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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종로에 갔다. 종로가 알게 모르게 참 많이 바뀌었다. 20대의 기억이 많이 묻어있는 장소다. 그러나 이제 나는 20대가 아니고, 지나가는 것들을 보내주어야 한다.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관계 중 대부분은 사실 의미 없는, 나 혼자 붙들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제 그런 무의미한 관계들도 정리한다. 지금의 내 일상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2025. 5. 14.
완벽주의 점점 무언가를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게 된다. 종종 어떤 일들은 시작하지 않고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그렇게 행동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니 결국 내가 가진 완벽주의적인 강박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책 한 권을 읽으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교열 보듯이 읽게 되니 읽는 속도도 더디고 글도 잘 읽지 않게 된다. 글을 정리하려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내 말투로 소화해서 정리를 하려고 하니 정리를 하면 시간이 많이 든다. 일을 제대로 할 게 아니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은 "그런 식으로 일할 거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마"이다. 이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 것 같다.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잘 참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2025. 5. 11.
드라마 〈오늘의 탐정〉에 관한 생각들 드라마 〈오늘의 탐정〉에 관한 생각들 2021.02.17   1. 연초에 우연히 〈오늘의 탐정〉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는 유학자가 아니니 상관 없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잔인하거나 공포스러운 것에 큰 자극을 느끼지 않는 편이라 귀신 호러물은 잘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시청한 것은 작가가 작품에 굳이 '귀신'을 등장시킨 이유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분노 범죄가 약자를 향한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데, 이를 단순히 사이코패스의 소행이라 넘기려는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분노 범죄를 저지르는 연쇄살인범, 분노로 인해 남을 가해하는 사람 등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치 이들을 유령 보듯이 못 본 척 하.. 2024. 10. 6.
정조는 ‘마키아벨리스트’인가? 정조는 ‘마키아벨리스트’인가?― 정병설의 『권력과 인간』을 읽고 ― 2020.04.   국문학자 정병설의 책, 『권력과 인간』은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배경과 의미를 다시 파악하려 한 책이다. 저자는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자라고 보는 기존의 설명에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사도세자가 그의 ‘광증’에서 비롯된 ‘반역’으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고 보았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의 아들 정조에 의해 미화되었으며, 후대에 이 자료를 근거로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자라는 통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설명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정치사적 측면에서 바라보기보다 ‘개인사’ 혹은 ‘가족사’의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특징이 있다. 저자가 이런 설명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주로 사도세자의 처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 2024. 10. 5.
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의 역사 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의 역사  2020.5.25  이른바 ‘개천절’(開天節)은 한국의 국경일 중 하나다. ‘국조’(國祖) 단군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내세워 ‘단군조선’을 건국한 것을 기리는 날이다. 단군이 실존했던 인물인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하지만 단군이 실존했는지와는 별개로, 단군을 민족이나 국가의 시조로 여기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이런 인식은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단군에 대한 인식이 수백 년 동안 한결같았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단군을 바라보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랐고, 동시대의 인물들이 단군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는 단군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시대와 인물에 따라 살펴보려 한다. .. 2024. 10. 4.
신흥유신과 신진사대부 고려 말의 정치세력으로서 '사대부'의 개념을 두고 여러 논의가 존재하는데, 그중에는 사대부의 개념과 별도로 '신흥유신'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입론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익주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그는 '신흥유신'과 '신흥사대부'라는 용어를 엄밀하게 구분해서 사용한다. 이것은 1998년에 발표된 그의 논문 서두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신흥유신은 고려 후기에 성리학자로서 과거에 급제한 관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회경제적 기반을 기준으로 구분되는 세족과 사대부가 모두 포함되는 개념이다. 단지 이들은 성리학자로서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개혁의지를 공유하고 있었고, 좌주·문생 관계를 통해 집단을 형성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흥유신이 주도하는 개혁의 흐름 속에서 신흥유신 가운데 사대부.. 2024. 9. 6.
백종원 ‘백종원 가맹점’ 영업 기간 3년…다른 가게들보다 훨씬 짧아(☞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유명 방송인 백종원이 운영하는 더본코리아 산하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창업 이후 존속 기간이 평균 3년에 그친 것으로 분석v.daum.net대략 십 년 전 쯤에 종로 쪽의 "새마을식당"이라는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내 입맛에는 음식이 너무 실망스러웠고, 그 뒤로는 "새마을식당"이라는 간판을 건 점포에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때는 백종원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그 식당이 백종원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의 브랜드라는 것은 당연히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백종원이 이런저런 방송에 출연해서 유명세를 얻게 된 뒤였다.백종원이 출연해서 음식 레시.. 2024. 8. 5.
『공(空)이란 무엇인가』: 사물은 어떻게 존재하나 『공(空)이란 무엇인가』(김영진, 2009): 사물은 어떻게 존재하나  삼장법사와 손오공 『서유기』에 담긴 불교 개념1. 三藏(tripitka): 經·律·論 세 분야의 불교 텍스트를 지칭 → 불법 전체의 상징2. 悟空(慧): ‘空’을 깨닫는다는 의미대승불교는 모든 존재[諸法]이 공하다고 말한다. 한 사물, 한 인간에게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너라고 할 만한 게 없다. (…) 대승불교에서는 ‘나’라는 실체 없음을 공하다고 표현한다. (15~16면)‘공을 깨닫는다’는 말을 다른 불교 용어로 고치면 般若이다. 대승불교에서 반야는 존재의 본질[實相]에 대한 지혜다. (16면)八戒(戒): 不殺生 등 불교인이 삼갈 여덟 덕목 → 일상에서 실현해야 할 가치3. 悟淨(定): 맑디맑은 본디 마음의 깨달음 → 의식의 .. 2024. 7. 18.
『역사의 풍경』: 시간과 공간(실증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존 루이스 개디스 저, 강규형 역, 『역사의 풍경』, 「시간과 공간」, 에코리브르 '실증주의'의 한계역사를 책상 위에 놓인 달력처럼 기술하는 방법은, 날씨, 수확량, 달의 차고 기움뿐 아니라 더욱 별난 현상들까지 꼼꼼히 기록해놓은 연대기의 형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철학자 헤이든 화이트(Hayden White)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일련의 사건을 엄격하게 일어난 순서대로 적다 보면 대체로 그 즉시 분명한 발단, 전개, 결말이 있는 이야기로 스스로 재조정되기 마련이다. (40면)화이트가 설명 방법을 논할 때, 진실로 말하고자 했단 바가 역사가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 (…) 어떤 것을 더 깊이 있게 다루고, 그래서 엄격한 연대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 2024. 7. 11.
[리뷰] 곽광 고사의 정치적 활용 양상 일고 최혜미, 2018, 곽광 고사의 정치적 활용 양상 일고, 근역한문학회(49) 2024.03.31 이 글은 한나라 권신 곽광의 고사가 조선 전기에 어떤 방식으로 독해되었는가에 주목한다. 곽광의 고사가 특정한 정치적 맥락 속에서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담아 활용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게 보면 조선 지배층이 곽광 고사를 언급한 사례는 수사학적 차원에서만 분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발화가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저자는 이 글에서 그 작업을 수행했다. 저자에 의하면, 조선에서는 중종반정을 기점으로 곽광에 대한 평가와 그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양상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의 논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본래 중국에서 곽광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 2024.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