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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저 정리/조선시대사

장서각 소장 의궤의 현황과 기록유산의 가치

by 衍坡 2022. 3. 17.

박용만, 2011, 「장서각 소장 의궤의 현황과 기록유산의 가치」, 『장서각』 26

2022.03.16.



▣ 주목할 점
ㆍ장서각에 어떤 종류의 의궤가 얼마나 소장되어있는가?
ㆍ장서각에서는 의궤의 어떤 측면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1. 머리말


• 의궤의 정의: ‘儀禮의 軌範’ → 반복되는 비슷한 의례의 레퍼런스
• 의례서와의 차이?
‣ 『국조오례의』는 국가의례의 큰 골격을 제시한 원론적인 텍스트
‣ 의궤는 의례의 시행절차, 행사 비용, 규모를 구체적으로 제시
※ 이 논문에서 전제하는 두 텍스트의 관계는 적절한가? 그렇다면 火器都監儀軌 류의 의궤는?

• 의궤의 구성: 관문서과 공작소 기록으로 구성
‣ 관문서: 傳敎(국왕→관부), 啓辭(관부→국왕), 移文(동등한 관서 간),
來關(상위 관청→하위 관청), 甘結(하위 관청→상위 관청)
‣ 공작소: 준비 과정ㆍ업무 분장ㆍ동원 인원ㆍ물자 조달ㆍ경비ㆍ담당 관리ㆍ유공자 포상 등 실무 관련 정보
• 이 논문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 2008~2010 조선왕조의궤 지정학술조사 결과를 토대로 장서각에 소장된 의궤의 현황과 특징 검토

2. 장서각 소장 의궤의 현황


• 장서각 소장 의궤: 341건 503책 (결책 63책 제외)
cf. 규장각(1584건 약 2,950책), 국립문화재연구소(14건 15책)
‣ 특징: 주로 종묘서, 선원전, 특히 적상산사고에 분상되었던 의궤들(1911년에 이관)

원 분상처 의궤 건수 원 분상처 의궤 건수
적상산사고 192건 장생전 1건
종묘서 36건 영희전 1건
선원전 4건 동궁 1건
경우궁 2건 경기감영 1건
예조 2건 이왕직예식과  1건
경모궁 1건 미상 97건
사직서 1건 총계 340건(논문 서술과 불일치)

• 유일본 의궤: 39종 56책 (稿本 8종 13책, 어람용 7종 12책 포함 )
‣ 조선시대 제작된 의궤는 26종
‣ 대한제국기 ~ 식민지기에 제작된 의궤 13종

• 어람용 의궤: 25종 39책 (유일본 의궤 포함)
‣ 대부분 식믹지기에 간행됐으므로 엄밀한 의미의 어람용이라 하기는 어려움
‣ 장황이 조선시대에 제작된 어람용과 유사하므로 함께 분류
※ 장정이 같다고 '어람용'이라고 할 수 있나? 엄밀한 의미의 어람용은 기준은?

※ 오류: 표1에 기재된 어람용 의궤 중에서 [高宗太皇帝]御葬主監儀軌(2-2920)이 표2에 누락됨


3. 장서각 소장 의궤의 기록유산적 가치

(1) 장정의 원형
• 粧䌙: 비단ㆍ종이 등으로 문서를 장식 → “문화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
• 장서각 소장 의궤에 조선시대의 장황을 유지한 의궤가 일부 잔존 – 대다수는 改粧
‣ 개장된 의궤: 적상산본 분상 의궤 - 붉은 종이 표지, 변철ㆍ박을정 제거, 뒤표지 개장 일자 기록
‣ 본래의 의궤: 종묘서 분상 의궤 - 삼베 표지, 별도의 제첨無, 변철은 무쇠, 3개의 박을정
‣ 적상산본 미개장 의궤도 존재: 실록수정의궤ㆍ선원보략수정의궤 등 - 황색 종이 표지
∴ 적상산본 의궤에는 베로된 표장과 황색 종이 표장이 모두 존재했을 것
• 개장 여부에 따라 주기사항의 차이도 존재
‣ 개장된 의궤 주기사항: 중국 연호 + 조선 왕대(개장시 추가) + 의궤명
‣ 본래 의궤 주기사항: 중국 연호 + 의궤명
‣ 개장 여부에 따른 의궤 간의 주기 일시 차이?
- 純祖祔廟都監儀軌: 종묘서본(1837년 7월) vs 적상산본(1836년 10월)
→ 분상처에 분상된 일시과 부묘행사가 시작된 시점의 차이일 것이며 개장과 무관

