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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자집/고문진보

한유 - 원도(原道)

by 衍坡 2019. 3. 9.

원도(原道)

: 도의 근원을 캐물음



한유(韓愈)



원도



博愛之謂仁, 行而宜之之謂義, 由是而之焉之謂道, 足乎己無待於外之謂德. 仁與義, 爲定名, 道與德, 爲虛位, 故道有君子有小人, 而德有凶有吉.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인(仁)이라 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실천하는 것을 의(義)라고 한다. 이것을 따라서 가는 것을 도(道)라 하고 자신에게 만족하여 바깥에 기대함이 없는 것을 덕(德)이라고 한다. 인과 의는 정해진 이름이고 도와 덕은 빈자리이다. 그래서 도에는 군자의 도와 소인의 도가 있고, 덕에는 흉한 덕과 길한 덕이 있다.



老子之小仁義, 非毁之也, 其見者小也. 坐井而觀天曰天小者, 非天小也. 彼以煦煦爲仁, 孑孑爲義, 其小之也則宜. 其所謂道, 道其所道, 非吾所謂道也. 其所謂德, 德其所德, 非吾所謂德也. 凡吾謂道德云者, 合仁與義言之也, 天下之公言也. 老子之所謂道德云者, 去仁與義言之也, 一人之私言也.


노자가 인과 의를 사소하게 여긴 것이 그것을 훼손한 것은 아니다. 그의 견해가 좁았던 것이다. 우물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 ‘하늘이 작다’고 말하는 것은 하늘이 작기 때문이 아니다. 저들은 작은 온정을 베푸는 것을 인이라 여기고 홀로 고고한 것을 의라고 여기니 그들이 인과 의를 사소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이 말하는 도는 그들이 도라고 여기는 것을 도라고 한 것이지 내가 말하는 도는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덕은 그들이 덕이라고 여기는 것을 덕이라고 한 것이지 내가 말하는 덕은 아니다. 무릇 내가 도와 덕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과 의에 부합해서 말하는 것이니 천하의 공평한 말이다. 노자가 도덕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과 의를 버려두고 말하는 것이니 한 사람의 사사로운 말이다.



周道衰, 孔子沒, 火于秦, 黃老于漢, 佛于晋宋齊梁魏隨之間, 其言道德仁義者, 不入于楊, 則入于墨, 不入于老, 則入于佛, 入于彼, 則出于此. 入者主之, 出者奴之, 入者附之, 出者汚之. 噫! 後之人, 其欲聞仁義道德之說, 孰從而聽之?


주나라의 도가 쇠퇴하고 공자가 사망하자 진(秦)에서는 유가의 전적(典籍)이 불탔고, 한(漢)에서는 황로학파가 성행했으며, 진(晋)ㆍ송(宋)ㆍ제(齊)ㆍ양(梁)ㆍ위(魏)ㆍ수(隨) 연간에는 불교가 횡행했다. 도와 덕, 인과 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양주의 학파에 들어가지 않으면 묵자의 학파에 들어가고 노자의 학파에 들어가지 않으면 불가에 들어가 저쪽에 들어가면 이쪽에서 나왔다. 들어간 사람들은 그 학설을 주인으로 삼고 나온 사람들은 그것을 노예로 삼았다. 들어간 사람들은 그 학설에 달라붙고 나온 사람들은 그것을 더럽게 여겼다. 아! 후대의 사람들이 인ㆍ의ㆍ도ㆍ덕에 관한 학설을 들으려고 해도 누구를 따라서 듣겠는가? 



老者曰: “孔子吾師之弟子也,” 佛者曰: “孔子吾師之弟子也.” 爲孔子者, 習聞其說, 樂其誕而自小也, 亦曰: “吾師亦嘗云爾,” 不惟擧之於其口, 而又筆之於其書. 噫! 後之人, 雖欲聞仁義道德之說, 其孰從而求之? 甚矣! 人之好怪也. 不求其端, 不訊其末, 惟怪之欲聞. 


