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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자집/중국 사서

[통감절요] 주기 안왕

by 衍坡 2019. 4. 19.

『통감절요』 「주기」 : 안왕(安王)

 

2019.04.19

 

 

오기

▲오기(吳起)





安王在位二十六年.
안왕(安王)은 재위가 26년이다.




庚寅, 十一年. 田和遷齊康公於海上, 使食一城奉先祀.
무인년 재위 21년에 전화(田和)가 제나라 강공(康公)을 바닷가에 옮겨놓고 성 하나에서 식읍을 받아 선조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壬辰, 十三年. 齊田和求爲諸侯, 魏文侯爲之請於王及諸侯, 王許之.
임진년 재위 23년에 제나라 전화가 제후가 되기를 요구하여 위(魏) 문후(文侯)가 그를 위해 왕과 제후에게 (전화를 제후로 삼기를) 청하자 왕이 허락했다.




甲午, 十五年. 魏文侯薨, 太子擊立, 是爲武侯. 武侯浮西河而下中流, 顧謂吳起曰: “美哉! 山河之固. 此魏國之寶也.” 對曰: “在德, 不在險. 昔三苗氏, 左洞庭, 右彭蠡, 德義不修, 禹滅之. 夏桀之居, 左河濟, 右泰華, 伊闕在其南, 羊腸在其北, 修政不仁, 湯放之. 商紂之國, 左孟門, 右太行, 常山在其北, 大河經其南, 修政不德, 武王殺之. 由此觀之, 在德, 不在險. 若君不修德, 舟中之人皆敵國也.” 武侯曰: “善!”
갑오년 재위 15년에 위나라 문후가 훙서하고 태자 격(擊)이 즉위하니, 이 사람이 무후(武侯)다. 무후가 서하(西河)에 배를 띄우고 중류로 내려가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오기에게 말했다. “아름답구나, 험고한 산하여! 이것은 위나라의 보물일세.”
오기가 대답했다. “(나라의 존망은) 덕(德)에 달린 것이지 지세의 험고함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 삼묘씨(三苗氏)는 동정호(洞庭湖)를 왼쪽에 두고 팽려호(彭蠡湖)를 오른쪽에 두었으나 덕의(德義)를 가다듬지 않아 우(禹)가 멸망시켰습니다. 하나라 걸(桀)의 거처는 황하와 제수(濟水)를 왼쪽에 두고 태화산(泰華山)을 오른쪽에 두었으며, 이궐산(伊闕山)이 그 남쪽에 있고 양창산(羊腸山)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정사를 베푸는 데 인(仁)으로 하지 않아서 않아서 탕(湯)이 그를 쫓아냈습니다. 상나라 주(紂)의 도읍은 맹문산(孟門山)을 왼쪽에 두고 태항산(太行山)을 오른쪽에 두었으며, 상산(常山)이 북쪽에 있고 황하[大河]가 남쪽을 지났으나 정사를 베푸는 데 덕으로 하지 않아서 무왕이 그를 살해했습니다. 이것으로 보면 (나라의 존망은) 덕에 달려있는 것이지, 지세의 험고함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만일 주군께서 덕을 가다듬지 않으시면, 이 배 안에 있는 사람도 모두 적국입니다.”
무후가 말했다. “좋은 말이다.”




○魏置相, 相田文, 吳起不悅, 謂田文曰: “請與子論功可乎?” 田文曰: “可.” 起曰: “將三軍, 使士卒樂死, 敵國不敢謀, 子孰與起?” 文曰: “不如子.” 起曰: “治百官, 親萬民, 實府庫, 子孰與起?” 文曰: “不如子.” 起曰: “守西河, 而秦兵不敢東鄕, 韓趙賓從, 子孰與起?” 文曰: “不如子.” 起曰: “此三者, 子皆出吾下, 而位加吾上, 何也?”[각주:1] 文曰: “主少國疑, 大臣未附, 百姓不信. 方是之時, 屬之子乎? 屬之我乎?” 起黙然良久曰: “屬之子矣.” 

