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83

제갈량 - 후출사표(後出師表) 후출사표(後出師表) 제갈량 先帝慮漢賊不兩立, 王業不偏安, 故託臣以討賊也. 以先帝之明, 量臣之才, 固知臣伐賊, 才弱賊彊也. 然不伐賊, 王業亦亡, 惟坐而待亡, 孰與伐之. 是故, 託臣而不疑也. 선제[劉備]께서는 한나라와 역적[魏]은 양립할 수 없고, 왕업(王業)은 천하의 한구석에만 안주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에게 역적을 토벌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선제께서는 밝은 지혜로 신의 재주를 헤아려 신이 역적을 토벌하기에 재주는 약하고 적은 강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역적을 토벌하지 않으면 왕업도 망할 것이니,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역적을 토벌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신에게 역적을 토벌하는 일을 맡기고도 의심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臣受命之日, 寢不安席, 食不甘味, 思惟北征,.. 2018. 4. 24.
여운형은 친일파인가? 여운형은 친일파인가? 여운형을 바라보는 시선들 : 민족주의자 VS 친일파 몽양 여운형은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국내외에서 민족의 독립과 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애쓴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ㆍ중국ㆍ미국ㆍ소련 등 다양한 외부세력과 적극적으로 접촉했다. 이 점은 다른 독립운동가들에게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특히 중국과 일본, 소련과 미국의 대립적인 관계를 생각하면, 그 모두와 폭넓게 교류했던 여운형의 행보는 분명히 독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여운형에 대한 평가도 각양각색이었다. 여운형의 지지자들은 그가 민족주의자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미군정과 한국 우익 세력은 그를 공산주의자ㆍ친일파 등으로 평가했다. 반면 한국의 좌익 세력은 여운형이 친미앞잡이이자 기회주의.. 2018. 4. 23.
18세기 조선 정치사상과 그 전후 맥락 오수창, 2012, 「18세기 조선 정치사상과 그 전후 맥락」, 『역사학보』 213 1. 머리말17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긴 역사적 맥락 속에서 18세기 조선의 정치사상을 검토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다만 저자는 각 시기의 구체적인 정치상황을 분석하기보다는 17~19세기 정치사상의 연결성을 염두에 두고 조선 정치의 내적논리를 검토하는 데 집중했다. 그의 목적은 조선 정치사를 전적으로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인식을 극복하고 조선의 정치사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 그런데 저자는 왜 구체적인 정치사상을 검토하려고 하는 것인가? 왜 18세기 정치사상을 굳이 17~19세기의 긴 역사적 맥락에서 검토하려고 하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18세기의 정치상황이 17세기 붕당정치의 현실을 이어받으.. 2018. 4. 23.
현상윤의 조선 유학사 재해석 과정과 그 역사적 맥락 현상윤의 조선 유학사 재해석 과정과 그 역사적 맥락 1. 서론 현상윤(1893~1950)은 한국 유학사 연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근대적 학문방법론에 입각해 『조선유학사』(1948)를 저술함으로써 해방 이후 한국 유학사 연구의 초석을 마련했다. 해방 이후 조선 유학사 연구의 전체 틀은 이미 그의 『조선유학사』에서 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각주:1] 그런 점에서 현상윤을 “조선유학사 연구의 선구자”로 평가하는 것도 결코 과언은 아니다.[각주:2] 하지만 현상윤이 『조선유학사』에 제시한 유학사의 내용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조망하면서 『조선유학사』에 담긴 그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상윤의 유학관(儒學觀)은 전통 한학과 근대 학문을 접.. 2018. 4. 22.
김수항의 학문관ㆍ정치활동에 관한 논저 검토 김수항의 학문관ㆍ정치활동에 관한 논저 검토-정재훈(1994)과 지두환(2009)의 연구를 중심으로- 1. 어떤 논저를 검토할 것인가? 김수항(金壽恒)은 17세기 서인-노론을 대표하던 관료였다. 그는 조선후기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예송과 환국에서 서인-노론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런 점에서 17세기 조선의 정국(政局)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를 대상으로 연구한 논저는 적은 편이다. 17세기 예송과 환국을 다룬 연구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긴 했지만, 김수항의 정치활동과 학문관, 사회경제사상을 구체적으로 다룬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이 글에서는 정재훈(1994)과 지두환(2009)의 연구를 검토해보려고 한다. 두 연구를 검토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김수항의 정치적 입장.. 2018. 4. 22.
송시열의 『주자대전』 연구와 편찬 강문식, 2008, 「송시열의 『주자대전』 연구와 편찬」, 『한국문화』 43 1. 서론 16세기 이후 朱子書 選本과 그에 대한 주석서가 지속적으로 편찬되었다. 이는 이황의 『주자서절요』 편찬 이후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에서 모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주자서의 편찬은 250여 년 이상 지속되었는데, 저자는 이것이 조선 중기 이후 주자성리학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이해가 심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 중에서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송시열의 『朱子大典箚疑』와 『節酌通編』이다. 이 저술들은 17세기 주자학을 비판하는 학문 경향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낀 송시열이 주자학 연구에 전념한 결과물이자, 주자학 연구의 주도권이 영남학파에서 기호학파로 이전되는 변화의 첫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 2018. 4. 22.
