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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집] 공양왕에게 올리는 상소(정도전의 '척불상소') 공양왕에게 올리는 소 (정도전 書)[上恭讓王疏, 이른바 '척불상소'] * 관련 자료: 공양왕의 구언교서 政堂文學臣鄭道傳伏讀敎書。 上以謹天文之變。 下以求臣庶之言。 而以八事自責。 臣讀之再三。 不勝感歎。 殿下以天之譴告。 引而歸之於己。 開廣言路。 冀聞過失。 雖古哲王。 未之或過也。 臣待罪宰相。 無所匡輔。 以貽君父之憂。 至煩敎諭之丁寧。 臣實赧焉。 嘗謂君爲元首。 臣爲股肱。 比之人身。 實一體也。 故君倡則臣和。 臣言則君聽。 或曰可。 或曰不可。 期於致治而已。 然則天之譴告。 由臣所致也。 古者有災異。 三公策免。 爲大臣者亦避位而讓之。 請免臣職。 以弭災異。 然念古之大臣。 當請退之時。 必有陳戒之辭況今獲奉敎書。 安敢不效一得之愚。 仰備採擇之萬一。 정당문학 신 정도전은 교서를 받들어 읽어보았습니다. 위로는 천문(天文)의 변화를 보고 스.. 2020. 4. 11.
공양왕의 구언교서 공양왕(恭讓王)의 구언교서(求言敎書) ▲공양왕의 능침 출전: 『고려사』 공양왕 3년(1391) 4월 癸未。 下敎求言曰。 弭灾之道。 莫如修德。 爲政之要。 惟在求言。 昔宋景一言之善。 致熒惑三舍之退, 天人之際。 感應斯速。 予以眇躬。 荷祖宗之靈。 託臣民之上。 憂勤夙夜。 期底豊平。 而智能不逮。 學問不明。 其於政敎。 動昧施爲。 若涉大川。 罔知攸濟。 계미일. 왕이 구언(求言)하는 교서를 내렸다. “재이(災異)를 멈추는 방법은 덕(德)을 기르는 것보다 좋은 방도가 없고, 정치를 펴는 핵심은 오로지 바른말을 구하는 데 있다. 옛날에 송 경공(景公)은 한 마디 좋은 말로 형혹성이 3사를 물러나게 했으니, 하늘과 사람 사이에 감응하는 것이 이처럼 빠르다. 보잘것없는 내가 조종(祖宗)의 영령에게 은혜를 입고 신민(臣民)의 윗.. 2020. 4. 9.
선종구산문과 선문예참문의 문제점 허흥식, 1983, 「선종구산문과 선문예참문의 문제점」, 『역사교육논집』 5 2020.03.18. 그동안 한국사 연구에서는 나말여초에 선종이 성행하여 구산문(九山門)이 성립했다고 설명해왔다. 허흥식의 이 논문은 『선문조사예참문』(禪門祖師禮懺文)을 분석해서 신라 말에 선종구산문(禪宗九山門)이 성립했다는 종래의 설명 틀을 재검토하려는 글이다. 저자는 선종 조사에 대한 배례 의식을 수록한 『선문조사예참문』이 다른 저술에 비해서 “고려시대의 선종을 개괄해서 법맥(法脈)을 유추”하기에 훨씬 더 유용한 저작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 책에는 중국의 선종 조사 서른세 명뿐만 아니라 한국 측의 조사 열 사람에 대한 예참문도 실려있다. 이 열 명 중 아홉 사람은 나말여초에 활동했던 조사고, 나머지 한 사람.. 2020. 3. 20.
신라하대 선종구산파의 성립 최병헌, 1972, 「신라하대 선종구산파의 성립 –최치원의 四山碑銘을 중심으로」, 한국사연구 7 2020.03.18. 서언 최치원이 작성한 ‘四山碑銘’은 신라 하대의 불교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핵심적인 자료라 한다. 저자는 이 글에서 최치원의 사산비명을 검토하여 신라 하대 선종구산파의 성립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지 밝히려 한다. 사산비명을 중심으로 신라 하대의 선종사를 검토하기 때문에 저자는 검토 범위의 하한을 진성여왕 대로 설정했다. 1. 선종 성립 이전의 신라 불교 최치원은 불교가 백제ㆍ고구려ㆍ신라 순으로 수용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신라의 불교 수용이 율령 반포 이후 8년 만에 이루어졌음을 특기했다. 당시 신라인들은 율령 반포를 전후한 법흥왕 대의 정치적 변혁을 대단히 중시했을 뿐 아니라 .. 2020. 3. 20.
