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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저 정리/조선시대사

효종의 국장 및 실록인출, 천릉역사에 참여한 각수 연구

by 衍坡 2022. 6. 13.

효종의 국장 및 실록인출, 천릉역사에 참여한 각수 연구

(김상호, 2010, 효종의 국장 및 실록인출, 천릉역사에 참여한 각수 연구, 『서지학연구』 47)


2022.06.08.


1. 서언

• 조선은 王室役事를 통해 옥책ㆍ죽책ㆍ지석 등 다양한 기록류를 생산 → 刻手 동원
• 木刻手와 石刻手: 각수의 활동 및 작업 영역의 중복 여부를 검토할 필요성
• 검토 대상: 효종 국장, 『효종실록』 편찬, 영릉 천봉에 참여한 각수의 활동 영역

목판으로 새긴 효종실록

2. 각자의 일과 각수동원

(1) 국장

• 『효종국장도감의궤』(1659): 시책ㆍ애책ㆍ죽책ㆍ지석 등의 각자에 관한 상세한 내용 수록

구분 글자수 분량 재질 찬자 서사
시책 575자 12첩 72간 南陽 靑玉 조형(상호군) 송준길(이조판서)
애책 929자 20첩 - 이일상(대제학) 신익전(좌윤)
지석 3,340자 - 忠州石 송시열(우참찬) 송준길(이조판서)
*1간: 길이 9촌 7푼, 넓이 1촌 2푼, 두께 6푼 → 12자

• 각수 동원

한양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14 7 26 6 53

(2) 실록인출

• 현종 1년(1660) 7월 19일: 8월 초 실록 인출 계획 → 京刻手 부족
• 『인조실록』 인출 시 등록된 지방 각수 동원

충청도 전라도
목천 1인 勝嚴 전주 2인 鄭時遇, 盧京錄
괴산 1인 雲際 태인 1인 李生立
충주 2인 信奇, 坦黙 부안 1인 覺行
서원 2인 義修, 裕憚 고부 1인 印信



구례 1인 姜永錄

→ 『효종실록』 인출에도 참여한 각수는 義修가 유일
‣ 『효종실록』 인출 각수: 총 19명 (cf. 『인조실록』 인출 - 15인)

한양 충청도 전라도
7명 서원 刻僧 2명 담양 刻僧 1명
괴산 刻僧 1명 장성 刻僧 1명



고부 刻僧 1명



광주 刻僧 1명



남원 刻僧 1명



금성 刻僧 1명



순천 刻僧 1명

(3) 遷陵

• 영릉 천봉 때 江華石 사용 → 품질이 견고해서 刻字하기 쉽지 않은 상황

지문誌文 대략 4,500여 자를 지석誌石 두 편에 각수 16명이 담당해서 역사役事를 시작할 경우 한 사람이 하루에 열 글자씩 새기면 한 달에 응당 4,800자를 새기게 됩니다. (…) [그러나] 각수 李守一 형제와 韓振國 등 다섯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하루에 열 글자를 새길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더 모자란 자들은 며칠 만에 네다섯 자를 새기는 지경입니다.

※ 생각보다 誌石 刻字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기사 cf. 영조 국장: 磁誌 사용
• 현종 14년(1673) 천릉 당시 각수 선발

날짜 내용
7월 2일 강원도ㆍ충청도ㆍ전라도ㆍ경상도에 刻手를 올려보내도록 주문
7월 9일 황해도에 안악의 솜씨 좋은 각수 宋得ㆍ洪實賢을 올려보내도록 주문
8월 7일 각도에서 올리온 선수 36명 중 1차 선발 → 24인
8월 10일 2차 선발 → 솜씨가 부족하거나 연로한 이들을 방송
9월 18일 지석 각수 선발 마무리 → 13명을 다음날 방송


3. 각수질의 분석

(1) 지역별

• 외방각수가 경각수의 2.6배: 경각수 28인 - 외방각수 73인
※ 지방의 범위를 생각하면 경각수 비중이 상당히 크지 않나?
• 외방각수 중에서 刻僧이 민간각수의 1.8배: 민간각수 26인 – 승각 47인
• 국장 때 전라도 각수를, 천릉 때는 충청도 각수를 다수 동원
※ 동원의 기준이 있나?

(2) 신분별

• 경각수

효종 국장 14인 李忠民, 吳有進, 韓振國, 閔戊仁, 金種金, 吳鶴, 金秋業, 鄭淑良, 李秀一, 李惟一, 李仁益, 韓斗星, 權士仁, 劉太龍
『효종실록』 인출 7인 金種金, 金愛立, 韓斗星, 柳楠, 金信起, 崔萬元, 金益天
천릉 7인 李秀一, 李惟一, 韓振國, 徐後悌, 權士仁, 李五龍, 崔萬元

