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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정님>, 국가주의와 남성주의가 뒤섞인 프로파간다 : 국가주의와 남성주의가 뒤섞인 프로파간다 2017.09.05 식민지기 전시동원체제(1937~1945)는 당시 한국인들에게 매우 낮선 경험이었다. 물론 일제의 식민통치 자체가 한국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지만, 전시체제기의 폭력과 강압은 1910년대나 1920년대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예컨대, 한국인에게 ‘황국신민’이 될 것을 강요하거나 이들을 전쟁에 동원하던 일제의 정책은 전시체제기 식민통치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식민통치의 주체인 일제도 한국인들에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정책만 구사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강력한 통치 권력도 다양한 조건과 제약 속에서 구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제로서는 전시체제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포장하기 위한 좀 더 ‘세련된’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 2018. 4. 13.
독도 영유권 문제 다시 보기 독도 영유권 문제 다시 보기 - 영유권 발생 시기에 관한 비판적 검토 - 프롤로그 1952년 1월 28일, 일본 정부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한 영토인데도 한국 정부가 불법점거 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의 입장은 한국과 일본 양국 사이에 독도 영유권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 논쟁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양국의 독도 영유권 논쟁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역사적인 문제이다. 일본 정부는 역사적으로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입증하기 위해 두 가지 주장을 해왔다. 하나는 독도를 울릉도로 도항하는 정박장 및 어업구역으로 활용하면서 늦어도 17세기에 자신들의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00년대까지 주인이 없던 섬을 1904년 러일전쟁 과정에서 일본의 영토로 편입했다는 것이다... 2018. 4. 13.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공리주의적’일까?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공리주의적’일까? - 함익병의 인터뷰와 그에 관한 반박을 중심으로- 1. 함익병의 논쟁적인 인터뷰 몇 년 전,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던 의사 함익병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독재가 왜 잘못된 건가요? 플라톤도 독재를 주장했습니다. 이름이 좋아 철인정치지, 제대로 배운 철학자가 혼자 지배하는 것, 바로 1인 독재입니다. 오죽하면 플라톤이 중우(衆愚)정치를 비판했겠습니까. …… 독재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하나의 도그마(dogma)입니다. 정치의 목적은 최대 다수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죠. …… 더 잘살 수 있으면 왕정도 상관없다고 봅니다. ‘민주’란 말만 붙으면 최고라고 하는데,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 자본주의가 지고지선(至高至善)이 아니듯, .. 2018. 4. 13.
도연명 -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도잠(도연명) 先生不知何許人, 亦不詳其姓字. 宅邊有五柳樹, 因以爲號焉. 선생은 어디 사람인지 알 수 없고 성과 자(字)도 자세하지 않다. 집 주변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있어서 이것으로 호(號)를 삼았다. 閑靖少言, 不慕榮利. 好讀書, 不求甚解, 每有意會, 便欣然忘食.한가롭고 조용하여 말수는 적었고, 영리를 탐하지 않았다. 책읽기를 좋아했으나 깊이 있는 이해를 추구하지는 않았고, 매번 뜻이 맞는 부분이 있으면 곧 흔연히 기뻐하여 밥을 먹는 것도 잊어버렸다. ㆍ意會(의회): 뜻이 맞음 性嗜酒, 家貧不能常得. 親舊知其如此, 或置酒而招之, 造飮輒盡, 期在必醉, 旣醉而退, 曾不吝情去留.천성은 술을 좋아했지만 집이 가난하여 술을 항상 구할 수는 없었다. 친구가 이와 같음을 알고 혹 술자리를.. 2018. 4. 13.
대학에 역사학과가 대체 왜 필요한가? 대학에 역사학과가 대체 왜 필요한가? 2018.03.11. 한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했다. 본래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막상 대학을 떠나고 보니 대학원의 문턱을 넘는 일이 진정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그 의구심은 곧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졌다. 막상 내 자신이 갖춘 조건들을 따져가는 과정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공과 상관없는 회사에 입사하거나,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거나, 숱한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그러나 지금 당장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돌이켜보면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름대로 성실하게 공부했다. 내가 속했던 학과의 공식적인 교육 목표는 “한국사에 .. 2018. 4. 13.
그는 왜 히틀러의 측근이 되었나 그는 왜 히틀러의 측근이 되었나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 제3제국의 중심에서』를 읽고 2017.12.26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히틀러는 ‘악’(惡)의 화신이 되었다. 전쟁과 학살의 참상,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비극을 생각하면 그의 죄악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하지만 히틀러에 관한 역사적 평가와는 별개로 그에게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엄밀히 말해서 그는 나치의 당수가 되기 이전까지 사회의 주류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의 능력과 비전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많은 독일인이 히틀러에 열광했고, 끝내 그를 지도자로 선출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히틀러의 대중선동과 독일 국민의 ‘집단 광기’가 빚어낸 참극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할 여.. 2018.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