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견문록/독서노트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과 그 과학적ㆍ철학적 의미

by 衍坡 2019. 2. 6.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과 그 과학적ㆍ철학적 의미








1. 머리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흔히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 수식어는 근대 과학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뉴턴이 제시한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운동 3법칙(관성의 법칙ㆍ가속도의 법칙ㆍ작용-반작용의 법칙), 미분과 적분 등은 실제로 근대 과학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뉴턴 이후 근대 과학이 자연철학의 범주에서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가 근대 과학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뉴턴이 근대 과학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해서 그의 역학이 종전의 과학사적ㆍ철학사적 흐름과 단절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각주:1] 차라리 뉴턴의 역학이 그 이전의 과학사적ㆍ철학사적 맥락 속에서 등장했다고 보는 쪽이 더 설득력 있다.



뉴턴이 살았던 17세기에는 중세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세계를 천상계와 지상계로 구분한다. 이 구분에 따르면 천상계는 에테르로 가득 찬 완전무결한 세계다. 이곳에서는 달ㆍ수성ㆍ금성ㆍ태양 등이 원운동을 하지만 마찰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늘 일정한 속도로 멈추지 않고 운행한다. 반면, 지상계는 움직이던 물체가 정지하기도 하고 정지해있던 사물이 운동하기도 하는 불완전한 세계다. 이때 사물의 운동에는 ‘강제적인 운동’과 ‘자연스러운 운동’이 있다. 외부의 힘이 작용해 운동하는 것이 전자라면, 후자는 지상계를 구성하는 물ㆍ불ㆍ흙ㆍ공기 4원소가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려는 성질 때문에 발생한다. 간단히 말해서 천상계는 정적이고 완벽한 세계인 반면 지상계는 동적이고 불완전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극복한 인물은 데카르트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역학을 제시했다. 데카르트는 사물이 본성에 따라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외부의 원인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물체가 운동하는 원인은 신에게서 비롯하며, 사물은 신의 작용으로 변함없이 운동할 수 있다. 이런 기계론적인 역학은 데카르트 자신의 고유한 공간론과 관련이 있었다. 데카르트의 공간론은 물론 물질과 정신의 실체가 서로 구분된다는 그의 사유에 뿌리를 두었다.


뉴턴의 역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이 점차 극복되어 가던 과학사적ㆍ철학사적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뉴턴은 자신의 역학 체계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철학자의 영향을 받았지만, 데카르트의 자연관은 그에게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뉴턴은 데카르트가 상정한 운동 개념을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역학 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운동 개념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었던 뉴턴은 데카르트가 전제한 공간 개념을 비판하고 나름대로의 시간과 공간 개념을 제시했다.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은 그가 제시한 역학의 기본 전제일 뿐 아니라 기존 자연철학의 틀을 크게 바꿔놓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간ㆍ공간 개념은 과학사적으로나 철학사적으로나 대단히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뉴턴의 시간과 공간이 어떤 개념이며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는지, 이후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그 개념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그것을 어떻게 비판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의 과학적ㆍ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근대 과학사에서 뉴턴은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가? 이런 물음에 답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 데카르트의 공간론과 뉴턴의 비판


데카르트의 운동 개념은 그의 공간론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다. 데카르트의 운동 개념을 극복하려던 뉴턴이 데카르트의 공간론을 비판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데카르트의 운동 개념은 공간론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뉴턴이 데카르트의 공간론에서 받은 영향은 없을까? 그는 데카르트의 공간론을 어떤 식으로 비판했을까?