(2) 稿本 의궤와 그 가치
• 稿本 의궤: 최종단계의 의궤를 제작하기 위해 미리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
‣ 주로 식민지기에 제작 - 의궤 제작과정과 식민지기 의궤의 특징 파악 가능
• 의궤와 고본 의궤의 차이
‣ 크기: 고본 의궤가 훨씬 작음
‣ 책지: 고본 의궤=美濃紙(변란과 판심이 인쇄된 이왕직 용지) / 어람용 의궤=초주지 / 분상용=저주지
‣ 반차도: 보통 의궤와 달리 고본 의궤에는 반차도 부재 →「○○班次」로만 표기


(3) 분상기록과 적상산사고 봉안용 의궤의 제작
• 의궤 제작 및 분상에 관한 기록: 주로 의궤 내 ‘儀軌事目’에 기재 – 앞표지 안쪽면에 기재한 경우도 존재
• 의궤 분상: 대체로 4~5건을 제작하여 분상
‣ 4~5건 제작하여 분상, 어람용ㆍ내각 분상용ㆍ사고 분상용으로 구분했던 것으로 보임
‣ 분상처: 어람용ㆍ종묘서ㆍ의정부ㆍ춘추관ㆍ예조ㆍ강화부ㆍ태백산ㆍ오대산ㆍ적상산
→ 병자호란 이후에는 의정부보다 예조에 분상하는 경우가 증가
‣ 반드시 四史庫에 모두 봉안하는 것은 아님 → 일부 사고에만 봉안한 경우도 존재
예) [英祖王世弟受冊時]冊禮都監儀軌(奎13099) - 강화부에만 봉안
‣ 의례의 성격에 따라 봉안처가 달라졌던 것은 아님 - 강화부 외에도 책례도감의궤가 있는 경우가 존재
‣ 봉안된 책례도감의궤 존재
* 적상산사고 봉안을 위해 제작된 경우도 존재: 璿源譜略修正全羅道茂朱赤裳山奉安儀軌(반차도無)
cf. 璿源譜略修正本儀軌廳(奎14065, 반차도 18면)
璿源譜略修正時全江華奉安儀軌(奎14064, 반차도 12면)

4. 의궤의 성격과 정리의 문제

(1) ‘都廳’이 들어있는 內題
• 의궤 서명 표기 양식: 의례의 주인공 + 의례의 성격 (內題 기준)
예) [英祖王世弟受冊時]冊禮都監儀軌
• 내제를 기준으로 할 때 생기는 문제점: ‘都廳儀軌’를 어떻게 할 것인가?
‣ 통상적인 의궤의 구성: 도청의궤 + 삼방의궤(일방, 이방, 삼방) + 조성청의궤
‣ ‘都廳儀軌’는? ex. [神德王后]祔廟都監儀軌: “祔廟都監都廳儀軌”
  - 도청의궤는 의궤의 한 구성 요소
→ 도청이 있는 내제는 도청의궤의 내제일 뿐 전체 내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해야 함

(2) 권책수와 官印
• 쟁점: 首卷을 별도의 책수로 계산할 것인가?
‣ 首卷의 내용: 서문ㆍ범례 등 → 일반 古書와 달리 의궤는 首卷을 별책으로 구성한 경우가 존재
예) 進宴儀軌, 進饌儀軌, 園行乙卯整理儀軌
‣ 의궤의 체계가 일반 고서와 다르므로 首卷을 별도 책수로 산정
• 분상용 의궤의 경우 장마다 官印을 押印 - 찍힌 관인에 따라 의례 운영 및 의궤 편찬 도감의 위계를 시사

5. 맺음말

• “장서각 소장 의궤는 기록문화적으로 제작과 장정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 단상

  • 이 논문이 의궤 자료를 검토하면서 주로 다루는 것은 粧䌙의 재질이나 형태, 책의 규격, 반차도의 매수 등 의궤의 ‘외형’이다. 주로 서지학을 기반으로 의궤 자료를 검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런 정보들은 의궤의 실물에 관해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 정보들만으로 “기록유산적 가치”를 파악하는 데 충분한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의궤를 편찬한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그 사람들은 어떤 ‘마인드’로 의궤를 만들었을까. 의궤를 열람하는 사람들은 의궤의 정보에서 모두 동일한 정보들에 관심을 두었을까. 관직의 고하, 근무하는 관청 등등 여러 변수에 따라서 의궤에 기대하는 정보도 다르지 않았을까. 만약 달랐다면 그런 서로 다른 기대치는 의궤의 목차와 내용을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까?
  • 이 논문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대목은 의궤 보관과 관련된 대목이었다. 어떤 의궤를 어디에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 특정한 장소에 봉안하는 의궤의 구성은 어떻게 설정했는가. 구성에 따라 의궤의 중요도가 달라졌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누가 어떻게 결정했는가. 물론 저자도 이런 점들을 더 연구해야 할 점으로 꼽았다. 다만 특정한 의궤를 비교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 의궤에 위계를 부여하고 봉안할 장소를 정하고 보관 방법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어떻게 운영이 되었는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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