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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고려시대 기록 읽기

공양왕의 구언교서

by 衍坡 2020. 4. 9.

공양왕(恭讓王)의 구언교서(求言敎書)




▲공양왕의 능침



출전: 『고려사』 공양왕 3년(1391) 4월



癸未。 下敎求言曰。 弭灾之道。 莫如修德。 爲政之要。 惟在求言。 昔宋景一言之善。 致熒惑三舍之退, 天人之際。 感應斯速。 予以眇躬。 荷祖宗之靈。 託臣民之上。 憂勤夙夜。 期底豊平。 而智能不逮。 學問不明。 其於政敎。 動昧施爲。 若涉大川。 罔知攸濟。


계미일. 왕이 구언(求言)하는 교서를 내렸다. 

“재이(災異)를 멈추는 방법은 덕(德)을 기르는 것보다 좋은 방도가 없고, 정치를 펴는 핵심은 오로지 바른말을 구하는 데 있다. 옛날에 송 경공(景公)은 한 마디 좋은 말로 형혹성이 3사를 물러나게 했으니,[각주:1] 하늘과 사람 사이에 감응하는 것이 이처럼 빠르다. 보잘것없는 내가 조종(祖宗)의 영령에게 은혜를 입고 신민(臣民)의 윗자리에 올라 밤낮으로 근심하고 애써서 풍족하고 태평한 세상을 구가하려 했다. 그러나 지혜와 능력이 부족하고 학문은 밝지 않아 정치와 교화를 펼칠 방법을 모르니, 마치 큰 냇물을 건너면서도 건널 방법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 상태다. 



今者。 日官上言 乾文示儆 客星孛于紫微 火曜入于輿鬼 變異甚鉅 兢惕益深。 將凉德未修。 而不孚於帝心歟。 政令有闕。 而不協輿望歟。 刑賞之道。 有乖於正歟。 任用之人。 或徇於私歟。 下情未盡達。 而寃抑有所未伸歟。 民弊未盡除。 而財用有所妄費歟。 茂異之才。 未擧者誰歟。 讒侫之徒。 未斥者誰歟。 如斯之弊。 豈予一人所能徧察。 肆開讜直之路。 以消壅蔽之風。 蒭蕘之言。 亦有可採。 矧卿大夫百執事之臣。 共天位。 食天祿者哉。


지금 일관(日官)이 천문이 경고를 보냈다면서 객성이 자미성을 침범하고 화요성이 여귀성으로 들어갔다고 보고했다. 천변재이가 극심해서 두렵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더욱 크다. 내 부족한 덕이 가다듬어지지 않아 상제(上帝)의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일까? 정령(政令)에 빠진 것이 있어서 여망에 부응하지 못한 탓일까? 상과 벌을 내리는 방도에 올바른 방법에서 어긋난 점이 있기 때문일까? 등용한 사람 중에 혹시라도 사사로운 마음으로 발탁한 경우가 있어서일까? 아랫사람들의 사정이 모두 진달되지 않아서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이 풀어지지 않은 경우가 있어서일까? 민폐(民弊)가 모두 사라지지 않아서 재용(財用)에 마음대로 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일까? 뛰어난 인재 중에 아직 누군가 발탁되지 않은 자가 있어서인가? 참소와 아첨을 일삼는 이들 중에 아직 누군가 쫓겨나지 않아서인가? 이 같은 폐단이 나 혼자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것들이겠는가? 그러므로 직언할 길을 열어서 임금의 이목을 가리는 풍습을 일소하려 한다. 꼴을 베거나 땔나무 하는 자들의 말에도 채택할 만한 것이 있는데, 경ㆍ대부나 온갖 나랏일을 맡아보는 신하가 되어 천직(天職)을 함께 하고 천록(天祿)을 받아먹는 자들은 어떻겠는가? 



玆欲共新於治化。 庶以仰答於天心。 於戲。 賞罰明而禮樂興。 陰陽和而風雨時。 吏稱其職。 民樂其生。 其要安在。 知而不言。 不可謂之仁。 言而不盡。 不可謂之直。 惟爾大小臣僚。 並上實封。 寡躬過誤。 時政得失。 民間利病。 毋有所諱。 其言可用。 予卽有賞。 言而不中。 亦不加罪。 


이에 함께 정치와 교화를 함께 새롭게 하여 우러러 천심(天心)에 답하려 한다. 아! 상벌이 분명해지고 예악이 일어나며 음양이 조화롭고 비바람이 제때 불고 관리들이 자신의 직분에 걸맞게 일을 하며 백성이 자신의 삶을 즐거워하게 만드는 핵심은 어디에 달려있는가?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면 어질다고 할 수 없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다 말하지 않는다면 올곧다고 할 수 없다. 그대들 대소신료들은 실봉(實封)을 올려서 과인의 잘못과 시정의 잘잘못, 민간의 이해를 거리낌 없이 다 아뢰도록 하라. 그 말이 쓸만하면 내가 상을 줄 것이요, 말이 적합하지 않더라도 벌을 주지 않을 것이다.”






  1. 송 경공 때 형혹성(熒惑星)이 심숙(心宿)에 나타나자 자위(子韋)를 그에 관해 물었다. 자위가 답했다. "화(禍)가 임금에 미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재상에게 옮겨가게 할 수 있습니다." 경공이 답했다. "재상은 과인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므로 그럴 수 없다." 자위가 말했다. "인민에게 재앙이 옮겨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인민이 죽으면 과인이 누구에게 군주가 된단 말인가?" 자위가 말했다. "연사(年事)로 재앙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흉년이 들면 사람들이 굶주릴 텐데, 그렇게 되면 누가 나를 군주라고 여기겠는가?" 자위가 말했다. "임금께서 매우 덕스러운 말을 세 번 하셨으니, 하늘도 틀림없이 임금께 세 번 상을 내려서 형혹성이 분명히 3사(90리)를 물러날 것입니다. 1사는 7성을 가는 것이고 1성은 1년에 해당하니, 임금의 수명이 21년이 늘어날 것입니다." 형혹성이 과연 3사를 물러났다. (『여씨춘추』) [宋景公時,熒惑在心,召子韋問焉。子韋曰:『禍當君。雖然,可移宰相。』公曰:『宰相,寡人所與理國家也。』曰:『可移於人。』公曰:『人死,寡人將誰為君?』曰:『可移於歲。』公曰:『歲飢人餓,誰以我為君乎?』子韋曰:『君有至德之言三,天必三賞君,熒惑必退三舍。一舍行七星,星當一年,君延二十一年矣。』熒惑果退三舍也。]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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