데카르트의 공간론을 살펴보려면 그의 철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되는 ‘실체이원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체이원론은 말 그대로 실체가 둘로 나뉜다는 견해다. ‘실체’(substance)는 독립적이면서도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가진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실체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일관된 속성을 가진다. 데카르트는 실체에 두 가지가 있다고 보았다. 바로 물질과 정신이다. 물질이 특정한 공간을 차지하는 속성, 즉 연장(extension)을 본질로 한다면, 정신의 본질은 이성적인 사유 활동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정신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물질과는 구분된다.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는 데카르트의 견해는 그의 저술 『성찰』에 잘 드러난다. 데카르트는 이 저술에서 확실한 학문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방법론적 회의’를 펼쳤고, 개인의 육체와 정신이 명확하게 구분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의 논리는 이런 식이다. ‘사람은 꿈속에서 육체를 가진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은 적이 있다. 비록 꿈에서 육체를 가졌다고 믿었지만 실제로 꿈에서 육체를 가진 것은 아니다. 꿈과 현실을 분명하게 구분할 징표는 없기 때문에 연장을 지닌 육체가 존재한다고 확정할 수 없다. 반면, 생각하는 자신의 존재는 결코 의심할 수 없다. 만일 전능한 악마가 생각하는 자신이 존재한다고 속였다고 치자. 이때 속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순이 생긴다. 따라서 생각하는 자신의 존재는 결코 의심할 수 없다.’ 물질과 정신을 서로 다른 실체로 구분하는 데카르트의 생각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논리다.[각주:2]



데카르트는 공간이 물질과 정신 중에서 전자에 속한다고 보았다. 물질은 연장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어떤 물질이든 반드시 일정한 공간을 차지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뒤집어 말하면 어떤 공간이든지 반드시 물질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생각이었다. 그에게는 물질이 곧 공간이고 공간이 곧 물질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물질보다 먼저 존재하는 공간을 전제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와 같은 공간론은 상정했기 때문에 ‘진공’(vacuum) 개념도 부정했다. 세계가 최소한의 물질인 에테르로 가득 차 있으므로 진공이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데카르트의 공간론을 받아들이면 공간은 분할 가능한 대상이 된다. 물질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최소한의 물리적 단위인 원자들의 구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질이 분할될 수 있다면 공간 역시 분할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공간에 대한 인식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전제가 되었다. 데카르트는 분할 가능한 공간을 유클리드 기하학에 기초해서 수학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이른바 ‘데카르트 좌표계’는 그 노력의 결과물이었다.(그림1) 데카르트 좌표계는 외부 세계에 대한 수학적 인식틀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그것은 공간을 분할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데카르트 좌표계





데카르트의 공간론은 뉴턴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뉴턴은 공간을 3차원적으로 바라보는 데카르트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그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여 자연을 “수학의 언어로 쓰인 교과서”로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사물의 운동을 인과적으로 파악하는 한편 그것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뉴턴이 미분과 적분을 발명해낸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특히 그가 제시한 미분과 적분이 기본적으로 데카르트 좌표계의 평면 위에 구현된다는 사실은 꽤 의미심장하다.(그림2)




▲미분 그래프




그러나 뉴턴은 데카르트와 달리 공간을 물질의 본질적 속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뉴턴과 데카르트가 공간을 서로 다르게 정의하는 이유는 두 사람이 사물의 운동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공간을 차지한 입자들의 연쇄적인 충돌 때문에 인과적으로 운동이 발생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입자(A)가 입자(B)에 충돌하면서 운동량을 전달해 입자(B)를 움직이게 만든다. 하지만 입자(B)는 자신의 원래 운동량을 지속하려고 하기 때문에 또 다른 입자(C)에 충돌해 그 운동량을 전달한다. 이때 입자(A)를 입자(B)에 충돌하게 만들어 운동을 처음 시작하게 만든 원인은 신이다. 신은 물질을 창조하면서 운동과 정지를 부여한다. 신의 작용은 항상 동일하고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물질의 운동량은 처음에 신이 부여한 것과 똑같다.’[각주:3] 한 마디로 데카르트는 “물체를 기초로 운동을 정의함으로써 관계론적 운동개념을 제시”했던 것이다.



