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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리뷰과 단상

『개발 없는 개발』을 읽고

by 衍坡 2020. 9. 11.


『개발 없는 개발』을 읽고
(허수열, 2011, 『개발 없는 개발』(개정판), 은행나무)


2020.08.31





1. 저자는 이 책에서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응해서 20세기 전반기 식민지 조선의 경제 동향과 추이를 실증적으로 검토한다. 그의 기본적인 입장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반대편에 있다. 물론 식민지에서도 자본주의적 관계가 부분적으로나마 성장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저자는 식민지 조선의 경제를 ‘수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데 비판적이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그의 견해는 ‘식민지 수탈론’의 입장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식민지 수탈론’을 경제학적 방법론으로 보완한, 즉 ‘식민지 수탈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연구라 할 수 있다.


2.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통계 자료에 대한 의심이다. 일반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자’로 불리는 일군의 경제사학자에게 쏟아지는 비판 중 하나는 본인들이 확보한 통계와 자료가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검토한 통계 자료 자체가 얼마나 엄밀하고 정확한지를 면밀하게 검토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신뢰할 만하다. 예컨대,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성된 1918년 이전의 『통계연보』가 식민지 조선의 경지 면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생각한다.


3. 식민지 조선의 경제 동향을 분석하면서 ‘민족’이라는 기준을 고려한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다. “식민지 사회는 이민족에 의한 지배가 핵심이고, 따라서 그러한 사회에 대한 분석에서는 민족문제를 핵심적 요소로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저자의 견해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내지인’과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식민지기의 경제 문제를 검토하면서 ‘민족’이라는 키워드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4. 이 책이 과연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충분히 반박했는지는 회의적이다. 저자는 식민지 조선의 경제 추이를 “개발 없는 개발”이라고 규정했다. 일제가 추진한 식민지 개발의 성과가 식민지민에게 돌아가지 못했고, 그 유산이 해방 이후까지 이어지지도 못했다는 생각을 담은 표현이다. 저자가 이 책 전반에 걸쳐 논증하려 했던 것도 바로 그런 생각이었다. 문제는 저자가 언급하는 ‘성과’와 ‘유산’이 어디까지나 계량화ㆍ통계화ㆍ수치화가 가능한 것에만 한정된 개념이라는 데 있다. 저자 본인도 “이 책은 실증이 가능한 것만 분석대상으로 삼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저자가 비판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 개발의 유산을 단지 계량화ㆍ통계화ㆍ수치화 가능한 것으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식민지기에 축적된 개발의 ‘경험’이나 식민지 개발 과정에 참여하며 성장한 ‘테크노크라트’의 존재는 해방 이후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자양분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식민지기에 조선인이 임금과 승진에서 얼마나 차별받았는지, 식민지기의 물적 유산이 한국전쟁 이후에 얼마나 남아있었는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5. 이 책을 읽으면서 본문에 제시된 통계와 수치를 보고 있으면 혼란스럽기만 하다. 여전히 식민지 조선의 경제적 추이가 어떠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구성한 식민지 조선의 경제상과는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양극에 놓인 두 논의 중 무엇이 더 당대의 역사적 맥락을 충실히 보여주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민족 문제’를 중요한 변수로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식민지민이 겪은 불평등한 현실과 고통을 드러내는 데 통계와 수치를 통한 실증이 얼마나 효과적인 전략인지 여전히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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