노자를 따르는 사람들은 “공자는 우리 스승의 제자다”라고 말하고, 부처를 따르는 사람들은 “공자는 우리 스승의 제자다”라고 말한다. 공자를 배우는 자들은 그 말을 익히 듣고서 그 거짓말을 즐거워하며 자신을 사소하게 여긴다. “우리 스승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면서 그 말을 입에 올릴 뿐 아니라 그들의 책에도 적는다. 아! 후대의 사람들이 비록 인ㆍ의ㆍ도ㆍ덕에 관한 학설을 들으려 해도 누구를 따라서 구하겠는가? 심하도다! 사람들의 기괴한 것을 좋아함이여. 그 실마리를 구하지 않고 그 끝을 묻지도 않으면서 기괴한 것만 들으려고 하다니.



古之爲民者四, 今之爲民者六, 古之敎者處其一, 今之敎者處其三. 農之家一而食粟之家六, 工之家一而用器之家六, 賈之家一而資焉之家六, 奈之何民不窮且盜也?


옛날의 백성은 네 부류였고, 지금의 백성은 여섯 부류다. 옛날에는 가르치는 사람들이 그중 하나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가르치는 사람들이 그중 셋을 차지한다. 농사를 짓는 집은 하나인데 곡식을 먹는 집은 여섯이고, 물건을 만드는 집은 하나인데 기구를 쓰는 집은 여섯이며, 물건을 파는 집은 하나인데 물건을 이용해 살아가는 집은 여섯이다. 어떻게 백성들이 궁핍해져 도둑질하지 않겠는가?

 


古之時, 人之害多矣. 有聖人者立然後, 敎之以相生養之道, 爲之君, 爲之師, 驅其蟲蛇禽獸, 而處其中土. 寒然後爲之衣, 飢然後爲之食, 木處而顚, 土處而病也, 然後爲之宮室. 爲之工, 以贍其器用, 爲之賈, 以通其有無, 爲之醫藥, 以濟其夭死, 爲之葬埋祭祀, 以長其恩愛, 爲之禮, 以次其先後, 爲之樂, 以宣其湮鬱, 爲之政, 以率其怠倦, 爲之刑, 以鋤其强梗. 相欺也, 爲之府璽斗斛權衡, 以信之, 相奪也, 爲之城郭甲兵, 以守之. 害至而爲之備, 患生而爲之防.


옛날에는 사람을 해치는 것들이 많았다. 성인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서로 살리고 봉양하는 도리를 가르쳤으며 임금이 되고 스승이 되었다. 벌레와 뱀, 날짐승과 길짐승을 몰아내고 사람들을 중원에 살게 했다. 날이 추워지자 옷을 만들어주고 굶주리자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사람들이 나무에 살다가 떨어지고 땅에 살다가 병이 들자 집을 만들어주었다. 장인을 두어 도구와 연장을 넉넉하게 만들었고 상인을 두어 물건을 유통시켰다. 의원과 약을 마련해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해냈다. 장례와 제사를 만들어 은혜와 사랑이 오래 이어지게 하고, 예법을 만들어 선후(先後)에 순서를 지었다. 음악을 만들어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고, 정치를 만들어 게으름을 이끌어주었으며, 형벌을 만들어 강경함을 없앴다. 사람들이 서로 속일 때는 부절과 도장과 도량형을 만들어 믿일 수 있게 했다. 사람들이 서로 약탈하자 성곽과 갑옷과 무기를 만들어 지키게 했다. 해가 이르게 되면 대비하게 하고 환난이 생기면 방비하게 했다.



今其言曰: “聖人不死, 大盜不止, 剖斗折衡, 而民不爭.” 鳴呼! 其亦不思而已矣. 如古之無聖人, 人之類滅久矣. 何也? 無羽毛鱗介, 以居寒熟也, 無爪牙以爭食也. 是故君者, 出令者也, 臣者行君之令, 而致之民者也, 民者出粟米麻絲作器皿通貨財, 以事其上者也. 君不出令, 則失其所以爲君, 臣不行君之令而致之民, 則失其所以爲臣, 民不出粟米麻絲作器皿通貨財以事其上, 則誅. 