뉴턴의 관점에서 보면 데카르트의 관점은 문제가 있었다. 뉴턴은 운동을 ‘사물이 어느 고유한 위치에서 다른 고유한 위치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물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운동의 변화를 파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운동 개념과 공간론을 받아들이면 물체가 있던 고유한 위치에 물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따라서 운동이 시작된 장소와 운동 거리, 물체의 속도를 결정할 수 없게 된다. 데카르트의 공간 개념은 뉴턴의 역학 법칙을 설명하는 데 부적절했던 것이다. 뉴턴으로서는 물질세계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절대적 시간ㆍ공간 개념을 구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절대공간ㆍ절대시간의 개념과 그 의의


공간에만 주목했던 데카르트와 달리 뉴턴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개의 개념을 제시했다. 뉴턴의 시간 개념은 모든 외부의 사물과 운동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일정한 속도에 따라 연속적으로 흘러가는 무한한 시간이다. 한편 공간은 사물의 위치와 운동을 규정하는 무한하고 균질적인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은 물질세계와 무관하게 전제된 선험적인 존재로 물리적인 실체를 갖지 않고 무한하다. 그런 점에서 뉴턴이 상정한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다.


뉴턴은 자신이 상정한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을 다시 각각 둘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시간은 절대시간과 상대시간으로, 공간은 절대공간과 상대공간으로 구분된다.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은 상대시간과 상대공간의 근거가 되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신의 직관에 속한다. 반면 상대시간과 상대공간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수량화 가능한 개념이다. 상대시간이 절대시간처럼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1차원적인 개념이라면, 상대공간은 유클리드적인 3차원 공간이다. 인간은 상대시간을 일 년, 한 달, 하루, 혹은 24시간, 60분 60초 등으로 나누어 이용한다. 동시에 상대공간에는 좌표를 매기거나 부피ㆍ너비 등을 측량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시간ㆍ상대공간이 절대시간ㆍ절대공간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시간과 상대공간은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존재론적인 속성을 표현한 개념이다.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은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첫째,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은 그의 과학법칙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전제가 되었다. 뉴턴의 과학법칙 중 하나는 관성의 법칙이다. 관성이란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운동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고 하는 물체의 성질을 뜻한다. 뉴턴은 정지한 물체가 실제로 정지한 상태고 운동하는 물체는 실제로 운동하는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운동하는 물체와 정지한 물체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두 물체를 구별할 기준점이 필요했다. 그래서 뉴턴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면서 움직이지도, 변화하지도 않는 무한한 절대공간을 상정했다. 동시에 자신의 역학을 집대성하는 과정에서 케플러의 법칙처럼 지속적인 행성과 혜성의 운동이 법칙적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은 뉴턴의 운동법칙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물질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다. 유클리드적 공간을 상정한 뉴턴은 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물의 운동을 정확하게 서술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미ㆍ적분은 사물들의 가속운동을 규명하기 위해 발명되었는데, 그렇게 하려면 사물의 위치와 운동 시간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은 운동하는 사물이 특정한 시간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규정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 덕분에 물체의 운동에 대한 수학적 서술이 가능해졌다.


뉴턴의 시간과 공간 개념은 비단 근대 과학의 발전에 공헌했을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첫째, 공간을 자연법칙에 따라 측정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뉴턴이 상정한 공간은 움직이지 않고 균질하며 평평하고 직선적인 유클리드적 공간이다. 만약 뉴턴이 상정한 공간의 구조 위에 세계를 그린다면 <그림3>과 같은 세계가 그려질 것이다.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을 받아들이면, <그림3>과 같은 공간은 단지 관념 속에만 존재하지 아니라 외부에 객관적으로 실재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 공간을 구획하거나 정단할 수 있고, 공간을 자연법칙에 따라 측량하고 계산하며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유클리드적 공간 개념에 따라 그린 세계





둘째,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은 근대 철학의 인식론과 존재론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식론은 “지식의 본질·기원·한계 등에 관해 질문하는 철학적 연구 이론”이다. 이 주제는 유럽의 근대 철학에서 특히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인간(주체)이 외부의 세계(대상)에 대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가? 만일 외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식론에서 제기된 쟁점은 주로 이런 질문들이었다. 인식론에서 제기된 질문들은 존재론에 대한 논의도 파생시켰다. 인간이 외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면, 인식 대상인 외부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인식과 관념이 만들어낸 것인가?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은 인식론과 존재론에서 제기된 질문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다. 뉴턴은 변화하지 않는 객관적인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 시간과 공간에 포착되는 사물은 실제로 존재한다. 뉴턴은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 개념으로 외부 세계가 실재한다는 것을 정당화한 것이다. 동시에 그는 외부 세계를 특정한 시간과 공간으로 포착해 그것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고 탐구할 수 있는 인식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물론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에 한계가 없지는 않다. 가장 큰 문제점은 뉴턴이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을 실제로 증명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개념들은 뉴턴의 과학법칙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제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이 당시에 대단히 획기적이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이 이후 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그 의의를 가볍게 보기는 어렵다.






