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저 정리61 조선 초기 圓壇祭 시행의 난제와 독자 왕조의 의례 모색 장래건, 2022, 조선 초기 圓壇祭 시행의 난제와 독자 왕조의 의례 모색, 한국사론 68 이 연구는 변계량의 원단제 시행설이 등장하고 해소된 맥락을 중심으로 조선 초기 원단제 논쟁을 검토한 것이다. 조선 초기의 정치가들은 왜 원단제를 필요로 했는가. 그들이 원단제의 존폐를 두고 씨름했던 난제는 무엇이었는가. 당대인들은 이 난제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려 했는가. 논쟁의 결론은 어째서 원단제 폐지로 귀결되었는가. 이런 질문들이 이 글의 주된 관심사다. 연구의 초점을 변계량의 논법에 맞춘 것도 원단제 논쟁의 쟁점과 난제, 당대인의 대응 방식, 원단제 시행설의 실패 요인을 보여주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원단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은 선행연구에서 지적한 것처럼 제후국 분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당위가.. 2021. 7. 19. 여말선초 도학의 성격과 도통론 심예인, 2018, 「여말선초 도학의 성격과 도통론」, 『조선시대사학보』 85 정리일: 2020.07.07 Ⅰ. 머리말 조선은 理學을 지배이념으로 하여 성립된 나라다. 이학은 程朱의 理學과 陸王의 心學을 아우른 개념이다. 조선의 유학은 그중에서 程朱 중심의 이학을 발전시켜 나간 것이 특색이다. 고려 말에 원나라로부터 이학이 수용되었는데, 고려는 주자성리학만이 아닌 이학의 다양한 학풍을 수용했다. 그런 점에서 여말선초 유학 사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면 그간 통용되던 ‘성리학’보다는 ‘이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학은 흔히 ‘道學’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말의 학자들도 원나라에서 수용한 이학을 도학이라 했다. 자기 사상에 대한 우월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도학은 道統論과 闢異端論, 의리실천.. 2020. 7. 7. 문장의 역할을 통해 본 15세기 斯文의 성격 오세현, 2017, 문장의 역할을 통해 본 15세기 斯文의 성격, 사학연구 127 2020.04.29. 머리말 17세기의 송시열은 주희의 견해를 일부 부정한 윤휴와 박세당을 ‘斯文亂賊’이라 비판했다. 그에게는 오직 주희의 학문만이 ‘斯文’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 전기의 지식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송시열과 달리 그들은 도학뿐 아니라 문장도 사문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인품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도덕과 함께 문장력을 거론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조선 후기에 사문에 관한 인식이 엄격해진 것은 사문의 다양한 구성 요소 중에서 道學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를 배제한 결과였다. 하지만 조선 전기에는 사문에서 근본적인 위상을 지닌 도학뿐 아니라 현실적 가치를 지닌 문장의 위상과 역.. 2020. 5. 3. 고려 말 私田 혁파와 과전법에 대한 재검토 이민우, 2015, 고려 말 私田 혁파와 과전법에 대한 재검토, 『규장각』 47 2020.04.13. 1. 머리말 위화도회군으로 국정을 장악한 이성계 세력은 사전을 혁파해서 고려의 토지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할 것을 요구했고, 격렬한 논쟁 끝에 결국 사전을 혁파하고 과전법을 제정했다. 고려 말 토지제도 개혁의 성과는 조선의 토지제도로 계승되었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고려 말의 토지제도 개혁은 수조권이 쇠퇴하고 소유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조선 건국이라는 큰 정치적 변화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토지제도 개혁의 결과인 과전법은 여전히 수조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고려의 토지제도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한다. 저자는 고려 말 사람들의 인식이 기존 연구의 논점과 매우 다르다는 점을 지적.. 2020. 4. 23. 고려 말 정도전의 정치세력 형성 과정 연구 이익주, 2006, 고려 말 정도전의 정치세력 형성 과정 연구, 『동방학지』 134 정리: 2020.04.12. 1. 머리말 그간 조선 건국을 주도한 정치세력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그 정치세력 내부의 구성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저자는 조선 건국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던 정도전과 조준을 비교해서 조선건국세력 내부의 구성과 다양한 정치운영론을 규명하려 한다. 저자는 이전에 『삼봉집』의 시문을 분석해서 정도전이 이색 문하의 인물들과 활발히 교유한 반면 조준 계열의 인물들과는 소원했음을 밝혔다. (이익주, 2004) 저자는 그것이 정도전의 인간적인 교유에 국한된 것이었음을 밝히고, 이 글에서는 이전 연구의 연장선에서 정도전의 ‘정치적 관계’를 분석하려 했다. 