지금 도가의 말에 “성인이 죽지 않으면 대도(大盜)가 멈추지 않고, 말[斗]을 베고 저울대를 꺾어버리면 백성이 다투지 않는다”고 한다. 아! 그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만일 옛날에 성인이 없었다면 인류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날개와 털, 비늘과 껍질이 없어서 추운 곳이나 더운 곳에 살았을 것이고, 발톱과 어금니가 없어서 식량을 두고 다투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주는 명령을 내는 사람이고, 신하는 군주의 명을 실행해 백성에게 이르게 하는 사람이며, 백성은 곡식과 마사(麻絲)를 산출하고 그릇을 만들고 재화를 유통시켜 윗사람을 모시는 사람이다. 군주가 명령을 내지 않으면 그가 군주인 이유를 잃어버리는 것이고, 신하가 군주의 명령을 실행해 백성에게 이르게 하지 않으면 그가 신하인 이유를 잃는 것이다. 백성이 곡식과 마사를 산출하고 그릇을 만들며 재화를 유통시켜서 윗사람을 섬기지 않으면 처벌 받는다.



今其法曰: “必棄而君臣, 去而父子, 禁而相生相養之道, 以求其所謂淸淨寂滅者.” 鳴呼! 其亦幸而出於三代之後, 而不見黜於禹湯文武周公孔子也, 其亦不幸而不出於三代之前, 不見正於禹湯文武周公孔子也. 帝之與王, 其號名殊, 其所以爲聖一也. 夏葛而冬裘, 渴飮而飢食, 其事雖殊, 其所以爲智一也.


지금 그들의 법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의 임금과 신하의 도리를 버려야 하고 너희의 부모와 자식의 도리를 버려야 하며, 너희의 서로 살리고 봉양하는 도리를 금지시키고 이른바 ‘청정적멸’(淸淨寂滅)을 구해야 한다.” 아! 그들은 요행히 삼대(三代) 이후에 나타나서 우ㆍ탕ㆍ문왕ㆍ무왕ㆍ주공ㆍ공자에게 쫓겨나지 않았다. 그들은 또한 불행히도 삼대 이전에 나타나지 않아서 우ㆍ탕ㆍ문왕ㆍ무왕ㆍ주공ㆍ공자에게 바로잡히지 않았다. 제(帝)는 왕(王)과 부르는 이름이 다르지만 성스러운 것은 똑같다. 여름에 칡베옷을 입고 겨울에 가죽옷을 입으며 목마를 때 마시고 배고플 때 먹는 것은 그 일이 비록 다르지만 지혜로운 것은 똑같다.



今其言曰: “曷不爲太古之無事?” 是亦責冬之裘者曰: “曷不爲葛之之易也?” 責飢之食者曰: “曷不爲飮之之易也?” 傳曰: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脩其身, 欲脩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然則古之所謂正心而誠意者, 將以有爲也. 今也欲治其心而外天下國家者, 滅其天常, 子焉而不父其父, 臣焉而不君其君, 民焉而不事其事. 孔子之作春秋也, 諸侯用夷禮則夷之, 夷而進於中國則中國之. 經曰: “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 詩曰: “戎狄是膺, 荊舒是懲.” 今也擧夷狄之法, 而加之先王之敎之上, 幾何其不胥而爲夷也? 


지금 그들의 말에 “어째서 태고의 무사함을 실천하지 않는가?”라고 한다. 이것은 겨울에 가죽옷 입은 사람을 “어째서 칡베옷을 입는 쉬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가?”라고 책망하는 것이며, 배고파서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어째서 물을 마시는 쉬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가?”라고 책망하는 것이다. 옛 책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안정시켰고,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질서정연하게 했다. 집안을 질서정연하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몸을 수양했고, 몸을 수양하려는 사람은 그 마음을 바로잡았다.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그 생각을 성실하게 했다.” 그렇다면 옛날에 마음을 바로잡고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큰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그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하면서 천하(天下)ㆍ국(國)ㆍ가(家)를 도외시하는 것은 하늘이 정한 일상의 인륜을 없애는 것으로 자식이 그 부모를 부모로 모시지 않고 신하가 그 군주를 군주로 섬기지 않는 것이며 백성이 그들의 일에 종사하지 않는 것이다. 공자가 『춘추』를 지을 때, 제후들이 이민족의 예법을 쓰면 이민족이 되었고 이민족이 중국의 예법에 나아가면 중국이 되었다. 경전에는 “군주가 있는 이민족보다 군주가 없는 중국이 낫다”고 했고, 『시경』에는 “융(戎)과 적(狄)을 응징하고 형(荊)과 서(舒)를 징벌한다”고 했다. 지금 이민족의 법을 들어서 선왕의 가르침 위에 올려두었으니, 이민족의 예법을 따라 이민족이 되지 않은 것이 몇이나 되겠는가?