4. 뉴턴 이후 절대시간공간에 대한 비판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은 이후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 개념들은 다양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 비판들을 굳이 구분하자면 철학적 측면과 과학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라이프니츠와 칸트가 뉴턴의 시ㆍ공간을 철학적으로 비판한 대표적 인물이라면, 아인슈터인은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을 비판하며 새로운 과학적 설명을 내놓았다.


(1)철학적 비판
라이프니츠는 뉴턴의 절대시간ㆍ절대공간 개념을 완전히 부정했다. 그가 보기에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은 “엄청나게 큰 새장에다 아주 작은 파리 한 마리를 넣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인간이 사는 조그마한 세계에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의 무한성을 상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라이프니츠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은 뉴턴의 생각과 달리 상대적이다. 뉴턴은 시간과 공간이 외부 세계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실재한다고 보았지만, 라이프니츠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은 “사물이 생기는 순서의 결과로서 구성”되고, 공간은 “사물들이 신에 의해 창조되고 배치되는 과정 속에서 구성”된다. 라이프니츠에게 시간과 공간은 “실체가 아니라 사물이나 사건들 사이의 시ㆍ공간적 관계로부터 생겨나는 구조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건이 없으면 시간도 없어지고, 사물이 없으면 공간도 없어진다. 이 관점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사건과 사물이 생겨나면서 필연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시간과 공간 개념은 현존하는 세계가 무한히 많은 ‘가능 세계’ 가운데 신의 의도에 따라 선택된 것이라는 필연성에 기초한다.


반면, 칸트는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시간ㆍ공간 개념을 모두 비판했다. 그는 먼저 시간과 공간을 외부 세계에 앞서 존재하는 실체로 보는 뉴턴의 관점에 반대한다. 시ㆍ공간을 뉴턴처럼 정의하면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 외부 세계보다 먼저 존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턴은 ‘무한한 절대자’인 신의 존재를 상정했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신 역시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포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인과 관계가 불분명해진다. 칸트는 이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을 비판했다.


그러나 칸트가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을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뉴턴의 공간 개념을 옹호하면서 라이프니츠를 비판하기도 했다. 뉴턴을 옹호하는 칸트의 논리는 이런 식이다. ‘만약 우주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물이 장갑 한 짝이라면, 이 장갑이 오른손용이냐 왼손용이냐 하는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그런데 오른손용이든 왼손용이든 장갑의 각 부분들 사이의 공간적 관계는 동일하다.’ 칸트는 라이프니츠의 생각과 달리 실체와 실체 사이를 ‘공간적인 관계’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칸트가 뉴턴의 유클리드적인 공간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가 뉴턴이 내놓은 시간ㆍ공간을 완전히 거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칸트는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을 비판적으로 계승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실체’로 파악하지 않고 선험적인 ‘직관 형식’으로 정의했다. 칸트는 사물의 현상이 인간의 감각 기관에 비쳐서 인간이 그것을 인식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는 ‘감성’이 있기 때문에 감각 기관에 비친 사물의 현상을 인식할 수 있다.[각주:4] 이 감성에는 경험적 직관과 순수 직관이라는 두 형식이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식탁 위에 놓인 둥글고 붉은 열매를 보고서 ‘사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둥글다거나 붉다는 특징을 보고 ‘사과’라고 판단한 것은 지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만일 지성의 판단을 제거하면 사람은 둥글다거나 붉다는 특징만 인식하게 된다. 이때 사과의 개별적인 특징들은 경험적 직관을 통해 인식된다. 만일 다시 경험적인 측면을 제거하면 인간의 순수한 직관 형식만 남는데, 그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이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이 왜 순수한 직관 형식인지를 설명했다. 칸트가 보기에 시간과 공간은 결코 경험적인 개념이 아니다. 어떤 공간에 사물이 존재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공간이라는 형식이 없다면 사물이 인간에게 지각될 수 없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물은 시간을 전제해야만 표상될 수 있다. 인간은 특정한 시간에 포착된 사물의 현상만을 인식할 수 있다. 만일 사물의 현상에서 시간이 제거되면 인간은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그래서 칸트는 공간을 ‘필연적 표상’으로 규정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적인 개념으로 보는 뉴턴에 반대하고 그것을 선험적인 직관형식으로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칸트에게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을 통한 표상이었다.


