를 이루어냈던 실학자들의 정신을 통해 그들이 과연 역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를 다루었다. 대표적인 실학자 성호이익을 통하여 실학자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현실주의적 관점이다. “천하의 일은 시세時勢가 최상이고, 행?불행이 다음이요, 옳고?그름은 최하이다.” 〈성호사설.. 2022. 10. 6.
조선시대 대비 지위와 인조반정의 재검토 오수창, 2022, 「조선시대 대비 지위와 인조반정의 재검토―계승범 교수의 『모후의 반역』 비판」, 『역사비평』 140 2022.09.16 모후의 반역선조와 의인왕후는 혼인한 지 20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다. 대군이 없으면 군이라도 하루빨리 세자로 책봉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선조는 탐탁지 않게 여기고 후계자 선정에 반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발발한 임진왜란은 선조로서도 더 이상 후계자 선정을 미룰 수 없게 만들었다. 마침내 선조와 신료들의 합의에 따라 광해군이 세자의 지위에 올랐다. 광해군은 선조의 후궁인 공빈 김씨의 아들로, 적자도 아니고 맏아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선조의 여러 왕자들 가운데 광해군은 가장 총명하고 어진 성품으로 신료들의 신망을 받았다. 왜군이 한양까지 점령한 상황에서 선조는 요동.. 2022. 9. 16.
효종의 국장 및 실록인출, 천릉역사에 참여한 각수 연구 효종의 국장 및 실록인출, 천릉역사에 참여한 각수 연구 (김상호, 2010, 효종의 국장 및 실록인출, 천릉역사에 참여한 각수 연구, 『서지학연구』 47) 2022.06.08. 1. 서언 • 조선은 王室役事를 통해 옥책ㆍ죽책ㆍ지석 등 다양한 기록류를 생산 → 刻手 동원 • 木刻手와 石刻手: 각수의 활동 및 작업 영역의 중복 여부를 검토할 필요성 • 검토 대상: 효종 국장, 『효종실록』 편찬, 영릉 천봉에 참여한 각수의 활동 영역 2. 각자의 일과 각수동원 (1) 국장 • 『효종국장도감의궤』(1659): 시책ㆍ애책ㆍ죽책ㆍ지석 등의 각자에 관한 상세한 내용 수록 구분 글자수 분량 재질 찬자 서사 시책 575자 12첩 72간 南陽 靑玉 조형(상호군) 송준길(이조판서) 애책 929자 20첩 - 이일상(대제학) .. 2022. 6. 13.
조선후기 화성 경관의 시각화 양상과 화성전도 조선후기 화성 경관의 시각화 양상과 화성전도 (박정애, 2021, 「조선후기 華城 경관의 시각화 양상과 華城全圖」, 『한국고지도연구』 13-2) 20220413 1. 머리말 • 수원화성도: 성역 준비부터 마무리까지의 과정을 반영 → 1789년(정조 13)~1801년(순조 1) 집중 제작 ‣ 성역이 완료된 화성 일대의 풍경을 살필 수 있는 시각 매체 ‣ 화성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의미가 투영된 회화 사료 • 지방 읍성도 ‣ 18~19세기: 지방 읍성의 모습을 그린 회화식 지도와 實景圖 제작 ‣ 19세기: 성읍도 제작 활성화 → 화성전도 제작이 촉진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 • 논문의 목표 ‣ 화성전도의 정형이 확립되어가는 과정 검토 ‣ 화성전도의 역사적 의미와 19세기 지방 성읍도 전개 양상과의 관계.. 2022. 5. 16.
