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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자집/고문진보

제갈량 - 후출사표(後出師表)

by 衍坡 2018. 4. 24.

후출사표(後出師表)


제갈량[각주:1]



후출사표



先帝慮漢賊不兩立, 王業不偏安, 故託臣以討賊也. 以先帝之明, 量臣之才, 固知臣伐賊, 才弱賊彊也. 然不伐賊, 王業亦亡, 惟坐而待亡, 孰與伐之. 是故, 託臣而不疑也. 

선제[劉備]께서는 한나라와 역적[魏]은 양립할 수 없고, 왕업(王業)은 천하의 한구석에만 안주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에게 역적을 토벌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선제께서는 밝은 지혜로 신의 재주를 헤아려 신이 역적을 토벌하기에 재주는 약하고 적은 강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역적을 토벌하지 않으면 왕업도 망할 것이니,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역적을 토벌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신에게 역적을 토벌하는 일을 맡기고도 의심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臣受命之日, 寢不安席, 食不甘味, 思惟北征, 宜先入南,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幷日而食, 臣非不自惜也. 顧王業, 不可得偏安於蜀都, 故冒危難, 以奉先帝之遺意, 而議者謂爲非計, 今賊適疲於西, 又務於東, 兵法乘勞, 此進趨之時也, 謹陳其事如左. 

신은 명을 받은 날부터 잠을 자도 잠자리가 편치 않고, 밥을 먹어도 밥맛이 달지 않았습니다. 북쪽을 정벌하려면 마땅히 남쪽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지난 5월 노수(瀘水)를 건너 불모지에 깊숙이 들어가 하루 걸러 밥을 먹으며 고생했습니다. 신이 제 자신을 아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왕업을 돌아보니 촉도(蜀都)에서 안주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선제의 유지를 받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논하기를 일삼는 자들은 그것이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적은 마침 서쪽에서 지쳐있고, 또 동쪽에서 애쓰고 있습니다. 병법에 “적이 피로한 틈을 타라”고 했으니, 지금이야말로 진격해야 할 때입니다. 삼가 그 사정을 아래와 같이 아룁니다.



高帝明並日月, 謀臣淵深, 然涉險被創, 危然後安, 今陛下未及高帝, 謀臣不如良平, 而欲以長策取勝, 坐定天下, 此臣之未解一也. 

고조[劉邦]의 밝으심은 일월(日月)과 같았고, 책사들의 지략은 연못처럼 깊었습니다. 그런데도 위험을 겪고 상처를 입어 위태로운 뒤에야 편안하셨습니다. 지금 폐하는 고조에 미치지 못하시고, 책사들의 지략도 장량과 진평만 못합니다. 그런데도 좋은 계책만으로 승리를 취해 가만히 앉아서 천하를 평정하려고 하니, 이는 신이 이해할 수 없는 첫 번째 일입니다.



劉繇王朗, 各據州郡, 論安言計, 動引聖人, 群疑滿腹, 衆難塞胸, 今歲不戰, 明年不征, 使孫策坐大, 遂幷江東, 此臣之未解二也. 

유요와 왕랑은 각자 주ㆍ군(州郡)을 차지하여 안위를 논하고 계책을 말하면서 걸핏하면 성인을 끌어댔지만, 여러 의심이 뱃속에 가득하고 여러 근심이 가슴에 가득 차 올해도 싸우지 않고 내년에도 정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손책이 가만히 앉아서 강대해져 마침내 강동(江東)을 병합하게 하였으니, 이는 신이 이해할 수 없는 두 번째 일입니다.



曹操智計殊絶於人, 其用兵也髣髴孫吳, 然困於南陽, 險於烏巢, 危於祁連, 偪於黎陽, 幾敗北山, 殆死潼關, 然後僞定一時爾. 況臣才弱而欲以不危而定之, 此臣之未解三也.

조조의 지략은 남들보다 뛰어나고, 용병술은 손무와 오기를 방불했습니다. 그러나 남양(南陽)에서 곤경에 빠졌고, 오소(烏巢)에서 위험에 처했으며, 기련(祁連)에서 위태했고, 여양(黎陽)에서 핍박받았으며, 북산(北山)에서는 거의 패망할 뻔했고, 동관(潼關)에서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그런 뒤에야 조조는 한때 거짓으로나마 천하를 평정하였습니다. 하물며 신은 재주가 약하면서도 위험을 겪지 않고 천하를 평정하려고 하니, 이는 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 번째 일입니다.

