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기/리뷰과 단상29 정조는 ‘마키아벨리스트’인가? 정조는 ‘마키아벨리스트’인가?― 정병설의 『권력과 인간』을 읽고 ― 2020.04. 국문학자 정병설의 책, 『권력과 인간』은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배경과 의미를 다시 파악하려 한 책이다. 저자는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자라고 보는 기존의 설명에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사도세자가 그의 ‘광증’에서 비롯된 ‘반역’으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고 보았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의 아들 정조에 의해 미화되었으며, 후대에 이 자료를 근거로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자라는 통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설명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정치사적 측면에서 바라보기보다 ‘개인사’ 혹은 ‘가족사’의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특징이 있다. 저자가 이런 설명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주로 사도세자의 처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 2024. 10. 5. 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의 역사 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의 역사 2020.5.25 이른바 ‘개천절’(開天節)은 한국의 국경일 중 하나다. ‘국조’(國祖) 단군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내세워 ‘단군조선’을 건국한 것을 기리는 날이다. 단군이 실존했던 인물인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하지만 단군이 실존했는지와는 별개로, 단군을 민족이나 국가의 시조로 여기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이런 인식은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단군에 대한 인식이 수백 년 동안 한결같았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단군을 바라보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랐고, 동시대의 인물들이 단군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는 단군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시대와 인물에 따라 살펴보려 한다. .. 2024. 10. 4. 신흥유신과 신진사대부 고려 말의 정치세력으로서 '사대부'의 개념을 두고 여러 논의가 존재하는데, 그중에는 사대부의 개념과 별도로 '신흥유신'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입론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익주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그는 '신흥유신'과 '신흥사대부'라는 용어를 엄밀하게 구분해서 사용한다. 이것은 1998년에 발표된 그의 논문 서두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신흥유신은 고려 후기에 성리학자로서 과거에 급제한 관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회경제적 기반을 기준으로 구분되는 세족과 사대부가 모두 포함되는 개념이다. 단지 이들은 성리학자로서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개혁의지를 공유하고 있었고, 좌주·문생 관계를 통해 집단을 형성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흥유신이 주도하는 개혁의 흐름 속에서 신흥유신 가운데 사대부.. 2024. 9. 6. [리뷰] 곽광 고사의 정치적 활용 양상 일고 최혜미, 2018, 곽광 고사의 정치적 활용 양상 일고, 근역한문학회(49) 2024.03.31 이 글은 한나라 권신 곽광의 고사가 조선 전기에 어떤 방식으로 독해되었는가에 주목한다. 곽광의 고사가 특정한 정치적 맥락 속에서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담아 활용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게 보면 조선 지배층이 곽광 고사를 언급한 사례는 수사학적 차원에서만 분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발화가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저자는 이 글에서 그 작업을 수행했다. 저자에 의하면, 조선에서는 중종반정을 기점으로 곽광에 대한 평가와 그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양상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의 논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본래 중국에서 곽광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 2024. 4. 1. 조선 전기 유학사 연구 살펴보기 조선 전기 유학사 연구 살펴보기 2022.03.28. 이 글은 조선 건국에서부터 16세기까지를 다룬 조선 유학사 연구의 성과를 대략적으로 개괄한 것이다. 다만 조선 건국과 성리학의 관계는 그간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 사안이기 때문에 14세기 말도 논의 범위에 포함했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는 ‘조선 전기’로 분류되고, 그 핵심적인 특징으로 ‘유교화’가 언급된다. 