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6 공민왕대 개혁의 추이와 신흥유신의 성장 이익주, 1995, 「공민왕대 개혁의 추이와 신흥유신의 성장」, 『역사와 현실』 15 2020.01.18. 1. 머리말 공민왕 대는 원 간섭기의 정치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체제가 수립되었고, 그 과정에서 ‘新興士大夫’라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 신흥사대부 등장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려면 원 간섭기 정치체제에 대한 이해와 공민왕 대에 새로운 정치체제가 수립되는 과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여전히 사대부의 개념조차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고려 후기의 사회변동과 새로운 사회 세력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사대부의 개념을 폐기하는 것은 부당하고, 그보다는 문제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대부가 정치세력화한 시기를 과도하게 소급하는 오류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사대부는 ‘중소지주로서 동일.. 2020. 1. 19. 반원운동에 관한 연구사 정리 반원운동에 관한 연구사 정리 2019.12.05 공민왕은 1356년 5월에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원(元)과 결탁해서 권세를 휘두르던 기철 일가와 ‘부원세력’을 일시에 숙청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했다. 아울러 압록강 서쪽의 8참을 공격하고, 동북쪽에 군사를 보내 쌍성 등의 지역을 되찾았다. 공민왕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군의 만호ㆍ진무ㆍ천호ㆍ백호가 지닌 패를 회수했다. 이 일련의 조치는 공민왕의 계획 아래 치밀하게 진행되었고, 결국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정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반원운동’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워낙 전격적이고 극적으로 이루어졌던 만큼 많은 한국사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각주:1] ‘반원운동’을 고려의 국내외적 조건 속에서 종합적으.. 2019. 12. 6. 공민왕 대의 국왕 측근세력 형성 과정에 관한 검토 공민왕 대의 국왕 측근세력 형성 과정에 관한 검토 2019.06.22 1. 머리말 2. 즉위 직후의 정치적 동향과 호종 신료의 분열 3. 공민왕과 조일신 세력의 정치적 관계 4. 부원세력 제거와 측근세력의 결집 5. 맺음말 1. 머리말 공민왕 대(1351~1374)의 고려는 안팎으로 중대한 변화와 위기를 마주했다. 대외적으로는 원(元)의 통치력이 급격히 약해지는 한편 장강 이남에서 홍건적 등의 반원세력(反元勢力)이 봉기했다. 고려가 홍건적과 왜구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던 배경에는 그런 국제질서의 변동이 있었다. 국내의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원과 결탁한 부원세력(附元勢力)의 전횡과 지배계층의 대민수탈은 고려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 심각했다. 공민왕 대는 이러한 대내외적인 변화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해법들을.. 2019. 7. 1. 공민왕 대 고려-몽골(원) 관계의 변화 공민왕 대 고려-몽골(원) 관계의 변화 2019.05.28 ▲공민왕 부부 초상화 몽골(원)은 1351년 충정왕을 폐위하고 몽골에 머무르던 왕기(王祺)를 새로 고려의 국왕으로 임명했다. 몽골(원)의 의사에 따라 고려 국왕이 폐위되거나 즉위하는 사례는 몽골 복속기 내내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었던 만큼 공민왕의 즉위 과정 자체가 특이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공민왕이 즉위하던 시점에도 몽골(원)이 고려 국왕에 대한 임면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음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몽골(원)이 공민왕 초반에도 고려의 국정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몽골(원)은 아주 손쉽게 자신들의 요구를 고려에 관철했다. 1354년(공민왕 3) 당시 몽골(원)은 장강 이.. 2019. 5. 28. 「공민왕 5년(1356) ‘반원개혁’의 재검토」를 읽고 「공민왕 5년(1356) ‘반원개혁’의 재검토」를 읽고 ( 이강한, 2009, 「공민왕 5년(1356) ‘反元改革’의 재검토」, 『대동문화연구』 65 ) 2019.05.04 ○ 총론: 지금껏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반원’의 개념이 그리 엄밀하지 않다는 점, 고려후기 지배층이 매우 복잡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 공민왕이 추진한 개혁에서 국내정치의 맥락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매우 유익했다. 다만 ‘반원’이라는 틀을 배제하고 공민왕의 개혁을 분석하다보니 몽골(원)이라는 변수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공민왕이 ‘세조구제’를 회복ㆍ유지하려고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몽골(원)은 여전히 고려의 정치에서 중요한 변수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몽골(원)이 매우 수동적.. 2019. 5. 4. 공민왕 5년(1356) ‘반원개혁’의 재검토 이강한, 2009, 「공민왕 5년(1356) ‘反元改革’의 재검토」, 『대동문화연구』 65 정리일: 2019.05.04 1. 머리말 일반적으로 1356년(공민왕 5) 5월에 공민왕이 기철 일파를 제거하고 정동행성 이문소와 만호부를 해체한 사건을 ‘반원운동’(反元運動)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저자는 공민왕에게 고려-원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의사가 없었다고 파악한다. 오히려 공민왕의 목적은 ‘세조구제’ 회복에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원개혁’으로 규정되었던 사안들은 공민왕이 마주했던 국내의 국정 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 위에서 1356년에 단행된 공민왕의 개혁을 재검토했다. 그가 검토한 내용은 ①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②만호부제 폐지 요구, ③재정개혁, ④.. 2019. 5. 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