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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저 정리/조선시대사

세종대 척도의 탄생: 주척과 황종척을 중심으로

by 衍坡 2023. 9. 23.

문중양, 2021, 「세종대 척도의 탄생: 주척과 황종척을 중심으로」, 『동방학지』 196

 

2023.09.21.

 

1. 머리말

 

1) 세종 28년 도량형제 상정

① 세종 28년(1446) 민간에서 사용하는 척도의 표준을 상정했고 『경국대전』에도 그대로 수록

② 상용되지 않는 척도인 ‘황종척’을 상용 척도의 기준으로 제시

 

2) 선행 연구

① 세종 28년에 상정된 도량형제에 관한 실증적 연구 진행(박흥수, 남문현, 이종봉, 이숙희)

  •   조선의 주척 약 20.6cm (cf. 중국 약 23.1cm)
  •   조선의 황종척 약 34.6cm (cf. 송대 악률척 24.5cm, 28.06cm, 30.1cm)

② 여전히 남은 문제들

  • 사용하지 않는 황종척을 왜 상용 척도의 기준으로 삼았는가?
  • 중화 문화 수용을 추구한 조선의 주척과 황종척은 어째서 정작 중국과 달랐는가?

 

 

2. 구현하기 불가능한 고제

 

1) 『한서』 「율력지」에 규정된 중국 고대 척도

① 율도량형 일치의 이념: 90분 길이, 810입방분 부피, 기장알 1200개를 수용하는 竹管 → 황종율관의 기준

② 문제점: 이상적인 것으로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움 → 중국에서 척이 전반적으로 길어지고 용도에 따라 분화

 

2) 晉 荀勖의 古尺 복원: “周尺” (『수서』 「율력지」)

① 고척보다 4분이 길어진 당시의 척을 『주례』에 근거해서 복원(23.1cm)

② 복원한 척으로 銅 律管을 제작해서 성운을 조율

③ 문제점: 황종율관으로부터 척도를 도출하는 『한서』 「율력지」의 원리에 어긋남

 

3) 隋唐代의 척도

① 척도가 용도에 따라 분화하고 점차 길어지는 추세

  • 수나라의 관척(개황 연간): 29.6cm
  • 당나라의 관척: 약 30cm (대척, cf: 소척 24.5cm)

② 『한서』 「율력지」의 ‘율도량형’ 원리가 현실의 국가 운영과 괴리

 

4) 송대의 척도 정비

① 태조대 ‘樂尺’(24.5cm), 인종대 李照尺(31.2cm), 휘종대 大晟樂尺(30~30.1cm) 등

  •  일정한 율관 길이와 음률 높이 부재 → 고악 복원 요원

② 범진은 『한서』 「율력지」의 고제 원리를 재해석하여 고악과 율관의 부활 추구

③ 채원정의 『율려신서』는 이상적인 고대 악률과 도량형의 부활을 추구한 결과물

④ 실상: 용도에 따라 각기 다른 척을 상용 (明代의 사정도 유사)

 

5) 『주자가례』의 척도

① 송대의 省尺을 기준으로 주척 규정

  •  주척은 성척의 7촌 5분 弱
  • 송대 성척이 31.2cm면 주척은 약 23.37cm

② 문제점: 관척의 길이에 따라서 주척이 달라짐

 

 

3. 세종 28년의 ‘尺式’에 이르는 과정

 

1) 조선 초의 척도: 주척, 영조척, 조례기척, 포백척, 황종척

 

2) 세종 7년 아악 정비 및 율관 제작 과정에서 ‘근거를 갖춘’ 도량형 제정이라는 과제 등장

① 고제의 재현 추구: ‘율도량형’의 이념에 입각한 도량형제의 구현

② 세종 12년: 『율려신서』를 본격 검토 → 주척 考正을 지시했다가 철회

③ 율관 제작과 아악 정비 단계에서 황종척과 주척은 고제로부터 구하지 못함

 