조선 초기 의궤 편찬의 배경과 의의 조선 초기 의궤 편찬의 배경과 의의 (신명호, 2011, 「조선 초기 儀軌編纂의 배경과 의의」, 『조선시대사학보』 54) 2022.03.23. 1. 머리말 • 의궤 현황: 1,979건 3,637책 현존 → 모두 조선 후기에 제작 • 저자의 관심: 의궤 제작의 시점, 배경, 의의 ‣ 가설과 전제 ① 조선의 의궤는 신흥사대부의 유교적 국가의례 정비 과정에서 등장 ② 주자학의 기원은 원시유학ㆍ훈고학ㆍ유교의례와 밀접한 관련 ‣ 목적: 의궤 편찬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 규명 2. 의궤의 의미와 유래 • 의궤: 儀와 軌가 결합된 용어 ‣ 儀: 주로 ‘禮’와 결합 → 儀禮, 禮儀 ‣ 軌: 주로 ‘範’과 결합 → 『樂學軌範』, 『文章軌範』 • 禮와 儀의 관계: 禮는 규범적 예법, 儀는 예의 실천에 부수되는 威儀 → 儀는.. 2022. 3. 24.
장서각 소장 의궤의 현황과 기록유산의 가치 박용만, 2011, 「장서각 소장 의궤의 현황과 기록유산의 가치」, 『장서각』 26 2022.03.16. ▣ 주목할 점 ㆍ장서각에 어떤 종류의 의궤가 얼마나 소장되어있는가? ㆍ장서각에서는 의궤의 어떤 측면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1. 머리말 • 의궤의 정의: ‘儀禮의 軌範’ → 반복되는 비슷한 의례의 레퍼런스 • 의례서와의 차이? ‣ 『국조오례의』는 국가의례의 큰 골격을 제시한 원론적인 텍스트 ‣ 의궤는 의례의 시행절차, 행사 비용, 규모를 구체적으로 제시 ※ 이 논문에서 전제하는 두 텍스트의 관계는 적절한가? 그렇다면 火器都監儀軌 류의 의궤는? • 의궤의 구성: 관문서과 공작소 기록으로 구성 ‣ 관문서: 傳敎(국왕→관부), 啓辭(관부→국왕), 移文(동등한 관서 간), 來關(상위 관청→하위 관청), 甘.. 2022. 3. 17.
조선 초기 圓壇祭 시행의 난제와 독자 왕조의 의례 모색 장래건, 2022, 조선 초기 圓壇祭 시행의 난제와 독자 왕조의 의례 모색, 한국사론 68 이 연구는 변계량의 원단제 시행설이 등장하고 해소된 맥락을 중심으로 조선 초기 원단제 논쟁을 검토한 것이다. 조선 초기의 정치가들은 왜 원단제를 필요로 했는가. 그들이 원단제의 존폐를 두고 씨름했던 난제는 무엇이었는가. 당대인들은 이 난제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려 했는가. 논쟁의 결론은 어째서 원단제 폐지로 귀결되었는가. 이런 질문들이 이 글의 주된 관심사다. 연구의 초점을 변계량의 논법에 맞춘 것도 원단제 논쟁의 쟁점과 난제, 당대인의 대응 방식, 원단제 시행설의 실패 요인을 보여주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원단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은 선행연구에서 지적한 것처럼 제후국 분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당위가.. 2021. 7. 19.
여말선초 도학의 성격과 도통론 심예인, 2018, 「여말선초 도학의 성격과 도통론」, 『조선시대사학보』 85 정리일: 2020.07.07 Ⅰ. 머리말 조선은 理學을 지배이념으로 하여 성립된 나라다. 이학은 程朱의 理學과 陸王의 心學을 아우른 개념이다. 조선의 유학은 그중에서 程朱 중심의 이학을 발전시켜 나간 것이 특색이다. 고려 말에 원나라로부터 이학이 수용되었는데, 고려는 주자성리학만이 아닌 이학의 다양한 학풍을 수용했다. 그런 점에서 여말선초 유학 사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면 그간 통용되던 ‘성리학’보다는 ‘이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학은 흔히 ‘道學’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말의 학자들도 원나라에서 수용한 이학을 도학이라 했다. 자기 사상에 대한 우월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도학은 道統論과 闢異端論, 의리실천.. 2020.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