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에는 생각이 많아서 잠이 오질 않는다. 여태 잠들지 못해서 괴롭다.
1. 읽은 사료를 정리하던 한글 파일을 열었더니 마지막으로 사료를 읽은 날짜가 작년 5월 말로 표기되어 있다. 새삼스럽지만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그동안 빈둥거린 것도 아니고 잠이라도 실컷 잔 것도 아닌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한 걸까? 글을 쓰려고 해도 아무 생각이 없어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이니 부끄럽다. 내가 일과 본업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데 완전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도 이런저런 일을 부여잡고서 넋놓고 있는 내게 본업을 놓지 말라고 진지하게 충고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 그들에게 참 감사하다. 이제 정신 좀 차려야지.
2. 요즘 자꾸 해야 할 일을 시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도대체 내가 왜 일을 자꾸 미루게 되는지를 가만히 생각해보았는데, 내게 완벽주의적인 강박이 분명히 있다. 얼마전에 지인으로부터 들으니 내가 "그런 식으로 일 할 거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듣고 보니 자주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는 하다. 여하튼, 선택지가 일을 제대로 하거나 시작을 말거나 두 가지 밖에 없는 건 좀 극단적인 것 같다. 이런 나의 강박을 잘 조절해나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3. 내게는 '성취'도 중요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진정성 있는 관계들을 맺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비록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관계 맺는 폭도 좁은 편이지만, 한 번 마음을 준 사람은 끝까지 신뢰하는 편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금방 아물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건 그런 내 성격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해관계에 따라 관계를 맺고 끊는 일은 내게 잘 맞지 않는다.
4. 학술을 가지고 '불합리한'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사람들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사회구조' 같이 추상적인 대상을 때리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다. 눈앞에 마주한 상황에서, 여러 사람과 맺고 있는 관계망 안에서 내가 어떻게 성숙한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건 훨씬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 하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누군들 못하겠나? 꿈결에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말들에 은근하게 묻어있는 계몽주의적인 로망들도 불편하다.
5. 사람은 누구나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건 나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내가 그런 내 모습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내가 추구하는 인간상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데서 불편한 마음들이 쉼없이 생겨난다. 매일매일 나의 말과 행동을 곱씹으면서 불편한 마음을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인 것 같다.
6. 어쩌다보니 지나간 시간들도 생각난다. 슬픔과 분노가 삶의 동력이던 시절은 이제 내 삶에서 완전히 지나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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