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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리뷰과 단상

보편문화와 고려 현실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고려 관제

by 衍坡 2020. 3. 19.

보편문화와 고려 현실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고려 관제
- 김대식, 2007, 『고려전기 중앙관제의 성립』, 경인문화사 -


2020.02.23







고려는 자국의 정치제도를 정비하면서 당의 관제(官制)를 받아들였다. 그 핵심은 바로 ‘3성 6부제’다. 고려는 이 제도를 자국의 실정에 맞게 조정해서 2성 6부 형태의 중앙관제를 마련했다. 중국의 제도를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독자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이런 설명은 지금껏 고려의 정치제도에 관한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전통적인 관제와는 매우 이질적인 당의 관제가 어떻게 별다른 저항 없이 고려에 도입될 수 있었을까? 정작 율령제에 기초한 3성 6부제가 당의 정치제도로 기능한 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다면 고려가 받아들인 3성 6부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렇게 받아들인 고려의 3성 6부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을까? 김대식의 저서 『고려전기 중앙관제의 성립』(경인문화사, 2010)은 바로 이런 질문을 단초로 삼아 고려전기 중앙관제의 성립 과정과 그 특징을 규명하려 한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제1장이 당의 정치제도를 분석하고 그것이 향후에 각 동아시아 국가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살핀 것이라면, 제2장은 고려의 정치제도가 전통적인 틀에서 3성 6부제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시기별로 검토한 것이다. 과연 당대(唐代) 정치제도의 특징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당대 이후의 나라들은 당의 제도를 어떻게 수용했을까? 저자에 따르면, 당나라 3성 6부제의 특징은 “중앙정치기구의 핵심인 3성이 황제가 조칙을 반포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는 행정체계의 중핵을 이룬다는 점”이다. 이것은 군주와 신하의 권력 균형을 보장하는 구조였지만, 안사의 난 이후로는 그렇지 않았다. 당 중기 이후로 정사당(政事堂)이 운영되고 재상직이 늘어나면서 재상권이 약해지고 황제권이 강해지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당이 멸망한 뒤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당이 누렸던 ‘중화’(中華)의 권위를 전유하려 했고, 그런 목적에서 당의 제도를 저마다의 상황에 걸맞게 변형하여 수용했다. 5대와 송은 당 말기의 관제를 계승했고, 10국은 기본적으로 당 초기의 관제를 계승했으며, 거란ㆍ여진ㆍ고려도 각자의 상황과 조건에 걸맞게 당제를 변형해서 수용했다.


그렇다면 고려는 어떤 조건 속에서 당의 3성 6부제를 수용했을까? 고려가 당제를 수용해서 구성한 중앙관제의 특징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고려 국초의 관제는 “골품제를 전제로 형성된 신라관제의 변형”이었다. 고려로서는 후삼국을 통일하고 국가 제도를 정비해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관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광종-경종 연간의 정치 변동 속에서 국왕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국왕과 신료의 권력이 균형을 이루는 정치제도를 구축할 필요성이 부상했다. 그런 맥락에서 채택된 것이 당의 3성 6부제다.[각주:1] 다만 3성 6부제가 아무런 사전 작업 없이 갑작스레 도입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광종 대에 3성 6부제 도입을 염두에 두면서 10성 4부제를 시행했고, 이것은 성종 대에 3성 6부제를 좀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고려에 수용된 3성 6부제는 초기에 “원형에 가까운 3성 6부제”였지만, 최종적으로는 고려의 실정에 걸맞게 변형되었다. 고려는 “당의 역대 관제는 물론이고 송ㆍ오대ㆍ거란의 관제까지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본국에 적합한 중앙관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완비된 고려의 3성(三省)은 중국과 달리 “서로 융합된 단일한 기구”로 정착되어 작동했다.