3) 척도 규정 마련

① 포백척 표준: 경외의 포백척이 모두 달라 時用竹尺을 표준으로 설정

② 주척 표준: 부친상을 당한 허조가 신주 제작을 위해 주척 기준 모색(약 20.6cm) → 세종 19년(1437)부터 검증하여 주척의 표준으로 설정

③ 영조척 표준: 세종대에 영조척을 새로 규정 → 실제는 황종척보다 영조척으로 나머지 척도를 설정했을 것

 

4) 논점①: 주척

① 조선의 주척은 중국 관척보다 10cm 가량 짧았는데 왜 상용 표준척으로 삼았는가?

② 조선의 주척(약 20.6cm)은 어떻게 중국의 주척(23.1cm)과 달라졌는가?

 

5) 논점②: 황종척

① 황종척 제작에 관한 연대기 기록이 왜 분명하게 서술되지 않았는가?

② 어째서 상용 척도가 아닌 황종척을 기준으로 각종 척식을 규정했는가?

 

 

4. ‘조선 주척’의 탄생: 『가례』 신주척식의 복원과 고제의 상징

 

1) 조선 초기 척도 사용의 특징

 ①문물제도 정비 과정에서 전반적으로 주척 적용: 『주자가례』에 근거해 중화 의례를 제대로 구현하려 한 열망

 

2) 고려 말 『가례』 수용과 주척

① 고려 말 유학자(정몽주 등): 『가례』에 따라 家廟 설치와 제례 보급 주장

② 『가례』의 실천 의지를 고려할 때 ‘주척’을 사용했을 것: 태조 2년 허조의 사례

  •  허조는 태조 2년 부친상에 신주 규모를 분명히 하고자 신주척식 참조
  •  허조는 원나라 사람 陳理의 신주척식과 의랑 강천주의 지본 주척을 비교하여 믿을만한 ‘주척’을 구했음

③ 허조의 주척은 사대부가 의례뿐 아니라 국가 제도로까지 광범하게 적용

 

3) 국가 프로젝트와 주척

① 아악 제정 과정에서 주척을 고정하려 했던 사례

  • 세종의 『율려신서』 연구: 이상적인 고제의 도량형이 악률로부터 비롯되어야 함을 재확인한 계기 → 율관이 제작 후 고제에 맞는 주척을 추구
  • 주척 고정 지시 철회: 고제에 따라 율관으로부터 척을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 것

② 천문의기 창제 사업 과정에서 주척 고정

  • 고제 구현의 일환으로 천문의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주척의 규모를 정하려고 함
  • 허조의 주척을 세종 12년(1430) 북경에서 사온 신주척식과 비교(20.6cm): cf. 중국의 ‘소척’ 약 24.5cm
  • 고제 구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명나라와 다른 척도 사용

③ 공법 시행과 주척

  • 세종 25년 11월: 고려시대 양전에서 사용되던 지전척이 고제에 어긋나므로 주척을 사용하도록 하교 → 주척 사용은 고제 준수의 방법이라는 인식

 

4) 조선에서 주척의 사용: 주척은 국가의 공인 표준 척도로서 고제의 상징

 

Q. 『주자가례』와 고제의 관계?

 

 

5. 박연의 황종척: ‘율도량형’의 구현

 

1) 조선에서 황종척은 상용 척도의 기준 척도?

① 중국 현실에서 폐기된 황종척의 이념이 조선에서 구현된 듯한 인상

② 실제와 괴리: 세종 12년 윤 12월 1일 정인지의 「아악보서」

“(영락제가 하사한 편종과 편경) 소리에 의거해 편종을 주조하고, (편경의 재료인) 좋은 돌을 남양에서 얻어 편경을 만들어, 악기를 모두 일신했습니다. 또 그 소리에 의거하여 동() 율관을 주조했지만, 그 율관이 자못 길어, 기장()을 너무 많이 담는 것으로 보아, 고척(古尺)과 맞지 않는 듯하여, 그 척은 쓰지 않았습니다.
  •  장악원 소장 동 율관은 영조척 1척 길이(30.8cm) → 황종척 약 34.2cm
  •  장악원 동 율관이 조선의 황종척으로 사용되었을 것
  •  황종척에 대한 정인지의 아쉬움이 묻어있음