보편문화와 고려 현실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고려 관제 보편문화와 고려 현실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고려 관제 - 김대식, 2007, 『고려전기 중앙관제의 성립』, 경인문화사 - 2020.02.23 고려는 자국의 정치제도를 정비하면서 당의 관제(官制)를 받아들였다. 그 핵심은 바로 ‘3성 6부제’다. 고려는 이 제도를 자국의 실정에 맞게 조정해서 2성 6부 형태의 중앙관제를 마련했다. 중국의 제도를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독자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이런 설명은 지금껏 고려의 정치제도에 관한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전통적인 관제와는 매우 이질적인 당의 관제가 어떻게 별다른 저항 없이 고려에 도입될 수 있었을까? 정작 율령제에 기초한 3성 6부제가 당의 정치제도로 기능한 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다면 고려가 받아들인 3성 6부의 실체는.. 2020. 3. 19.
고려 전기의 역사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기 고려 전기의 역사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기 - 한정수, 2007, 『한국 중세 유교정치사상과 농업』, 혜안 - 2020.02.14. 이른바 ‘나말여초’(羅末麗初)라 불리는 시기의 농업은 어떤 양상으로 이루어졌을까? 당시의 농업생산량은 증가하는 중이었을까? 과연 새롭게 등장한 지배층은 어떤 존재인가? 큰 폭의 사회변동 속에서 사회의 성격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그런 변화 속에서 건국된 고려의 역사적 위상은 무엇일까? 대개 이런 질문들은 한국사의 ‘발전’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역사 발전에 관한 생각과 별개로, 이 문제들이 9~10세기의 역사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한국사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한정수의 저서 『한국.. 2020. 3. 4.
고려를 ‘고려답게’ 이해하려는 노력의 성과물 고려를 ‘고려답게’ 이해하려는 노력의 성과물 - 노명호, 2019,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사료적 특성』, 지식산업사 - 2020.02.13. 지금까지 축적된 고려시대사 연구 성과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고려의 정치제도와 국정운영, 사회경제적 구조, 사상적 지형 등 고려시대사 전반에 걸쳐 많은 것들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과연 그런 설명들이 얼마나 고려를 고려답게 설명한 것일까? 이 물음은 노명호의 저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사료적 특성』(지식산업사, 2019)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질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간의 고려시대사 서술이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문제점은 고려시대사 연구의 기본 자료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기인한다고 판단한다. 저자는 고려의 황제제도와 .. 2020. 2. 27.
‘귀족사회론’ 바깥에서 본 고려의 국정운영 ‘귀족사회론’ 바깥에서 본 고려의 국정운영 - 박재우, 2005, 『고려 국정운영의 체계와 왕권』, 신구문화사 - 2020.02.25. 고려시대에 국왕과 신료가 함께 국정을 운영했다는 생각이 그렇게 특별한가? 박재우의 저서 『고려 국정운영의 체계와 왕권』을 처음 펼쳤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이었다. “고려의 국정은 국왕과 신료가 이끌어갔다”는 서론의 첫 문장은 너무나도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고려 국왕의 정치적 위상이나 고려 국정운영 방식이 적지 않게 연구된 오늘날의 연구 지형을 전제하고 떠올린 아주 피상적인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곧 이 책이 어떤 강점이 있는지를 깨달았다. 이 책이 출간되던 당시의 연구 경향을 생각하면, 군주를 고려시대 국정운영의 한 주체로 자리매김하려는 저자의 연구는 .. 2020. 2. 27.
조선 초기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보는 시선들 조선 초기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보는 시선들 2020.02.06. 1. 조선의 ‘독자성’을 읽어내려는 노력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뜻밖의 기록이 적혀있다. “옛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노인의 형상과 비슷하다고 했다. 해좌사향(亥坐巳向)으로 서쪽을 향해 국면이 트여서 중국에 읍(揖)하는 형상이라서 예로부터 중국에 충순(忠順)해 왔다.” 중국 주변의 여러 ‘오랑캐’들은 모두 중국을 침략하여 제왕 노릇을 했지만, 조선만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강역을 지키며 정성껏 사대했다[恪勤事大].[각주:1] 하지만 어느 연구는 이 서술이 최남선의 광문회본 『택리지』에서 완전히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최남선은 ‘충순’(忠順)과 ‘각근사대’(恪勤事大)라는 표현을 각각 ‘친닐’(親昵)과 ‘불감의타’(不敢意他).. 2020. 2. 13.
[맹자] 양下-3. 이웃나라와 사귀는 방법(寡人好勇) 양혜왕장구下 (3) : 과인은 용맹함을 좋아합니다(寡人好勇) 齊宣王問曰: “交鄰國, 有道乎?” 孟子對曰: “有. 惟仁者, 爲能以大事小, 是故湯事葛, 文王事昆夷. 惟智者, 爲能以小事大, 故大王事獯鬻, 句踐事吳. 제 선왕이 물었다. “이웃나라와 교류하는 데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어진 사람만이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탕(湯)이 갈나라[葛]를 존중하고 문왕(文王)이 곤이(昆夷)를 존중했던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만이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태왕(太王: 고공단보)이 훈육(獯鬻)을 섬기고 구천이 오(吳)를 섬긴 것입니다. 仁人之心, 寬洪惻怛, 而無較計大小强弱之私, 故小國雖或不恭, 而吾所以字之之心自不能已. 智者明義理, 識時勢, 故大國雖.. 2020.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