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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옛 사람 이야기8

인정과 의리의 갈등, 법과 윤리의 간극 인정과 의리의 갈등, 법과 윤리의 간극 20220704 1. 정경문 살해사건의 경위와 처분 황해도 해주에서 정경문鄭景文이라는 사람이 과부寡婦인 조씨趙氏와 간통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786년(정조 10) 11월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사건의 전말과 결과는 『일성록』과 『심리록』, 『추관지』와 『흠흠신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이 기록들을 토대로 사건의 경과와 결과를 검토할 것이다. 굳이 이 사건을 검토하려는 이유는 실행失行한 사족 여성에 대한 사건 관련자와 국가의 태도에 미묘한 차이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려 한다. 일단 사건의 개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경문과 밀회를 나눈 조씨는 사족 여성으로 이씨 집안에 시집갔다가 일찍 남편을 여.. 2022. 7. 4.
정시한의 율곡 비판 전략과 의도 정시한의 율곡 비판 전략과 의도 2022.06.13. 1. 들어가며 2. 퇴계의 「심통성정도」와 율곡의 비판 3. 정시한의 퇴계 지지와 율곡 비판 (1) 퇴계 학설 ‘답습’의 의도 (2) 퇴계 학설 중심의 율곡 비판과 ‘이단화’ 4. 나가며 1. 들어가며 17세기는 퇴계와 율곡의 학설을 둘러싸고 다양한 학술 담론이 등장하던 시기다. 한편에는 율곡학파가 형성되었다. 주로 서인계 인물들로 구성된 이들은 정치적으로 결집하는 과정에서 율곡의 저술을 모으고 문집을 간행하는 학술 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율곡을 문묘에 배향하려는 시도 역시 그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에는 그런 움직임에 대응해서 퇴계의 학설을 중심으로 율곡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愚潭 丁時翰(1625~1707)도 그중.. 2022. 6. 21.
조선 후기 교화의 ‘경계’와 정절의 현실 조선 후기 교화의 ‘경계’와 정절의 현실 2020.12.21 1. 서론 통설에 따르면 성리학적인 윤리 규범과 사회질서가 사회 전체로 확산된 시점은 17세기 이후였다. 이때가 되면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양측적 친속 관계가 완전히 해체되고 부계 혈연 중심의 친족 관계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부터 유교적 사회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국가와 사족의 노력이 이루어낸 결실이었다. 그간의 여성사 연구는 대체로 이런 통설을 전제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와 그들의 대응을 탐색했다. 조선 사회를 지배한 유교적 규범과 그에 걸맞게 마련된 제도는 여성에게 어떻게 정절을 강요했는가. ‘유교 가부장제’[각주:1]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하락했는가. 조선시대의 여성에게는 어떤 폭력과 차별이 가해졌는가... 2020. 12. 31.
여말선초 국왕의 정치권위 변화와 그 역사적 맥락 여말선초 국왕의 정치권위 변화와 그 역사적 맥락 - 왕건과 이성계의 즉위 교서에 나타난 차이점을 중심으로 - 2019.12.23. 1. 머리말 2. 고려ㆍ조선 왕조의 개창과 즉위 교서 (1) 개국의 형식과 절차에 보이는 유사성 (2) 왕건과 이성계의 즉위교서에 드러난 차이점 3. 국왕의 정치권위와 정치적 지향, 그리고 정치의 현실 (1) 패도와 혈연: 고려시대 정치문화의 이상과 현실 (2) 천명과 도덕: 도덕적 군주와 새로운 정치질서의 추구 4. 맺음말 1. 머리말 조선은 누가 세운 나라일까? 그동안의 연구들은 ‘신흥사대부’라 불리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조선을 건국했다고 설명했다. 성리학의 이념으로 무장한 그들은 공민왕 대 이후로 중앙정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주요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다. .. 2019. 12. 29.
『흥부전』이라는 프리즘으로 본 한국의 빈부 차별 『흥부전』이라는 프리즘으로 본 한국의 빈부 차별 - 흥부ㆍ놀부 인식의 변화와 빈부 차별의 존재 양상 - 2019.06.24 1. 머리말 2. 『흥부전』에 보이는 가난의 실상과 빈부 차별 (1) 흥부가 경험한 가난의 현실 (2) 작품 속의 빈부 차별 사례 3. 흥부ㆍ놀부의 위상 변화와 빈부 차별 (1) 조선 시대의 흥부ㆍ놀부 인식: 측은지심과 수오지심 (2) 현대인의 흥부ㆍ놀부 인식: 자본주의적 맥락에서 뒤바뀐 주인공의 위상 4. 맺음말 1. 머리말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날마다 쏟아진다. 일자리와 소득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양섭취와 주거환경, 교육수준 등 모든 영역에서 빈부에 따른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날로 심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확실히 한국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2019. 6. 30.
이완용이 유자광을 사면했을까? 이완용이 유자광을 사면했을까? 2018.04.03 유자광은 조선시대 내내 '간신'(奸臣)으로 기억됐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세조의 총애를 받고 출세해서 개인의 사사로움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해친 흉악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유자광의 삶을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의 비판이 꼭 불합리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는 무오사화를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김종직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풀었고, 연산군 재위 내내 왕의 비위를 맞추다가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반정군에 가담해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유자광의 부귀영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의 '기회주의적'인 처신은 여기저기서 맹렬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그는 벼슬과 공신 작위를 박탈당하고 쫓겨나 1512년(중종 7).. 2018. 4. 27.
형식과 감정 사이에서 형식과 감정 사이에서 - 죽음을 애도하는 18세기 한 조선인의 제문 - 아! 며칠 전 아침 바람에 정을 따라 충문공(忠文公 : 徐命善)의 영령에 제사를 드렸다. 저 관서(關西) 지방의 들판을 일찍이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는데, 다시 경에게 술을 따르게 되었도다. 정신은 모여 있지만 장수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것을 애석해 하니, 강호의 한 가지 병통은 흘러가는 물처럼 멈추지 않는 것임을 어찌하랴? 아! 내가 세손으로 있을 때부터 서로 사귐이 깊어 《춘추》에서 명분과 의리를 논하였고, 피를 뿜고 간담이 파헤쳐져도 원수들과 함께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선왕[英祖]의 해와 달처럼 밝은 보살핌을 얻게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파도가 가라앉으면 돌이 드러나듯이, 그윽한 하늘을.. 2018. 4. 15.
부조리한 현실과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부조리한 현실과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 왜 정약용은 「고금도 장씨 여자 이야기」를 썼을까? - 1. 프롤로그 조선 지식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18세기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던 이옥은 일상이 지루해서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취미 생활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에서 이옥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다. 대부분의 조선 사람들에게 글은 학문을 하고 세상을 경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신변잡기는 글다운 글이라고 볼 수 없었다. 정조가 이옥 같은 사람들의 글을 두고 ‘내용이 빈약하고 기교만 부려 전연 옛사람의 체취는 없고 조급하고 경박하다’며 혹평한 것도 그런 문장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지식인들이 반드시 학문과 정치만을 위해.. 2018.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