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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리뷰과 단상

정조에 투영된 정치적 열망, 무엇이 문제인가?

by 衍坡 2018. 4. 14.

정조에 투영된 정치적 열망, 무엇이 문제인가?

-이덕일의 책 『정조와 철인 정치의 시대』 논평-

 

 

1990년대 이후 조선의 22대 국왕 정조의 이미지는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개혁군주’ 또는 ‘계몽군주’라는 평가가 무능하고 나약한 군주의 이미지를 대신했다. 자연스럽게 정조에 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다. 이런 분위기는 정조의 삶과 치세를 다룬 다양한 저서가 출판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저서는 이덕일의 책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고즈윈, 2008)다. 정조의 극적인 삶은 물론 그의 개혁과 좌절을 매우 유려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국왕 정조와 ‘수구 정파’ 노론의 대립이라는 관점에서 정조시대를 이해한다. 정조가 ‘근대로의 이행’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주자학에 기초한 봉건질서를 극복하려 한 개혁군주였다면, 노론은 여전히 주자학을 고집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 수구세력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잘 드러난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조선은 정조 사망 이후 다시 주자의 나라로 회귀했다. …(중략)… 노론 벽파가 장악한 조정은 시대 흐름과는 거꾸로 질주했다. 그 결과는 조선 전체의 멸망이었다. 한 개혁 군주의 자리는 이토록 컸던 것이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정조와 노론을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로 주자학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즉, 정조는 근대지향적인 ‘반주자학자’였고, 노론은 주자학 일변도의 ‘수구세력’이라는 것이 이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저자의 관점이다.

 

 

이덕일 정조와 철인정치

▲이덕일의 책 『정조와 철인 정치의 시대』 

 

 

실제로 정조는 주자학의 논리체계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비판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서학(西學)이나 불교 등 여타 사상에 상대적으로 포용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조가 정말 반(反)주자학자였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의 정치사상에서 주자학은 여전히 ‘정학’(正學)의 위상을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자학은 정조에게 여전히 최상의 가치였던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상에 취한 포용적인 태도는 주자학에 기초한 사회질서를 흔들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능했다. 실제로 정조는 문체반정을 일으켜 당시 새롭게 등장한 소품문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순정한 고문(古文) 사용을 강요했다. ‘정학(正學)이 바로 서면 사설(邪說)이 사라질 것’이라며 주자학 저술을 대거 간행한 것도 정조 자신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정조가 주자학의 논리체계를 검토하고 비판한 것이 ‘반주자학’이 아니라 ‘포스트 주자학’이었다는 평가는 주목할 만하다.(백민정, 2010) 정조는 주자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정조가 개혁군주가 아니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가 반동군주였다고 평가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주자학이 절대적인 권위를 확보한 17세기와 비교하면, 주자학을 검토의 대상으로 삼고 비판하기도 했던 정조 시대는 분명히 그 이전의 시대와는 달랐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정조의 개혁 목표가 봉건질서를 해체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저자가 정조의 개혁을 봉건질서 해체와 연결하는 것은 그의 개혁으로부터 근대적 요소를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정조는 조선 사회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사대부들이 사변적인 말장난으로 세월을 보내는 동안 사회 밑바닥에서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일고 있었다. 농업생산력 발전에서 시작된 변화는 수공업과 상업으로 옮겨 가 사회 전체에 파급되었다.” 여기에는 조선 사회에서 유럽적인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트고 있었다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저자가 설정하는 조선의 미래, 즉 근대는 유럽의 고유한 역사적 맥락이 낳은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왕정을 전복하거나 왕의 권한을 제한함으로써 시민계급에 의한 새로운 정치질서를 확립할 수 있었다. 과연 봉건적 정치질서의 핵심에 있던 정조가 왕의 권한을 부정하거나 제한하면서 새로운 시민계급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었을까? 오히려 정조는 절대적인 군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고심했다. 그것은 붕당 간의 갈등이 더 이상 자체적으로 조정될 수 없는 18세기 조선의 현실을 의식한 결과였다. 실제로 정조는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을 자처했다. 자신은 달로, 모든 백성은 달빛을 받는 내천으로 비유한 것이다. 모든 백성을 교화하는 주체는 오로지 자신임을 밝힌 정조가 얼마나 근대지향적인 군주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정조의 개혁이 당시, 즉 18세기 조선의 역사적 맥락과 조건 안에서 어떤 의미와 한계를 지니는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저자는 정조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개혁군주에 대한 현대인의 열망을 여과 없이 투영한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런데 저자가 제시한 정조의 모습은 현재 한국 사회에 적절하지 않다. 정조를 반주자학적ㆍ근대지향적 개혁군주로 자리매김하려는 저자의 의도는 ‘영웅주의’로 귀결된다.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정조는 수구세력 노론과 싸우며 근대로 이행하던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려 한 인물이었다. 그가 사망한 뒤 조선이 멸망의 길로 갔다는 평가는 조선 사회에 나타난 변화와 가능성이 정조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한 개혁군주의 자리는 이토록 컸던 것”이라는 평가는 그런 생각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정조를 높이 평가함으로써 개혁적인 지도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싶었겠지만, 사회개혁의 성패를 군주 한 사람으로 수렴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논리에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의 관점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에서 시민이 자체적으로 이룬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상식적 사회를 세우기 위한 시민적 노력이 지닌 의미를 개혁적 지도자의 존재 여부로 귀결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역설적인 것은 정조를 수구세력과 싸운 개혁군주로 평가할수록 정치의 본질을 당대의 정치현상에서 배제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치의 기본적 의미는 ‘국가의 권력을 획득ㆍ유지ㆍ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행위’다. 그런데 저자는 정조 시대의 정치에서 정치의 본질보다 ‘싸움’에 강조점을 찍는다. 당대의 정치 구도를 시종일관 정조와 노론의 ‘싸움’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특히 노론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집단인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면서도 정조의 통치행위를 그와 대조적으로 그려내며 과도하게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설득과 타협 등 정치의 본질을 당시의 정치에서 특별하고 예외적인 측면으로 배제해버린다. 이런 논점에는 현실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사이비 역사가 이덕일

▲『정조와 철인 정치의 시대』 저자이자 사이비 역사학자 이덕일

 

 

하지만 정조와 노론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이분법적으로 접근할 경우 다층적인 이해관계와 다양한 변수가 얽힌 현실의 문제를 정조가 어떻게 풀어갔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없다. 정조는 노론을 배제하기보다 각 붕당을 정치의 장으로 포섭하여 그들의 정치적 입장과 이해를 조율하면서 함께 국정을 운영해 나갔다. 각 정파의 핵심인물에게 보낸 정조의 비밀편지는 그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우리가 정조 시대의 정치에서 주목할 것은 각 정파가 공존하는 가운데 설득과 논쟁과 타협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던 정치의 본질적 측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의 과제는 정조 시대의 정치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어떤 역사적 자산을 얻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이 아닐까?

 

결국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가 보여준 정조는 개혁적 지도자의 출현을 갈망하는 저자의 열망이 투영된 산물이다. 물론 정조가 일련의 개혁을 추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철저히 자신의 정치적 열망을 투영하여 정조의 개혁을 불러냈다. 그 과정에서 당대의 역사적 조건과 맥락은 깨끗이 지워졌다. 더구나 그렇게 불러낸 정조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에 적합한 정치적 가치와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 이 글은 2018년 부천시 독후감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작성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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