‣ 木刻手ㆍ石刻手ㆍ玉刻手 등의 직분이 별도로 구분되지 않음
▫ 金種金, 韓斗星, 崔萬元: 목각수가 성격이 다른 역사에도 참여한 사례
‣ 각수명 기재 순서: 국장 때 젊은 각수가 천릉 때 원로가 되었음을 시사
※ 이름 기재 순서만으로 그렇게 추정할 수 있나?
韓振國은 국장에서 세 번째로 기재되었지만 천릉에서는 李秀一, 李惟一 뒤에 기재
‣ 경각수 중 상당수는 校書館 소속의 刻工이었을 것으로 추정
• 민간각수

효종 국장 14인 [충청] 朴仁永, 鄭武生, 金守一, 李自順(4인)
[전라] 河承天, 梁信生, 鄭時雨, 李進白, 梁以立, 文汙, 蔡愛立, 秋萬景(8인)
[경상] 李永發, 朴秋日(2인)
『효종실록』 인출 0인
천릉 12인 [충청] 高聖明, 全承龍, 韓斗相, 金爾昌, 白以采, 金善學(6인)
[전라] 陳永弼, 洪實賢, 鄭厚生, 李永白, 朴永男(5인)
[황해] 宋得伊(1인)

‣ 두 가지 일에 중복으로 참여한 사례는 없음
• 각승

효종 국장 25인 [충청] 行哲, 學守, 承俺 (3인)
[전라] 應祥, 太俊, 雲邊, 玉玄, 敬林, 太祥, 法浩, 贊每, 智日, 天悟, 處善, 海玉, 法寬, 日甘, 應閔, 聖念, 仁和, 法贊 (18인)
[경상] 玄隱, 弘祐, 浩祥, 國正 (4인)
『효종실록』 인출 9인 [충청] 守玄, 義修, 慧謙 (3인)
[전라] 敏英, 性圭, 勝淳, 尙訓, 玉玄, 德希, 信裕, 天眞, 淸卓 (9인)
천릉 10인 [경기] 道天 (1인)
[충청] 印佑, 雪深, 振惠, 隆哲, 海信, 元應, 學信, 宗悅 (8인)
[전라] 處尙 (1인)

‣ 전라도 각승 玉鉉만 국장과 실록 인출에 중복으로 참여
※ 충청도ㆍ전라도 지역은 고정적으로 각수가 동원된다는 점
국가 행사에서 각자 작업에 각승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 눈에 띔

4. 주요 각수의 활동

(1) 경각수 김애립과 각승 학순

• 경각수 김애립
‣ 『인조실록』 목활자 판각 및 두 차례 옥책 제작에 참여
‣ 효종 국상에 옥책 및 지석 각자에 동원 → 연로하다는 이유로 방송
‣ 효종실록 인출에 동원 → 목활자 판각에는 나이가 문제× → 석각이 더 고난도의 작업
• 학순: 1618~1647년 송광사에서 판각한 불경에 등장 → 30년 이상의 경험을 지닌 각수
‣ 효종 국장에 동원되었으나 병으로 방송

(2) 사찰판의 각수

• 민간각수

각수명 왕실역사 사찰판각
李永發(安陰) 효종 국장 참여 안음 靈覺寺 「妙法蓮華經」
韓斗星(경각수) 『효종실록』 인출 참여 양주 佛岩寺板 「釋氏源流應化事蹟」
崔萬元(경각수) 『효종실록』 인출, 천릉 역사 참여 佛岩寺 사찰판각 참여
朴永男(순천, 한양) 효종 천릉 역사 참여 강원도 表訓寺板 「妙法蓮華經」

• 각승

각수명 왕실역사 참여 사례 사찰판각 참여 사례
贊海 효종 국장 회양 표훈사 판각
學守 효종 국장 삭녕 용복사 판각
性圭 『효종실록』 인출 낙안 징광사 판각
淸卓 『효종실록』 인출 순천 흥국사 판각
道天 영릉 천봉 양주 불암사 판각
元應 영릉 천봉 안주 선정암, 낙안 징광사 판각
處尙 영릉 천봉 회양 표훈사 판각

‣ 사찰판을 새긴 각승이 국장ㆍ실록인출 등 국가 행사에 동원되어 玉冊ㆍ誌石ㆍ木版 등을 刻字
→ 각승은 책판뿐 아니라 비석 각자에 능통했음을 시사
※ 더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각승을 동원하는 사찰이 비교적 한정적이라는 사실이 눈에 띔

5. 결어

  1. 왕실역사에 동원된 외방각수는 씨를 인정받은 善手였으며 年老함 등의 이유로 작업에 부적합할 경우에는 다시 돌려보냈다.
  2. 역사에 동원된 善手는 목각ㆍ석각 여부와 무관하게 작업에 참여했으며 지역 사찰판각에 참여하기도 했다.
  3. 중앙에서는 외방각수를 동원할 때 이전에 동원되었던 善手를 동원하려 했으며, 시간이 흘러 해당 각수를 동원할 수 없을 때는 젊은 각수를 동원했다.
  4. 지석 각자에 뛰어난 각수는 하루어 10자 정도를 새겼으며 재주가 부족한 각수는 그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5. 효종 관련 역사에서는 경각수보다 외방각수가, 민간각수보다는 각승이 더 많이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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