위나라가 재상을 세울 적에 전문(田文)을 재상으로 삼았다. 오기가 불쾌하여 전문에게 말했다. “당신과 공(功)을 따져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전문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오기가 말했다. “삼군(三軍)을 거느리고서 사졸들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하여 적국이 감히 넘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당신이 저보다 뛰어납니까?”
전문이 말했다.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말했다. “백관(百官)을 다스리고 만민(萬民)을 친하게 하고 창고를 채우는 것은 그대가 저보다 뛰어납니까?”
전문이 말했다.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말했다. “서하를 지켜서 진(秦)의 병사가 감히 동쪽을 바라보지 못하고 한(韓)ㆍ조(趙)가 복종하여 따르게 하는 것은 그대가 저보다 뛰어납니까?”
전문이 말했다. “그대만 못하지요.”
오기가 말했다. “이 세 가지는 그대가 모두 나보다 못한데도 지위는 내 위에 더해지니 어째서입니까?”
전문이 대답했다. “군주가 어려서 온 나라가 의심하니, 대신은 따르지 않고 백성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런 때에 (국정을) 당신에게 맡기겠습니까? 제게 맡기겠습니까?”
오기가 꽤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당신에게 맡겨야 합니다.”




久之, 魏武侯疑之, 起懼誅, 遂奔楚. 楚悼王素聞其賢, 至則任之爲相. 起明法審令, 捐不急之官, 廢公族䟽遠者, 以撫養戰鬪之士, 要在彊兵. 破遊說之言從橫者. 於是南平百越, 北却三晉, 西伐秦, 諸侯皆患楚之彊, 而楚之貴戚大臣多怨吳起者.

한참이 지난 뒤, 위나라 무후가 그를 의심하자 오기는 처벌을 두려워하여 초나라로 달아났다. 초나라 도왕(悼王)은 본래 그가 뛰어나다는 것을 듣고 오기가 이르자 국정을 맡기고 재상으로 삼았다. 오기는 법을 밝히고 명령[令]을 살펴서 시급하지 않은 관리를 줄이고 공족(公族) 가운데 소원한 자들을 폐하여 전투하는 군사를 잘 돌보아 길렀으니, 핵심은 병사를 강하게 하는 데 있었다. 유세하여 합종(合從)과 연횡(連橫)을 말하는 자들을 깨뜨렸다. 이때 남쪽으로 여러 월족(越族)을 평정했고, 북쪽으로는 삼진(三晉: 한ㆍ위ㆍ조)을 물리쳤으며, 서쪽으로 진(秦)을 정벌했다. 제후들은 모두 초나라의 강성함을 근심했고 초나라의 귀척대신(貴戚大臣)[각주:2]은 오기를 원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乙未十六年, 初命齊大夫田和, 爲諸侯.
을미년 재위 16년, 처음으로 제나라 대부 전화에게 명을 내려 제후로 삼았다.



庚子二十一年, 楚悼王薨, 貴戚大臣作亂, 攻殺起.
경자년 재위 21년, 초나라 도왕이 훙서하자 귀척대신이 난을 일으켜 오기를 공격해 죽였다.




壬寅二十三年, 齊康公薨, 無子, 田氏遂幷齊而有之.
임인년 재위 23년, 제나라 강공이 훙서했는데 자식이 없었으므로 전씨가 제나라를 병합하고 차지했다.




甲辰二十五年, 子思言苟變於衛侯曰: “其材可將五百乘[각주:3].” 公曰: “吾知其可將. 然變也嘗爲吏, 賦於民而食人二雞子, 故弗用也.” 子思曰: “夫聖人之官人, 猶匠之用木也, 取其所長, 棄其所短, 故杞梓連抱, 而有數尺之朽, 良工不棄. 今君處戰國之世, 選爪牙之士, 而以二卵棄干城之將, 此不可使聞於鄰國也.” 公再拜曰: “謹受敎矣.”

