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사자집/사서집주

[맹자] 양上-4. 칼로 죽이나 정치로 죽이나(以刃與政)

by 衍坡 2018. 6. 9.

양혜왕장구上 (4) : 이인여정(以刃與政)

 

 

以刃與政

 

 

梁惠王曰: “寡人願安承敎.”

양혜왕이 말했다.

“과인은 편안히 가르침을 받기를 원합니다.”

 

承上章, 言願安意以受敎.

앞장에 이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다.

 

 

孟子對曰: “殺人以梃與刃, 有以異乎?” 曰: “無以異也.”

맹자가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데 몽둥이나 칼이나 차이가 있습니까?”

왕이 말했다.

“다를 것이 없습니다.”

 

梃, 杖也.

‘梃’(정)은 몽둥이다.

 

 

“以刃與政, 有以異乎?” 曰: “無以異也.”

“칼로 죽이나 정치로 죽이나 차이가 있습니까?”

왕이 말했다.

“다를 것이 없습니다.”

 

孟子又問, 而王答也.

맹자가 다시 묻고 왕이 답한 것이다.

 

 

曰: “庖有肥肉, 廐有肥馬, 民有飢色, 野有餓莩, 此率獸而食人也.

맹자가 말했다.

“푸줏간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으나 백성에게는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판에는 굶어죽은 시신이 있으니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먹게 하는 것입니다.

 

厚斂於民, 以養禽獸, 而使民飢以死, 則無異於驅獸以食人矣.

백성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 짐승을 기르고 백성은 굶어서 죽게 한다면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먹게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獸相食, 且人惡之, 爲民父母行政, 不免於率獸而食人, 惡在其爲民父母也?

짐승이 서로 잡아먹는 것도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백성의 부모가 되어 정치를 하면서도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데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다면 백성의 부모가 될 자격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君者, 民之父母也. 惡在, 猶言何在也.

임금은 백성의 부모다. ‘惡在’(오재)는 ‘어디에 있겠는가’[何在]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仲尼曰: ‘始作俑者, 其無後乎!’ 爲其象人而用之也. 如之何其使斯民飢而死也?

중니(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으로 용(俑)을 만든 자는 자손이 없을 것이다!’ 사람의 형상을 본떠서 그것을 (장례에)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백성을 굶어죽게 하십니까?”

 

俑, 從葬木偶人也. 古之葬者, 束草爲人以爲從衛, 謂之芻靈, 略似人形而已. 中古易之以俑, 則有面目機發, 而大似人矣. 故孔子惡其不仁, 而言其必無後也. 孟子言此作俑者, 但用象人以葬, 孔子猶惡之, 況實使民飢而死乎?

‘俑’(용)은 장례를 치를 때 송장과 함께 묻던 나무 허수아비다. 옛날에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은 풀을 묶어 사람을 만들고 상여를 따라 호위하게 했는데 그것을 ‘추영’(芻靈)이라고 불렀다. 사람의 형상과는 대략적으로만 비슷했을 뿐이다. 중고(中古)에는 그것을 용(俑)으로 바꿨는데, 얼굴과 눈이 움직여서 사람과 몹시 비슷했다. 그런 까닭에 공자가 그 불인(不仁)함을 미워하여 ‘아마도 반드시 자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용(俑)을 만든 사람은 단지 장사 지내는 데 사람 모형을 썼을 뿐인데도 공자는 오히려 그를 미워했다. 하물며 실제로 백성을 굶어죽게 함이랴!’

 

*機發(기발): 움직임

 

○李氏曰: “爲人君者, 固未嘗有率獸食人之心. 然殉一己之欲, 而不恤其民, 則其流必至於此, 故以爲民父母告之. 夫父母之於子, 爲之就利避害, 未嘗頃刻而忘於懷, 何至視之不如犬馬乎?”

○이씨(이욱)가 말했다. “임금이 된 자가 본래 일찍부터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몸의 욕망을 좇아 백성을 구휼하지 않는다면 그 흐름은 반드시 이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의 부모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이로운 곳으로 나아가게 하고 해로운 곳을 피하게 하는 것을 마음속에 잠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식을 개나 말보다 못하게 보는 데 이르렀는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