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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조선시대 기록 읽기25

[소지]1699년 이동표의 종 분선이 올린 소지 1699년(숙종 25) 이동표의 종 분선이 올린 소지(所志)[소장처: 최승희 선생님] □□□□□李東標奴粉先 (左寸)□□□□□이동표의 노비 분선이 올린 소지 (분선의 수촌) *□□□□□: 이동표 집안에서 다섯 글자를 오려내어 알 수 없는 글자*左寸: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의 첫째와 둘째 마디 사이를 가리킨다. 조선시대 사족들은 직접 송장을 접수하기보다는 노비를 대리인으로 세워 송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노비들은 서명을 할 때 자신의 좌촌 길이를 재어 그려넣었다.*이하 이두는 밑줄을 쳐둔다. 右謹言所志矣段。矣上典亦年前占得一穴於春陽面於老洞矣內上典墳山局內不遠之地。삼가 소지(所志)를 말씀드립니다. 저의 상전은 몇 해 전에 춘양면(春陽面) 어로동(於老洞)에 있는 안상전 분산 묘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묫자리를 .. 2019. 9. 26.
[준호구]1750년 임동빈 준호구 1750년 임동빈 준호구(소장: 규장각) 乾隆十五年 月 日 漢城府건륭 15년(1750) 월 일 한성부에서 발급한 준호구다. 考庚午成籍戸口帳内경오년(1750)에 작성[成籍]한 호구대장을 살펴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北部俊秀坊舊司圃署契第 統第 戸住嘉義大夫行龍驤衛副護軍林東彬年六十辛未生本扶安북부 준수방(俊秀坊) 옛 사포서계(司圃署契) 제○통 제○호에 거주하는 가의대부(嘉義大夫) 행(行) 용양위(龍驤衛) 부호군(副護軍) 임동빈(林東彬)은 나이가 60세이고 신미년(1691)에 출생했다. 본관은 부안(扶安)이다. 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夏蕃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하번(夏蕃)이다. 祖通德郎震格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郎) 진격(震格)이다. 曾祖老職通政大夫仁榮증조부는 노직(老職)으로 통정대.. 2019. 9. 10.
김정희 -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 김정희(金正喜) 漢書河間獻王傳云: “實事求是.” 此語乃學問最要之道. 若不實以事而但以空疎之術爲便, 不求其是而但以先入之言爲主, 其于聖賢之道, 未有不背而馳者矣. 『한서』의 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에 이르기를 “사실에 근거하여 옳은 것을 추구한다”[實事求是]고 했다. 이 말은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도리다.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서 그저 내용 없고 조잡한 방법을 편안하게 여기고 옳은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그저 선입견[先入之言]을 주관으로 삼으면, 성현(聖賢)의 도에 배치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漢儒于經傳訓詁, 皆有師承, 備極精實. 至于性道仁義等事, 因爾時人人皆知, 無庸深論, 故不多加推明. 然偶有注釋, 未甞不實事求是也. 自晉人講老莊虛無之學, 便于惰學空疎之人, 而學術一變, 至佛道大行而禪機所.. 2019. 3. 11.
송시열과 중화 송시열과 중화 송시열(1607~1689)은 노론의 영수로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 인물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에 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송시열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는 특히 사이비 역사학자 이덕일의 저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덕일은 송시열이 학술적 자유를 억압하고 조선을 친명 사대주의의 길로 빠뜨리고 말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나는 송시열에 관한 이덕일의 평가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특히 송시열을 ‘친명사대주의자’로 이해하는 그의 관점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이덕일은 송시열이 마주했던 조선의 현실이 무엇이었으며 그의 고민이 어떤 것이었는지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송시열은 왜 중화를 그토록 강조한 것인가? 그가 중시했던 중화는 망해버린 그저 망해버.. 2018. 4. 16.
허균 - 유재론(遺才論) 유재론(遺才論) 허균 爲國家者, 所與共理天職, 非才莫可也. 天之生才, 原爲一代之用, 而其生之也, 不以貴望, 而豐其賦, 不以側陋, 而嗇其稟, 故古先哲辟知其然也, 或求之於草野之中, 或拔之於行伍, 或擢於降虜敗亡之將, 或擧賊, 或用莞庫士. 用之者咸適其宜, 而見用者亦各展其才, 國以蒙福, 而治之日隆, 用此道也.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왕과 함께 하늘이 내린 직분을 다스리는 이들이니 인재가 아니면 안 된다. 하늘이 인재를 내는 것은 본래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해서다. 그래서 인재를 낼 때 귀하다는 이유로 그 타고난 재능을 풍부하게 하지 않고, 미천하다는 이유로 타고난 재능를 인색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옛날의 명철한 임금은 그러한 바를 알아서 혹은 초야에서 인재를 구하기도 했고, 혹은 병졸 중에서 인재를 선발하기도 했.. 2018.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