 

2) 황종척 제작의 또 다른 기록: 세종 15년 1월 1일

“우리 나라는 지역이 동쪽에 치우쳐 있어 중국 땅의 풍기와는 전연 달라, 후기(候氣)로 율관을 구하고자 해도 응당 징험이 없을 것을 요량해서, 이에 해주산 거서(秬黍)의 모양에 의하여 밀랍을 녹여 중간 크기의 기장알을 만들어서, 푼(分)을 쌓아 율관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우리 나라 붉은 기장(丹黍)의 작은 것과 꼭 같았다. 곧 한 알을 1분(分)으로 삼고, 열 알을 쌓아 1촌(寸)으로 하는 법으로, 9촌을 황종율관의 길이로 삼았으니 곧 90분이다. 1촌을 더하면 황종척이다. 지름은 3분 4리 6호의 법을 취하였다. 이에 해죽(海竹) 중에 단단하고 두껍고 몸이 큰 것을 골라 구멍을 뚫으니 ‘지름의 분수(分數)’에 딱 맞았다. 율관의 길이를 비교하니 바로 촌법(寸法)에 딱 맞았다. 밀랍으로 만든 기장알 1200개를 관에 넣으니 진실로 남고 모자람이 없었다.”

① 조선 율관이 『한서』 「율력지」 및 『율려신서』의 기준에 꼭 들어맞는 것처럼 묘사

② 사실이라기보다 고제 구현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

  • 조선 아악이 중국 아악보다 더 올바름을 얻었다는 자부심
  • ‘음을 아는 덕이 순후한’ 군주 세종에 대한 칭송

③ 실상: 세종 9~12년의 황종척 추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

 

 

6. 주척과 황종척 길이의 비밀

 

1) 주척 길이의 차이

① 조선 초의 주척 가묘 약 20.6cm / 송~명대 주척 약 23.1cm → 차이 발생 이유?

② 신뢰할 만한 송원대 주척 길이 추정

  • 23.1cm: 중국 학계의 통설
  • 23.4cm: 『가례』 척식 규정에 근거한 송대 주척 추정치
  • 20.48~21.45cm: 원대 『무원록』과 관인 크기에 근거한 원대 주척 추정치 → 조선 주척과 가장 유사

③ 본래의 주척이 19.9~20cm라는 견해 → 23.1cm는 후한 이후의 표준 척도

  • 송대 사대부가 『가례』와 달리 본래 주척의 규정대로 신주를 만들었을 가능성
  • 그렇게 보면 조선의 주척은 『가례』와는 다르지만 고례와 부합하게 되는 셈

 

2) 황종척 길이의 근거

① 황종척 길이 34.6cm, 황종율 길이 31.14cm

② 서명응(『시악화성』)은 『한서』 「율력지」, 채원정과 박연의 율관과 척도에 비판적

  • 채원정은 동곡척을 기준으로 황종율관을 구했기 때문에 척이 짧다고 지적
  • 박연은 밀랍 기장을 써서 임의로 율관을 크게 만들어 척이 길어졌다고 지적
  • 서명응은 황종척 좌우 1척 3분씩(총 2척 6푼) 제거하면 채원정과 일치할 것이라고 지적
  • 서명응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박연의 황종척은 약 31.4cm

③ 현재로서는 황종 음고에 맞춘 동 율관에서 구한 길이가 조선 황종척 길이가 되었다고 추정

  • 황종척의 길이 약 34.6cm: 고제 및 시왕지제 모두와 다른 값
  • 그럼에도 조선의 기준 척도

Q. 황종척 길이가 “원대 관척 길이와 동일”하다고 지적했는데, 저자는 이것이 원 복속기의 유산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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