갑진년 재위 25년, 자사(子思)가 위후(衛侯)에게 구섭(苟變)에 관해 말했다. “그의 재목은 500승을 이끌만합니다.”
공(公: 위후)이 말했다. “나도 그가 (500승의 군대를) 이끌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섭은 관리가 되어 백성에게 부세(賦稅)를 거두면서 남의 달걀 두 개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등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사가 말했다. “무릇 성인이 다른 사람에게 벼슬을 주는 것은 장인이 나무를 쓰는 것과 같아서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버립니다. 그래서 한 아름 되는 구기나무와 가래나무에 썩은 곳이 몇 척이 있더라도 뛰어난 장인은 버리지 않습니다. 지금 군주께서는 전국(戰國)의 세상에 처하여 조아(爪牙)와 같은 긴요한 신하[爪牙之士]를 선발하시면서 계란 두 개 때문에 간성(干城)과 같은 장수를 버리시니, 이것은 이웃나라에 들리게 해서는 안 될 말입니다.”
공이 두 번 절하고는 말했다.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衛侯言計非是, 而羣臣和者如出一口. 子思曰: “以吾觀衛, 所謂君不君臣不臣者也. 夫不察事之是非而悅人讚己, 闇莫甚焉. 不度理之所在而阿諛, 求容諂莫甚焉. 君闇臣諂, 以居百姓之上, 民不與也. 若此不已, 國無類矣.” 子思言於衛侯曰: “君之國事將日非矣. 君出言自以爲是, 而卿大夫莫敢矯其非. 卿大夫出言自以爲是, 而士庶人莫敢矯其非. 君臣旣自賢矣, 而羣下同聲賢之. 賢之則順而有福, 矯之則逆而有禍, 如此則善安從生? 詩曰: ‘具曰予聖, 誰知烏之雌雄?’ 抑亦似君之君臣乎!”
위후가 옳지 않은 계책을 말해도 신하들이 화답하는 것이 한 입에서 나온 것 같았다. 자사가 말했다. “내가 위나라를 살펴보니, ‘임금은 임금답지 않고 신하는 신하답지 않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일의 옳고 그름을 살펴보지도 않고 남들이 자신을 칭찬하는 것만 좋아하니 어리석음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이치가 있는 곳을 따져보지도 않고 아첨하니 아첨이 받아들여지기를 구하는 것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임금은 어리석고 신하는 아첨하면서 백성의 윗자리에 머무니 백성이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이 그치지 않는다면 나라에는 남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자사가 위후에게 말했다. “군주의 나랏일은 날로 잘못될 것입니다. 군주는 말을 해놓고서 스스로 옳다고 여기고 경(卿)ㆍ대부(大夫)는 그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사람이 없습니다. 경ㆍ대부가 말을 해놓고서 스스로 옳다고 여기고 사(士)ㆍ서인(庶人)은 그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사람이 없습니다. 군주와 신하가 스스로 뛰어나다고 여기고 아랫사람들은 똑같은 소리로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뛰어나다고 하면 순응하여 복을 받고 바로잡으면 거슬러서 화를 받으니, 이와 같다면 선(善)이 어디에서 생겨나겠습니까? 시경에 이르기를 ‘모두 자신이 성인이라 하니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까?’라고 하였으니, 군주의 군신(君臣)과 같습니다.”




乙巳二十六年, 王崩, 子烈王喜立. ○韓魏趙共廢晉靖公爲家人而分其地.
을사년 재위 26년, 왕이 붕어하고 아들 열왕(烈王) 희(喜)가 즉위했다. 한(韓)ㆍ위(魏)ㆍ조(趙)가 함께 진(晉) 정공(靖公)을 폐위해 서인[家人]으로 삼고 그 땅을 나눴다.






  1. 子皆出吾下, 而位加吾上: 직역을 하면 ‘그대는 모두 내 아래에 나왔는데, 지위는 내 위에 더한다’는 의미다. 오기는 앞에서 말한 세 가지 공적 모두 자신만 못한데 왜 지위는 자기보다 높은지를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2. 임금과 인척(姻戚)인 귀족 [본문으로]
  3. 승(乘)은 전투용 수레 1대를 뜻한다. 1승 당 총 100명의 병사와 4필의 말이 따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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