저자의 논의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당대의 정치제도가 송대에 어떤 형태로 계승되는가의 문제다. 이 책의 논의에 따르면, 군주와 신하의 상호 견제와 권력 균형을 추구하던 당의 관제는 안사의 난 이후에 황제권 강화의 추세로 흘러갔다. 송은 당 말기의 관제를 계승해서 황제권을 우위에 두는 관제를 정비해나갔다. 이 설명은 황제의 권한에 제약을 두려 했던 송대 사대부의 정치사상이 어떤 맥락에서 출현했는지를 짐작케 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위잉스에 따르면, 주희를 비롯한 송대 사대부는 군주의 역할을 “좋은 재상 한 명을 등용하는 것”으로 축소하고 재상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철저히 당ㆍ송대의 역사적 맥락에서 출현했던 것이다.


고려의 중앙관제가 초기 관제에서 당제의 형태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설명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간의 통설은 신라와 태봉의 관제를 계승했던 고려 초기의 관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중국적인’ 관제로 변화할 수 있었는지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서 저자는 국초의 고려 관제가 광종 대의 10성 4부와 성종 원년의 3성 6부를 거쳐서 고려에 걸맞는 중앙관제로 정리되었음을 구체적으로 논증한다. 이것은 고려의 중앙관제 정비 과정이 단순히 ‘중국 제도의 수용’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고려의 중앙관제가 보편문화로서 당제와 고려의 현실 사이에 얼마나 길고 복잡다단한 조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인지를 알려준다.


다만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서 의구심이 피어나는 대목도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저자 본인의 논점이 명확하지 않은 대목이 있다. 예를 들어서 저자는 고려 관제의 고유한 형식과 운영방식이 “고려가 운영한 정치제도의 ‘특징’이지 ‘독자성’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고려 관제의 ‘독자성’을 유독 강조해 왔던 선행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그의 논점대로라면, 성종과 그의 신하들은 전통적인 관제가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 데 걸맞지 않기 때문에 당제를 수용한 것이다. 다만 당제를 고려의 현실에 맞게 수용하는 과정에서 전통적 관제를 변형하여 부분적으로 당제에 반영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성종 대 완성된 고려 관제의 골격은 어디까지나 3성 6부고, 전통적인 관제는 부차적인 요소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저자의 또 다른 서술을 보면 꼭 그렇게 말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성종대 형성된 3성6부제는 고려의 고유의 관제를 바탕으로 전형적인 당제를 적용하여 명칭으로는 당제와 유사하지만 그 내용이나 성격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204면) 이 서술에 의한다면, 더 본질적인 것은 고려의 전통적인 관제이고 당제는 단지 명칭만을 빌려준 것에 불과하다. 이 논점은 고려 관제의 고유성을 강조 기존 연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명치 않다. 따라서 이 책 안에서 저자의 논점이 일관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려의 전통적 관제와 당제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저자는 고려가 당제를 ‘독자적’으로 수용하려 했다는 기존 연구의 논점을 부정한다. 그가 보기에는 고려 관제와 당제 사이에 보이는 차이점은 고려의 ‘독자성’이 아니라 ‘특징’이었다. 하지만 고려 관제의 ‘특징’을 만들어낸 역사적 상황과 맥락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저자의 글에서는 그런 측면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중국의 제도와 비교할 때 고려 관제의 형식과 운영에서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는 구체적으로 잘 보여주지만, 정작 중국 제도에서 변용된 고려의 관제가 어떤 점에서 변화한 고려 사회에 걸맞는 것인지는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 저자는 당의 3성 6부제가 군신 간의 권력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하고, 고려의 군신도 바로 그런 측면 때문에 당제를 수용했다고 본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수용한 당제가 고려의 군신 관계에 어떤 영향을 드러냈는지는 이 책에서 알 길이 없다. 고려의 전통적인 관제가 어떤 부분에서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 또 새로 수용한 당제가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가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고려의 전통적 관제와 당제의 관계가 선명하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 저자에 따르면, 당의 3성 6부제는 토지제도인 균전제, 군사제도인 부병제, 조세제도인 조용조, 지방제도인 향리제 등을 포괄하는 ‘율령체제’를 전제로 성립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고려는 율령제는 도입하지 않고 중앙관제인 3성 6부의 형식만을 수용했다고 말한다. (12~13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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