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한국 식민지화와 문명화(1904~1919)』를 읽고
(권태억, 2014,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와 문명화(1904~1919)』, 서울대 출판부)
2020.08.31
1. 이 책의 일차적인 목표는 일제가 내세운 문명화론의 성격과 1910년대 무렵 식민통치의 성격, 그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과 대응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의 근본적인 의도는 3.1운동이라는 거족적인 대규모 운동의 발생 원인을 문명화론과 식민통치의 성격과 연결 지어 밝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의 식민통치와 문명화론을 검토하면서 그 하한을 1919년까지로 한정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2. 일군의 경제사학자들은 근대적인 문물제도의 이식과 식민지 조선의 자본주의화에 큰 의미를 둔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일제가 주도한 ‘문명화 사업’의 의의를 제한적으로 인정한다. 저자의 관심은 오히려 일제의 ‘문명화 사업’과 ‘문명화론’의 저변에 깔린 일제의 정치적 의도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그 실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런 논점은 자본주의 질서의 중심부적인 시선에서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일부 경제사학자들이 간과하는 부분들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일제가 도입한 근대적인 제도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을 드러내는데, 저자의 서술은 식민지에 이식된 근대적 제도가 제국주의적이라는 사실을, 그것이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식민지 조선에 정착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3. 서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구분되는 일본 제국주의의 특징을 지적한 점이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은 서유럽의 제국주의 국가가 내세운 문명화론을 조선에 그대로 되풀이할 수 없었다 한다. 서유럽의 식민지 확보 과정에서 문명화론 전파의 일선에 섰던 기독교 교단 같은 사회세력이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일본 자신이 서구 국가와 불평등한 조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가 아니었던 일본은 조선을 일방적으로 압도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논점은 식민지 조선인을 차별하던 일제가 왜 굳이 동화를 적극적으로 표방해야 했는지, 어째서 서구 국가에 대응해 동아시아 3국의 ‘연대’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4. 책을 읽는 동안 해소되지 않은 의구심도 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식민지민의 다양한 생각을 서술한 대목들은 너무나도 흥미롭지만, 식민지화의 과정과 식민통치의 실상에 관한 서술은 다소 평면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4-1. 저자는 ‘시정개선’으로 표현된 통감부기의 ‘문명화 사명론’과 1910년대 문명화 사명론을 구분해서 서술하는데, 정작 1910년 이전과 이후의 ‘문명화 사명론’에 큰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문명화 사명론’이 통감부 혹은 총독부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구사되는 것이라면, 그 구체적인 내용도 일관적이라기보다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큰 편차를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그런 차이들이 잘 드러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식해야 할 ‘근대’의 내실은 시대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했으며, 또한 어떤 영역에서 어느 정도로 근대화를 진행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선택권은 총독부가 끝까지 장악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고마고메 다케시의 지적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4-2. 이 책이 1904년부터 1919년까지 식민지 조선의 역사를 서술하는 틀은 기본적으로 억압과 저항의 구도다. 일제의 정책이 폭력적으로 구사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거나, 식민지민이 일제의 ‘문명화 사업’을 제한적으로만 긍정했다는 서술은 대체로 그런 구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상황을 놓고 보면 이런 서술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김현주의 『사회의 발견』에 의하면 총독부의 태도는 같은 1910년대라 해도 초기와 후기에 차이를 보인다 한다. 1910년대 초에는 조선인의 정치적 요구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면, 중반 이후에는 조선의 토착 엘리트를 ‘포섭’하려는 목적에서 제한적으로나마 『매일신보』의 지면을 그들에게 허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하면 총독부의 정치적 전략도 훨씬 더 복잡다단한 성격을 지녔을 것이라 짐작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 복잡한 성격들이 ‘억압적’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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