 


曹操五攻昌覇不下, 四越巢湖不成, 任用李服, 而李服圖之, 委任夏侯, 而夏侯敗亡, 先帝每稱操爲能, 猶有此失. 況臣駑下, 何能必勝, 此臣之未解四也. 

조조는 다섯 번 창패(昌覇)를 공격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했고, 네 번 소호(巢湖)를 넘었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복(李服)을 임용했지만 이복은 조조를 죽일 계획을 꾸몄고, 하후연에게 위임하였으나 하후연은 패망하였습니다. 선제께서 매번 조조를 유능하다고 칭찬하셨는데, 조조도 이처럼 실패하곤 했습니다. 하물며 신은 노둔하고 못났으니 어찌 반드시 이기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신이 이해할 수 없는 네 번째 일입니다.


自臣到漢中, 中間朞年耳. 然喪趙雲、 陽群、 馬玉、 閻芝、 丁立、 白壽、 劉郃、  鄧銅等、 及曲長、 屯將七十餘人、 突將、無前、 賨叟、 靑羌、 散騎、 武騎一千餘人. 此皆數十年之內, 所糾合四方之精銳, 非一州之所有. 若復數年, 則損三分之二也. 當何以圖敵, 此臣之未解五也. 

신이 한중에 도착한 이후 그간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조운(趙雲)ㆍ양군(陽群)ㆍ마옥(馬玉)ㆍ염지(閻芝)ㆍ정립(丁立)ㆍ백수(白壽)ㆍ유합(劉郃)ㆍ동등(鄧銅) 등과 곡장(曲長)ㆍ둔장(屯將) 70여명, 돌장(突將)ㆍ무전(無前)ㆍ종수(賨叟)ㆍ청강(靑羌)ㆍ산기(散騎)ㆍ무기(武騎) 천여 명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수십 년 사방에서 모든 정예들이니, 익주 한 고을에 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약 다시 몇 년이 지나면 3분의 2를 잃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어떻게 적을 도모하겠습니까? 이는 신이 이해할 수 없는 다섯 번째 일입니다.



今民窮兵疲, 而事不可息, 事不可息, 則住與行, 勞費正等, 而不及蚤圖之, 欲以一州之地,  與賊持久, 此臣之未解六也. 

지금은 백성이 궁핍하고 병사들은 피폐하지만, 역적을 토벌하는 일은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 일을 그만둘 수 없다면, 가만히 있는 것이나 적을 토벌하러 가는 것이나 노고와 비용은 똑같습니다. 그런데도 서둘러 적을 도모하려 하지 않고 익주라는 한 고을의 땅에서 적과 오랫동안 대치하려고 하니, 이는 신이 이해할 수 없는 여섯 번째 일입니다.



夫難平者, 事也. 昔先帝敗軍於楚, 當此時, 曺操拊手, 謂天下已定,  然後先帝東連吳越, 西取巴蜀, 擧兵北征, 夏侯授首. 此操之失計, 而漢事將成也. 然後吳更違盟, 關羽毁敗, 秭歸蹉跌, 曹丕稱帝, 凡事如是, 難可逆見. 臣 鞠躬盡瘁, 死而後已, 至於成敗利鈍, 非臣之明, 所能逆覩也. 

무릇 일이란 미리 단정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옛날에 선제께서 초 땅에서 패배하였는데, 이때 조조가 손뼉을 치면서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선제께서 동쪽으로는 오ㆍ월과 손잡고, 서쪽으로는 파촉(巴蜀) 땅을 취하며, 군대를 일으켜 북쪽을 정벌하니 하후연이 머리를 내놓았습니다. 이는 조조의 실책으로, 한나라의 왕업이 장차 이루어지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오나라가 다시 맹약을 어겨 관우가 패하고 죽고, 자귀현에서 패하여 차질이 생겼으며, 조비가 황제를 칭하였습니다. 모든 일이 이와 같아 미리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신은 몸을 굽혀 온힘을 다하고 죽은 뒤에야 그만둘 것입니다. 일의 성공과 실패, 이익과 손실에 관해서는 신의 지혜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 이 글은 제갈량이 쓴 것이 아니라 후대에 조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고문진보의 표기를 따른 것이므로 제갈량의 이름을 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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