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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자집/사서집주

[맹자] 양下-3. 이웃나라와 사귀는 방법(寡人好勇)

by 衍坡 2020. 2. 12.

양혜왕장구下 (3) : 과인은 용맹함을 좋아합니다(寡人好勇)

 

 

 

 

齊宣王問曰: “交鄰國, 有道乎?” 孟子對曰: “有. 惟仁者, 爲能以大事小, 是故湯事葛, 文王事昆夷. 惟智者, 爲能以小事大, 故大王事獯鬻, 句踐事吳.

제 선왕이 물었다.

“이웃나라와 교류하는 데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어진 사람만이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탕(湯)이 갈나라[葛]를 존중하고 문왕(文王)이 곤이(昆夷)를 존중했던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만이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태왕(太王: 고공단보)이 훈육(獯鬻)을 섬기고 구천이 오(吳)를 섬긴 것입니다.

 

仁人之心, 寬洪惻怛, 而無較計大小强弱之私, 故小國雖或不恭, 而吾所以字之之心自不能已. 智者明義理, 識時勢, 故大國雖見侵陵, 而吾所以事之之禮尤不敢廢. 湯事見後篇, 文王事見詩大雅, 大王事見後章. 所謂狄人, 卽獯鬻也. 句踐, 越王名, 事見國語ㆍ史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관대하고 가엾이 여겨 크고 작음과 강하고 약함을 계산하는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나라가 혹여 공손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의리에 밝고 시세를 알기 때문에 큰 나라에게 침략을 당해도 나는 그들을 예로 섬기는 것을 더욱 그만두지 않는 것이다. 탕의 일은 뒤편에 보인다. 문왕의 일은 『시경』 「대아」에 보인다. 태왕의 일은 뒷장에 보인다. ‘狄人’(적인)이라고 하는 것은 훈육을 가리킨다. 구천은 월왕의 이름이다. 그의 일은 『국어』와 『사기』에 보인다.

 

 

以大事小者, 樂天者也, 以小事大者, 畏天者也. 樂天者, 保天下, 畏天者, 保其國.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존중함은 천리(天理)를 즐거워하는 것이고,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김은 천리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천리를 즐거워하는 자는 온 세상을 보존하고 천리를 두려워하는 자는 자신의 나라를 보존합니다.

 

天者, 理而已矣. 大之字小, 小之事大, 皆理之當然也. 自然合理, 故曰樂天, 不敢違理, 故曰畏天. 包含徧覆, 無不周徧, 保天下之氣象也. 制節謹度, 不敢縱逸, 保一國之規模也.

‘天’(천)은 ‘理’(이)일 뿐이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사랑하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모두 당연한 이치다. 자연히 이(理)에 부합하므로 ‘천리를 즐거워 한다’[樂天]고 하고, 감히 이(理)를 거스르지 않으므로 ‘천리를 두려워한다’[畏天]고 한다. 포용하고 널리 덮어주어 두루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천하를 보존하는 기상이고, 절도에 알맞게 하고 법도를 신중히 행하여 제멋대로 굴지 않는 것은 한 나라를 보존하는 규범이다.

 

 

詩云: ‘畏天之威, 于時保之.’”

『시』에 이르기를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보존하네’라고 하였습니다.”

 

詩, 周頌, 我將之篇. 時, 是也.

[맹자가 언급한] 시는 주송(周頌) 아장편(我將篇)에 있다. ‘時’(시)는 ‘이것’이라는 뜻이다.

 

 

王曰: “大哉, 言矣! 寡人有疾, 寡人好勇.”

왕이 말했다. “말씀이 훌륭합니다! 그러나 과인에게는 단점이 있으니, 과인이 용기(勇氣)를 좋아합니다.”

 

言以好勇故, 不能事大而恤小也.

용기를 좋아하여 큰 나라를 섬기고 작은 나라를 가엾게 여길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對曰: “王請無好小勇. 夫撫劍, 疾視曰: ‘彼惡敢當我哉!’ 此匹夫之勇, 敵一人者也. 王請大之.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작은 용기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검을 만지면서 흘겨보고는 ‘저들이 어찌 나를 당해내겠는가’라고 한다면, 이것은 필부(匹夫)의 용기이니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용기를] 크게 가지십시오.

 

疾視, 怒目而視也. 小勇, 血氣所爲, 大勇, 義理所發.

‘疾視’[흘겨봄]는 화난 눈으로 보는 것이다. 작은 용기[小勇]은 혈기로 행동하는 것이고 큰 용기[大勇]은 의리로 행하는 것이다.

 

 

詩云: ‘王赫斯怒, 爰整其旅, 以遏徂莒, 以篤周祜, 以對于天下.’ 此文王之勇也. 文王一怒而安天下之民.

『시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왕이 왈칵 분노하셔서 자신의 군대를 정비해 침략하러 가는 군대를 막아 주나라의 복을 두터이 하고 온 세상 사람들의 기대에 보답하네.’ 이것은 문왕의 용기입니다. 문왕은 한 번 노여워하여 온 세상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셨습니다.