夫所謂先王之敎者, 何也? 博愛之謂仁, 行而宣之之謂義, 由是而之焉之謂道, 足乎己無待於外之謂德. 其文詩書易春秋, 其法禮樂刑政, 其民士農工賈, 其位君臣父子師友賓主昆弟夫婦, 其服麻絲, 其居宮室, 其食粟米蔬果魚肉, 其爲道易明而其爲敎易行也. 是故以之爲己, 則順而從, 以之爲人, 則愛而公, 以之爲心, 則和而平, 以之爲天下國家, 無所處而不當, 是故生則得其情, 死則盡其常, 郊焉而天神假, 廟焉而人鬼饗.


저 선왕의 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인이라고 하고, 그것을 적절히 행하는 것을 의라고 한다. 이것을 따라서 가는 것을 도라고 하고 자신에게 만족하고 바깥에 기대하지 않는 것을 덕이라고 한다. 그 글은 시(詩)ㆍ서(書)ㆍ역(易)ㆍ춘추(春秋)고, 그 법은 예악형정(禮樂刑政)이며, 그 백성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다. 그 지위는 군신(君臣)ㆍ부자(父子)ㆍ사우(師友)ㆍ빈주(賓主)ㆍ형제(兄弟)ㆍ부부(夫婦)다. 그 의복은 마사(麻絲)로 만든 옷이고, 그 거처는 집이며, 그 식량은 곡식ㆍ채소ㆍ과일ㆍ생선ㆍ고기다. 그들이 도로 삼은 것은 밝히기가 쉽고 그들이 가르침으로 삼은 것은 실천하기가 쉽다. 그래서 그것을 자신에게 실천하면 이치에 순종하고 따르게 되며, 다른 사람에게 실천하면 친애하게 되고 공평해진다. 그것을 마음에 실천하면 조화롭고 평안하며, 천하ㆍ국ㆍ가에 실천하면 머무르는 곳마다 마땅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살아서는 본성대로 살 수 있고 죽어서는 일정한 예법이 행해질 것이며, 교단(郊壇)에 제사를 지내면 천신(天神)이 이르고 종묘에 제사를 지내면 죽은 이의 넋이 흠향할 것이다.



曰: “斯道也, 何道也?” 曰: “斯吾所謂道也, 非向所謂老與佛之道也.” 堯以是傳之舜, 舜以是傳之禹, 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武周公, 文武周公傳之孔子, 孔子傳之孟軻, 軻之死不得其傳焉. 荀與揚也, 擇焉而不精, 語焉而不詳. 由周公而上, 上而爲君, 故其事行, 由周公而下, 下而爲臣, 故其說長. 然則如之何而可也? 曰: 不塞不流, 不止不行, 人其人, 火其書, 廬其居, 明先王之道以道之, 鰥寡孤獨廢疾者, 有養也. 其亦庶乎其可也.


이 도는 무슨 도인가? 이것은 내가 도라고 말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노자와 부처의 도가 아니다. 요는 순에게 이 도를 전했고, 순은 그것을 우에게 전했다. 우는 이 도를 탕에게 전했고, 탕은 그것을 문왕과 무왕과 주공에게 전했다. 문왕과 무왕과 주공은 그 도를 공자에게 전했고, 공자는 맹자에 전했다. 맹자가 죽자 그 도가 전수되지 못했다. 순자와 양주는 그 도를 선택했지만 정밀하지 못했고, 그 도를 말했지만 자세하지 못했다. 주공 위로는 윗사람으로서 군주가 되었으므로 그들의 공업(功業)이 실현되었고, 주공 아래로는 아랫사람으로 신하가 되었으므로 그들의 학설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도가와 불가를 막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퍼지지 못하고, 도가와 불가를 멈추지 않으면 유가의 도가 실현되지 못한다. 그 사람들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그들의 책을 불사르며 그들의 처소를 정상적인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선왕의 도를 밝혀서 그들을 인도하고, 아내 없는 사람[鰥]과 남편 없는 사람[寡], 부모 없는 아이[孤]와 자식 없는 사람[獨], 장애가 있는 사람[廢]과 병든 사람[疾]이 봉양을 받는다면 아마도 거의 괜찮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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