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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성2

조선 초기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보는 시선들 조선 초기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보는 시선들 2020.02.06. 1. 조선의 ‘독자성’을 읽어내려는 노력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뜻밖의 기록이 적혀있다. “옛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노인의 형상과 비슷하다고 했다. 해좌사향(亥坐巳向)으로 서쪽을 향해 국면이 트여서 중국에 읍(揖)하는 형상이라서 예로부터 중국에 충순(忠順)해 왔다.” 중국 주변의 여러 ‘오랑캐’들은 모두 중국을 침략하여 제왕 노릇을 했지만, 조선만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의 강역을 지키며 정성껏 사대했다[恪勤事大].[각주:1] 하지만 어느 연구는 이 서술이 최남선의 광문회본 『택리지』에서 완전히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최남선은 ‘충순’(忠順)과 ‘각근사대’(恪勤事大)라는 표현을 각각 ‘친닐’(親昵)과 ‘불감의타’(不敢意他).. 2020. 2. 13.
사회경제정책 논의의 정치적 성격 배우성, 2003, 「사회경제정책 논의의 정치적 성격」, 『조선중기 정치와 정책』, 아카넷 2019.07.31. 1. 머리말 17세기 조선에서 富國과 安民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매우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였다. 당시 다양한 사회경제정책론이 쏟아진 것도 그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이 시기의 사회경제정책론을 검토한 연구들은 학문적 차이 혹은 정치세력의 차이가 서로 다른 사회경제정책론으로 이어졌다고 파악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17세기 사회경제정책의 차이를 일관되게 학문적 차이로 설명하기 어렵다. 각 학파=정파의 차이는 예론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사회경제정책론은 예론과 같은 차원으로 보기에 매우 시급한 사안이었다. 학파=정파간 정책론의 차이는 오히려 반세.. 2019.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