(2)과학적 측면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은 근대 과학에서도 매우 중요했다. 뉴턴 이후 약 300년 동안 그의 고전 역학은 보편적인 과학법칙으로 받아들여졌다.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1차원적 시간과 유클리드적인 3차원 공간 개념 역시 그의 역학과 함께 통념이 되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은 날카로운 비판에 직면했다.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을 비판한 인물은 ‘상대성이론’을 제시한 아인슈타인이었다. 그의 상대성이론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구별된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뉴턴과 마찬가지로 유클리드 기하학을 사용했지만,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적용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한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데카르트와 뉴턴, 칸트가 공유했던 유클리드적 공간 자체가 부정된다. 예를 들어,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삼각형의 내각은 언제나 180°지만,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180°보다 작거나 커지게 된다.(그림4) 이런 공간은 유클리드 기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따라 그린 삼각형[ (1)내각의 합>180° / (2)내각의 합 < 180° / (3)내각의 합 = 180° ]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뉴턴과 다른 시간ㆍ공간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4차원적인 시간ㆍ공간 개념을 내놓았다. 아인슈타인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지도, 독립적이지도 않다. 시간과 공간은 강력한 중력장의 영향을 받으면 크게 변화한다. 공간이 휘어진다면, 시간은 느려진다. 뉴턴의 생각과 달리 시간과 공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5. 맺음말


뉴턴의 시간과 공간 개념은 어떻게 등장했을까? 그 개념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후대의 학자들은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을 어떻게 비판했는가? 지금까지 이 질문들을 중심으로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에 관해 살폈다. 이제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은 철저히 당대의 과학사적ㆍ철학사적인 맥락 속에서 등장했다. 뉴턴은 데카르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데카르트는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가지 실체를 규정했다. 물질이 특정한 공간을 차치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실체라면, 정신은 이성적인 사유 활동을 본질로 하는 실체다. 정신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물질과 다르다. 데카르트는 공간이 물질과 정신 중 물질에 속한다고 보았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물질이 곧 공간이고 공간이 곧 물질이다. 이때의 공간은 유클리드적 공간이며 분할 가능한 공간이다.데카르트가 공간을 수학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것도 그러한 특성 때문이다.


뉴턴은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역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공간 개념까지 수용하지는 않았다. 사물과 운동에 관한 뉴턴의 생각이 데카르트와 달랐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물체가 그것과 직접 접촉하며 정지하고 있다고 보이는 다른 물체의 근처에서 또 다른 물체의 근처로 이동하는 것”을 운동으로 보았지만, 뉴턴은 그것을 “어느 고유한 위치에서 다른 고유한 위치로의 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뉴턴은 사물의 이동 과정에서 생가는 운동의 변화를 명확히 밝히려고 했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공간 개념과 운동 개념을 받아들이면 뉴턴이 생각하는 운동 개념을 설명할 수 없었다. 뉴턴으로서는 자신의 운동 개념을 정당화하기 위한 전제로 시간과 공간 개념을 새롭게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턴에 따르면, 시간은 모든 외부 사물과 운동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일정한 속도에 따라 연속적으로 무한히 흘러간다. 공간은 사물의 위치와 운동을 규정하는 무한하고 균질적인 개념이다. 뉴턴이 생각한 시간과 공간은 물질세계와 무관한 선험적인 개념으로 물리적 실체를 갖지 않고 무한하다. 그런 점에서 뉴턴의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다. 그는 이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을 다시 절대시간ㆍ절대공간과 상대시간ㆍ상대공간으로 구분했다. 전자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신의 직관에 속하지만, 후자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수량화 가능한 개념이다.