제갈량 - 출사표(出師表) 출사표(出師表) 제갈량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殂, 今天下三分, 益州疲弊, 此誠危急存亡之秋也. 然侍衛之臣, 不懈於內, 忠志之士, 忘身於外者, 蓋追先帝之殊遇, 欲報之於陛下也.선제先帝께서 창업하시고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중도에 붕어하셨습니다.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뉘고 익주는 피폐하니, 이는 진실로 위급하여 나라가 존립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군주를 모시고 지키는 신하가 안에서 직분을 게을리하지 않고 충성스럽고 뜻있는 사士가 밖에서 자기 몸을 잊는 것은, 대개 선제의 특별한 대우를 돌이켜서 폐하께 보답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誠宜開張聖聽, 以光先帝遺德, 恢弘志士之氣, 不宜妄自菲薄, 引喩失義, 以塞忠諫之路也. 진실로 귀를 여시고 널리 충언을 들으셔서[開張聖聽] 선제께서 남기신 덕을 밝히고 뜻있는 사.. 2018. 4. 21.
고려후기 몽고침입과 민중항쟁의 성격 이익주, 1994, 「고려후기 몽고침입과 민중항쟁의 성격」, 『역사비평』 24 ▲처인성 전투 「고려후기 몽고침입과 민중항쟁의 성격」은 13세기 대몽 항쟁을 “‘국난극복’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하는 입장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글이다. “1장 : 문제의 제기”에서 필자는 13세기 대몽항쟁에 부여된 ‘민족적’성격의 평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고려-몽골’의 민족적 대립만으로 13세기 고려를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필자는 “13세기 이전부터 대립하던 고려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그리고 새로이 등장한 침략자 몽고, 이 셋 사이의 관계로서 설명해야” 좀 더 합리적인 설명이 될 것으로 보았다. “2장 : 대몽항쟁의 실상”에서는 12세기와 13세기의 고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관계에 대하.. 2018. 4. 21.
성경 「욥기」에 나타난 모순적인 신 성경 「욥기」에 나타난 모순적인 신 2018.04.21 신을 믿지 않지만 가끔 성경을 읽는다. 신앙의 문제를 떠나서 이 텍스트는 종종 인간 삶의 본질에 관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러한 성찰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구약의 「욥기」일 것이다. 「욥기」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고통’의 문제다. 신은 정말 선하고 의로운 존재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독실하게 신을 따르는 자가 현실에서 고통을 받는가? 거칠게 요약한다면 바로 이 질문이 「욥기」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 그는 열 명의 자식을 두었고, 상당히 많은 재산을 소유했다. 그의 재산은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천 마리에 .. 2018. 4. 21.
고려-몽골 관계에서 보이는 책봉-조공관계의 탐색 이익주, 「고려-몽골 관계에서 보이는 책봉-조공관계의 탐색」(『13~14세기 고려-몽골관계 탐구』, 동북아역사재단, 2011) 1. 머리말 1259년부터 1356년까지 약 100년에 가까운 시기를 ‘원 간섭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를 ‘원 간섭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원의 간섭을 받았으나 국가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지배’가 아닌 ‘간섭’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관점에 동의하는 저자는 고려-몽골(원) 관계를 구조적으로 파악하여 ‘세조구제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고려와 몽골(원) 관계의 원칙인 세조구제는 책봉-조공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원의 간섭은 책봉-조공관계의 한 시기적 양상이었다. 이런 관점은 몽골사 연구자와 모리히라 마사히코의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2000년대.. 2018. 4. 20.
호모 폴리티쿠스, 이승만 호모 폴리티쿠스, 이승만 -『우남 이승만 연구』 를 읽고- 2015.06. 자유민주주의의 영웅 vs 헌정을 유린한 독재자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건국 대통령인가, 아니면 헌정을 유린한 독재자인가? 이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아주 민감한 문제이다. 이를 둘러싸고 지난 수십 년 간 격렬한 논쟁이 이루어졌음에도 아직 사회적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여전히 한편에서는 이승만을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평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를 독재자로 평가한다. 이런 양극단의 평가는 종종 극단적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2006년 교과서포럼의 심포지엄에서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과 4.19혁명 희생자 유족들 간의 충돌은 그 단적인 사례이다. 그런 점에서 이승만은 여전히 논쟁적인 인물이고, 한국 사회의 갈등의 중심에 서.. 2018. 4. 20.
외계충격설, 그 의의와 한계 이태진 교수의 ‘외계충격설’, 그 의의와 한계 자연현상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자연현상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둔 몇몇 역사가들은 이 질문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한국사 연구에서 그러한 관심을 기울인 인물이 있다면 바로 이태진일 것이다. 논문 「소빙기(1500-1750) 천변재이 연구와 《조선왕조실록》』」의 서두에서 그는 서양 사학계의 소빙기 연구 방법론을 이용해 한국사를 연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역사 연구가 인간의 삶과 의지에 초점을 맞춰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자연과 과학이라는 중요한 변수를 역사 연구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외계충격설’로 불리는 그의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료가 한정적.. 2018.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