즉, 정도전이 고려 말.. 2020. 4. 14. 선종구산문과 선문예참문의 문제점 허흥식, 1983, 「선종구산문과 선문예참문의 문제점」, 『역사교육논집』 5 2020.03.18. 그동안 한국사 연구에서는 나말여초에 선종이 성행하여 구산문(九山門)이 성립했다고 설명해왔다. 허흥식의 이 논문은 『선문조사예참문』(禪門祖師禮懺文)을 분석해서 신라 말에 선종구산문(禪宗九山門)이 성립했다는 종래의 설명 틀을 재검토하려는 글이다. 저자는 선종 조사에 대한 배례 의식을 수록한 『선문조사예참문』이 다른 저술에 비해서 “고려시대의 선종을 개괄해서 법맥(法脈)을 유추”하기에 훨씬 더 유용한 저작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 책에는 중국의 선종 조사 서른세 명뿐만 아니라 한국 측의 조사 열 사람에 대한 예참문도 실려있다. 이 열 명 중 아홉 사람은 나말여초에 활동했던 조사고, 나머지 한 사람.. 2020. 3. 20. 신라하대 선종구산파의 성립 최병헌, 1972, 「신라하대 선종구산파의 성립 –최치원의 四山碑銘을 중심으로」, 한국사연구 7 2020.03.18. 서언 최치원이 작성한 ‘四山碑銘’은 신라 하대의 불교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핵심적인 자료라 한다. 저자는 이 글에서 최치원의 사산비명을 검토하여 신라 하대 선종구산파의 성립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지 밝히려 한다. 사산비명을 중심으로 신라 하대의 선종사를 검토하기 때문에 저자는 검토 범위의 하한을 진성여왕 대로 설정했다. 1. 선종 성립 이전의 신라 불교 최치원은 불교가 백제ㆍ고구려ㆍ신라 순으로 수용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신라의 불교 수용이 율령 반포 이후 8년 만에 이루어졌음을 특기했다. 당시 신라인들은 율령 반포를 전후한 법흥왕 대의 정치적 변혁을 대단히 중시했을 뿐 아니라 .. 2020. 3. 20.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와 문명화(1904~1919) 권태억, 2014,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와 문명화(1904~1919)』, 서울대 출판부 2020.01.29. Ⅰ. 제국주의 침략기 문명화 사명론과 일본 1. ‘문명화 사명’과 국제법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아시아ㆍ아프리카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어 지배할 때 내세운 합리화의 논리가 바로 ‘문명화’였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하면서 ‘문명화’의 구호를 내세웠다. ‘文明’은 본래 일본이 Civilization이라는 어휘를 번역해서 만들어낸 어휘다. Civilization의 어원인 civilisㆍcivilitas는 본래 ‘시민이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뜻했다. ‘문명’의 의미가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은 18세기 이후다. Civilization도 18세기 프랑스에서 등장한 신.. 2020. 1. 31. 명초 외교제도의 성립과 그 기원 정동훈, 2019, 「명초 외교제도의 성립과 그 기원: 고려-몽골 관계의 유산과 그 전유」, 『역사와 현실』 113 2020.01.12. 문제의 소재: 조공시스템은 과연 실재했나? 저자는 오늘날 연구자들이 거론하는 ‘조공시스템’(tributary system)을 당대인들이 처음부터 기획하거나 상정한 적이 없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오히려 후대 연구자들이 몇 가지 제도나 관례를 조합해서 사후적으로 구성해낸 결과물이라고 한다. John K. Fairbank가 1940년대에 조공시스템론을 제창한 이래로 그 개념은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틀로 자리매김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과 그 주변국의 관계는 상하 위계 속에서 외교와 무역이 결합한 형태로 존재했다고 한다. 주변국은 거대한 부를 .. 2020. 1. 19. 공민왕대 개혁의 추이와 신흥유신의 성장 이익주, 1995, 「공민왕대 개혁의 추이와 신흥유신의 성장」, 『역사와 현실』 15 2020.01.18. 1. 머리말 공민왕 대는 원 간섭기의 정치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체제가 수립되었고, 그 과정에서 ‘新興士大夫’라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 신흥사대부 등장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려면 원 간섭기 정치체제에 대한 이해와 공민왕 대에 새로운 정치체제가 수립되는 과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여전히 사대부의 개념조차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고려 후기의 사회변동과 새로운 사회 세력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사대부의 개념을 폐기하는 것은 부당하고, 그보다는 문제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대부가 정치세력화한 시기를 과도하게 소급하는 오류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사대부는 ‘중소지주로서 동일.. 2020. 1. 19. 이전 1 2 3 4 5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