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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비망록

비망록 5: 학위논문

by 衍坡 2021. 8. 29.



어느새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에 들어온 지 꼭 다섯 학기 만의 일이다. 초고를 쓰기 시작한 시점이 올해 1월이었는데, 벌써 여름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시간이 정말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과연 얼마나 완성도 있고 재미있는 글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후회나 미련은 없다. 얼마나 짜임새 있는 논문을 썼는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내게는 무사히 삶의 한 과정을 마무리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대학을 졸업하던 4년 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살아가는 일에 넌더리가 났다. 먹고 자는 아주 평범한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삶의 짙은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고 나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어 참 기쁘다. 이젠 지나간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 그 어려운 시간을 겪고 만들어낸 성과물이라 감개무량하다.

지난 5년간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은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참 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입었다. 보잘것없는 내 손을 놓지 않고 늘 내 곁에 머물러주었던 이들에게 느끼는 감사함은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들의 위로와 쓴소리가 없었다면 난 여전히 슬픔과 분노와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미성숙한 존재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관계들을 맺었다는 게 어찌나 고마운지.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내 마음이 성장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둔한 나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는 데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치밀하게 자료를 읽고 좋은 논문을 쓰는 연구자가 되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의 마음을 살피고 돌보는 일이다. 그래서 난 맹자의 말을 좋아한다. “귀해지고 싶어하는 것은 사람들의 다 똑같은 마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귀함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남들이 귀하게 해준 것은 정말로 귀한 것이 아니다. 조맹(趙孟)이 귀하게 해준 것은 조맹이 천하게 할 수 있다.”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 자신이 매일매일 성장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좋은 면들을 잘 붙잡고 부족한 면들은 열심히 채워나가고 싶다. 교만해지지 않고 하루하루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에 책임지며 열심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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