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주7 신흥유신과 신진사대부 고려 말의 정치세력으로서 '사대부'의 개념을 두고 여러 논의가 존재하는데, 그중에는 사대부의 개념과 별도로 '신흥유신'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입론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익주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그는 '신흥유신'과 '신흥사대부'라는 용어를 엄밀하게 구분해서 사용한다. 이것은 1998년에 발표된 그의 논문 서두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신흥유신은 고려 후기에 성리학자로서 과거에 급제한 관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회경제적 기반을 기준으로 구분되는 세족과 사대부가 모두 포함되는 개념이다. 단지 이들은 성리학자로서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개혁의지를 공유하고 있었고, 좌주·문생 관계를 통해 집단을 형성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흥유신이 주도하는 개혁의 흐름 속에서 신흥유신 가운데 사대부.. 2024. 9. 6. 고려 말 정도전의 정치세력 형성 과정 연구 이익주, 2006, 고려 말 정도전의 정치세력 형성 과정 연구, 『동방학지』 134 정리: 2020.04.12. 1. 머리말 그간 조선 건국을 주도한 정치세력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그 정치세력 내부의 구성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저자는 조선 건국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던 정도전과 조준을 비교해서 조선건국세력 내부의 구성과 다양한 정치운영론을 규명하려 한다. 저자는 이전에 『삼봉집』의 시문을 분석해서 정도전이 이색 문하의 인물들과 활발히 교유한 반면 조준 계열의 인물들과는 소원했음을 밝혔다. (이익주, 2004) 저자는 그것이 정도전의 인간적인 교유에 국한된 것이었음을 밝히고, 이 글에서는 이전 연구의 연장선에서 정도전의 ‘정치적 관계’를 분석하려 했다. 즉, 정도전이 고려 말.. 2020. 4. 14. 공민왕대 개혁의 추이와 신흥유신의 성장 이익주, 1995, 「공민왕대 개혁의 추이와 신흥유신의 성장」, 『역사와 현실』 15 2020.01.18. 1. 머리말 공민왕 대는 원 간섭기의 정치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체제가 수립되었고, 그 과정에서 ‘新興士大夫’라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 신흥사대부 등장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려면 원 간섭기 정치체제에 대한 이해와 공민왕 대에 새로운 정치체제가 수립되는 과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여전히 사대부의 개념조차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고려 후기의 사회변동과 새로운 사회 세력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사대부의 개념을 폐기하는 것은 부당하고, 그보다는 문제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대부가 정치세력화한 시기를 과도하게 소급하는 오류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사대부는 ‘중소지주로서 동일.. 2020. 1. 19. 반원운동에 관한 연구사 정리 반원운동에 관한 연구사 정리 2019.12.05 공민왕은 1356년 5월에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원(元)과 결탁해서 권세를 휘두르던 기철 일가와 ‘부원세력’을 일시에 숙청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했다. 아울러 압록강 서쪽의 8참을 공격하고, 동북쪽에 군사를 보내 쌍성 등의 지역을 되찾았다. 공민왕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군의 만호ㆍ진무ㆍ천호ㆍ백호가 지닌 패를 회수했다. 이 일련의 조치는 공민왕의 계획 아래 치밀하게 진행되었고, 결국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정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반원운동’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워낙 전격적이고 극적으로 이루어졌던 만큼 많은 한국사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각주:1] ‘반원운동’을 고려의 국내외적 조건 속에서 종합적으.. 2019. 12. 6. 고려후기 몽고침입과 민중항쟁의 성격 이익주, 1994, 「고려후기 몽고침입과 민중항쟁의 성격」, 『역사비평』 24 ▲처인성 전투 「고려후기 몽고침입과 민중항쟁의 성격」은 13세기 대몽 항쟁을 “‘국난극복’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하는 입장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글이다. “1장 : 문제의 제기”에서 필자는 13세기 대몽항쟁에 부여된 ‘민족적’성격의 평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고려-몽골’의 민족적 대립만으로 13세기 고려를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필자는 “13세기 이전부터 대립하던 고려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그리고 새로이 등장한 침략자 몽고, 이 셋 사이의 관계로서 설명해야” 좀 더 합리적인 설명이 될 것으로 보았다. “2장 : 대몽항쟁의 실상”에서는 12세기와 13세기의 고려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관계에 대하.. 2018. 4. 21. 고려-몽골 관계에서 보이는 책봉-조공관계의 탐색 이익주, 「고려-몽골 관계에서 보이는 책봉-조공관계의 탐색」(『13~14세기 고려-몽골관계 탐구』, 동북아역사재단, 2011) 1. 머리말 1259년부터 1356년까지 약 100년에 가까운 시기를 ‘원 간섭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를 ‘원 간섭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원의 간섭을 받았으나 국가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지배’가 아닌 ‘간섭’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관점에 동의하는 저자는 고려-몽골(원) 관계를 구조적으로 파악하여 ‘세조구제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고려와 몽골(원) 관계의 원칙인 세조구제는 책봉-조공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원의 간섭은 책봉-조공관계의 한 시기적 양상이었다. 이런 관점은 몽골사 연구자와 모리히라 마사히코의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2000년대.. 2018. 4. 20. 고려 ‧ 원관계의 구조에 대한 연구 이익주, 「고려 ‧ 원관계의 구조에 대한 연구 ―소위 ‘세조구제’의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사론』 36, 1996) 1. 논문의 목적 이익주의 논문은 고려 원종과 충렬왕 때의 고려-몽골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소위 ‘세조구제’의 내용과 성격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고려-몽골의 형식과 특징에 대해 살펴보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이는 “元代史의 전개에 있어서 世祖代는 원의 모든 제도가 정비되는 시기로, 고려와의 관계를 비롯한 외교정책 역시 이 때 일정한 원칙을 가지면서 정립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세조구제’가 성립되는 과정 및 그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고려 ‧ 원관계의 구조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2. 원종대 고려 ‧ 원관계의 전개 저자의 말에 따라 고려와 몽골이 강화를 .. 2018. 4. 1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