유교화를 보여주는 지표에는 정치세력, 사회구조, 친족질서 등 여러 가지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짧은 글에서 그 많은 주제를 모두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글에서는 성리학을 주로 정치이념으로 간주하고 탐구한 논저를 중심으로 조선 전기의 유교사를 개괄하려 한다. 1. 조선 건국과 성리학 그동안 조선 건국은 고려 후기 사회변동의 결과.. 2022. 3. 28. 「고려시대의 曆法과 曆書」를 읽고 전용훈, 2014, 「고려시대의 曆法과 曆書」, 『한국중세사연구』 39 2021.09.23. ● 전용훈의 연구는 고려의 역법과 역서 간행의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전용훈은 고려의 역법을 宣明曆과 授時曆 두 가지로만 설명하는 『高麗史』 「曆志」의 서술을 신뢰할 수 없다는 관점에 서 있다. 그의 전체적인 논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고려는 외교 관계를 맺었던 중원의 여러 나라로부터 역법과 역법에 관한 지식을 수용하면서도 나름대로 自國曆를 간행했다. ②11세기 중반 이후로 고려의 역법이 송의 역법과 친연성을 보이면서도 선명력을 채택한 일본의 역법과 차이를 보였다는 점에서 12~13세기 고려의 역법은 선명력과 달랐다. ③고려는 원의 역법을 활용해 자국의 역서를 처음으로 간행했고, 피책.. 2021. 9. 23.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와 문명화(1904~1919)』를 읽고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와 문명화(1904~1919)』를 읽고 (권태억, 2014,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와 문명화(1904~1919)』, 서울대 출판부) 2020.08.31 1. 이 책의 일차적인 목표는 일제가 내세운 문명화론의 성격과 1910년대 무렵 식민통치의 성격, 그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과 대응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의 근본적인 의도는 3.1운동이라는 거족적인 대규모 운동의 발생 원인을 문명화론과 식민통치의 성격과 연결 지어 밝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의 식민통치와 문명화론을 검토하면서 그 하한을 1919년까지로 한정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2. 일군의 경제사학자들은 근대적인 문물제도의 이식과 식민지 조선의 자본주의화에 큰 의미를 둔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일제가 주도한 ‘문명.. 2020. 9. 11. 『개발 없는 개발』을 읽고 『개발 없는 개발』을 읽고 (허수열, 2011, 『개발 없는 개발』(개정판), 은행나무) 2020.08.31 1. 저자는 이 책에서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응해서 20세기 전반기 식민지 조선의 경제 동향과 추이를 실증적으로 검토한다. 그의 기본적인 입장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반대편에 있다. 물론 식민지에서도 자본주의적 관계가 부분적으로나마 성장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저자는 식민지 조선의 경제를 ‘수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데 비판적이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그의 견해는 ‘식민지 수탈론’의 입장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식민지 수탈론’을 경제학적 방법론으로 보완한, 즉 ‘식민지 수탈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연구라 할 수 있다. 2.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통계 자료에 대.. 2020. 9. 11. 「여말선초 도학의 성격과 도통론」을 읽고 「여말선초 도학의 성격과 도통론」을 읽고 2020.07.07 심예인의 논문 「여말선초 도학의 성격과 도통론」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14~15세기의 도학과 도통론을 검토한 글이다. 이 논문의 핵심적인 목적은 정몽주에서 조광조로 이어지는 16세기 이후의 도학과 도통론으로 조선시대 전체의 도학과 도통론을 이해하려는 기존 연구의 경향을 수정하는 것이다. 저자의 논의에 따르면, 도학의 성격은 시기에 따라 달라졌다. 16세기의 도학이 ‘절의실천적’인 것이었다면, 15세기의 도학은 경학을 바탕으로 ‘경세실천’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도통론도 마찬가지였다. 16세기 이후의 도통론과는 사뭇 다른 도통론이 14~15세기에 이미 존재했고, 그 내용은 16세기의 도통과는 매우 달랐다. 16세기 이후의 도통이 주로 문묘에 .. 2020. 7. 8. 정도전의 정치사상과 ‘心’ 정도전의 정치사상과 ‘心’ 2020.05.08 그동안 정도전은 이른바 ‘신권중심론자’의 상징적인 인물로 간주되었다. 기존 한국사 연구에 따르면, 정도전은 왕권보다는 재상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가체제를 상정했다고 한다. 혈연에 따라 왕위가 세습되는 사회에서 국정은 국왕 개인의 인격과 역량에 따라 잘 다스려질 수도, 엉망이 될 수도 있었다. 정도전은 그런 정치적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서 재상 중심의 국정 운영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정도전에게 국왕은 재상과 한두 가지 나랏일을 의논하는 도덕적 상징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송재혁은 이런 견해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송재혁의 주장은 매우 명확하다. 그는 기존 한국사 연구자들이 정도전의 정치질서 구상을 의원내각제 혹은 입헌군주제에 유비해 왔다고 지.. 2020. 7. 7.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