 

詩, 大雅, 皇矣篇. 赫赫然, 怒貌. 爰, 於也. 旅, 衆也. 遏, 詩作按止也. 徂, 往也. 莒, 詩作旅. 徂旅謂密人侵阮徂共之衆也. 篤, 厚也. 祜, 福也. 對, 答也, 以答天下仰望之心也. 此文王之大勇也.

[본문의] 시는 대아(大雅) 황의편(皇矣篇)에 있다. ‘赫赫然’(혁혁연)은 노여워하는 모양이다. ‘爰’(원)은 ‘이에’라는 뜻이다. ‘旅’(려)는 군대다. ‘遏’(알)은 『시경』에 ‘按止’[억눌러 멈추게 하다]로 되어 있다. ‘徂’(조)는 ‘간다’는 뜻이다. ‘莒’는 『시경』에 ‘旅’로 되어 있다. ‘徂旅’(조려)는 밀(密)나라 사람들이 완(阮)나라를 침략하려고 공(共) 땅으로 가는 군대를 말한다. ‘篤’(독)은 두텁다는 뜻이다. ‘祜’(호)는 복이다. ‘對’(대)는 답한다는 뜻이니, 온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 바라는 마음에 응답한 것이다. 이것은 문왕의 큰 용기다.

 

 

書曰: ‘天降下民, 作之君, 作之師, 惟曰 其助上帝, 寵之四方. 有罪無罪惟我在, 天下曷敢有越厥志?’ 一人衡行於天下, 武王恥之. 此武王之勇也, 而武王亦一怒, 而安天下之民.

『서경』에 이른 말이 있습니다. ‘하늘이 하민(下民)을 내리면서 임금을 세워주고 스승을 세워주는 것은 그가 상제(上帝)를 도우리라 생각하여 온 세상[四方]의 어떤 사람보다도 총애하기 때문이다. 죄가 있는 사람을 처벌하고 죄가 없는 사람을 편안케 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니 세상 사람 중에 어찌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난리를 일으키는 자가 있겠는가?’ 한 사람이 천하에 횡행하는 것을 문왕은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이것은 문왕의 용기입니다. 문왕도 한 번 노여워하여 온 세상의 백성을 편안케 하셨습니다.

 

書, 周書大誓之篇也, 然所引與今書文小異, 今且依此解之. 寵之四方, 寵異之於四方也. 有罪者, 我得而誅之, 無罪者, 我得而安之. 我旣在此, 則天下何敢有過越其心志而作亂者乎? 衡行, 謂作亂也. 孟子釋書意如此, 而言武王亦大勇也.

[본문의] 서경 구절은 『주서』(周書) 「대서편」에 나온다. 그러나 [맹자가] 인용한 것은 지금의 서경 문구와 조금 다르다. 지금은 여기(맹자의 말)에 따라서 해석한다. ‘寵之四方’(총지사방)은 총애가 사방의 누구보다도 특별하다는 뜻이다. 죄가 있는 사람은 내가 처벌할 수 있고 죄가 없는 사람은 내가 편안케 할 수 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하늘의] 심지(心志)를 어기고 난리를 일으키겠는가? ‘衡行’(횡행)은 난리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맹자는 서경의 의미를 이와 같이 해석하고 무왕 역시 큰 용기를 가졌다고 말한 것이다.

 

 

今王亦一怒而安天下之民, 民惟恐王之不好勇也.”

왕께서도 한 번 노여워하여 온 세상의 백성을 편안케 하신다면, 백성은 왕이 용맹함을 좋아하지 않을까봐 걱정할 것입니다.

 

王若能如文武之爲, 則天下之民望其一怒以除暴亂, 而拯己於水火之中, 惟恐王之不好勇耳.

왕이 만일 문왕과 무왕의 행적과 같을 수 있다면, 온 세상의 백성들은 그가 한 번 노여워하여 폭정과 혼란을 제거하고 자신을 도탄[水火之中]에서 건져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므로 왕이 용맹함을 좋아하지 않을까 염려할 뿐이다.

 

○此章言人君能懲小忿, 則能恤小事大以交鄰國, 能養大勇, 則能除暴救民以安天下. 張敬夫曰: “小勇者, 血氣之怒也. 大勇者, 理義之怒也. 血氣之怒, 不可有, 理義之怒, 不可無. 知此則可以見性情之正, 而識天理人欲之分矣.”

○이 장은 이런 것을 말한 것이다. ‘임금이 작은 분노를 경계할 수 있다면 작은 나라를 아끼고 큰 나라를 섬겨서 이웃 나라와 교제할 수 있다. 큰 용기를 기를 수 있다면 폭정을 제거하고 백성을 구제하여 천하를 편안케 할 수 있다.’ 장경부[張栻]이 말했다. “작은 용기는 혈기에서 비롯하는 노여움이고, 큰 용기는 의리에서 비롯하는 노여움이다. 혈기의 노여움은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의리의 노여움은 없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안다면 성정(性情)의 올바름을 볼 수 있고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나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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