뉴턴의 절대적인 시간ㆍ공간 개념은 약 300년 동안 통념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이 후대의 다른 철학자와 과학자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라이프니츠, 칸트, 아인슈타인 등은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을 치밀하게 비판했다. 라이프니츠는 뉴턴의 절대시간ㆍ공간 개념을 완전히 거부하고 상대적인 시간ㆍ공간 개념을 주장했다. 그에게 시간과 공간은 “실체가 아니라 사물이나 사건들 사이의 시공간적 관계로부터 생겨나는 구조물”이었다. 라이프니츠의 시간과 공간 개념은 인간이 사는 세계가 무한히 많은 ‘가능 세계’ 중에서 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필연성에 기초한다. 한편, 칸트는 유클리드 기하학에 근거해 공간을 이해하는 뉴턴의 관점을 지지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적인 개념으로 파악하는 데는 반대한다. 대신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인간의 인식 문제로 전환해 선험적 직관형식으로 규정했다. 한편,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시하면서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을 완전히 부정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결코 절대적이지도 독립적이지도 않다.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며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결국 20세기에 들어서 뉴턴의 절대적인 시간ㆍ공간 개념은 부정되었다. 그러나 뉴턴의 과학사적ㆍ철학사적 기여를 폄훼할 수는 없다. 비록 뉴턴 이후 많은 학자들이 그를 비판했지만, 그 비판 자체가 뉴턴의 사상사적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후대의 학자들은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학문적 틀을 세워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뉴턴이 후대에 미친 과학적ㆍ철학적 영향력은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뉴턴의 절대시간ㆍ절대공간은 과학사적 측면에서, 철학사적 측면에서 어떤 의의가 있는가? 과학사적인 측면에서는 뉴턴의 역학과 연관지어 그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은 뉴턴의 운동법칙이 성립하는 데 중요한 전제가 되었고, 사물의 운동에 관한 수학적인 서술을 가능하게 했다. 뉴턴의 시간ㆍ공간 개념은 근대 철학의 인식론과 존재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을 통해 인간이 사는 물질세계가 실재한다는 생각을 정당화했다. 물질세계는 인간의 인식과 무관하게 실재하기 때문에 인간은 그 객관적인 세계를 자연법칙에 따라 측정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뉴턴은 외부 세계의 현상을 탐구할 수 있는 인식론적ㆍ존재론적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추기>
공부한 내용을 제 나름대로 이해한 만큼 정리해서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 혹 잘못된 내용이나 서술상의 오류를 지적해주시면 겸허히 듣고 고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한 문헌
김성환, 2008, 『17세기 자연 철학 : 운동학 기계론에서 동력학 기계론으로』, 그린비
데카르트, 이현복 역, 1997, 『성찰』, 문예출판사
이중원 외, 2004, 『서양근대철학의 열 가지 쟁점』, 창비
조앤 베이커, 김명남 역, 2010, 『물리와 함께하는 50일』, 북로드
진은영, 2004,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그린비
팀 크레인 외, 강유원 외 역, 2008, 『철학, 더 나은 삶을 위한 사유의 기술』, 유토피아
홍성욱, 2004, 『뉴턴과 아인슈타인, 우리가 몰랐던 천재들의 창조성』, 창비
강동수, 2010, 「근대의 자연 공간과 인식 공간」, 『철학연구』 116
백종현, 2000, 「뉴턴과 칸트의 시간」, 『과학사상』 32
양경은, 2009, 「고전역학에서의 시공간의 본질에 대한 연구」, 『대한철학회논문집』, 112








  1. 본래 과학과 철학은 두 영역이 본격적으로 분리된 17세기 이전까지 모두 ‘자연철학’ 또는 ‘자연학’의 범주에 속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편의상 과학과 철학을 구분해서 살펴볼 것이다. [본문으로]
  2. 물론 이후 논증에서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물질과 정신이 서로 구분된다는 관점에는 변함이 없다. [본문으로]
  3. 데카르트에게 관성이라는 것은 신이 부여한 것이었다. 즉, 신이 물질에 운동량을 부여하면, 물질은 신이 부여한 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뉴턴에게 ‘힘(Force)'이 운동 변화 혹은 가속도의 원인이었던데 비해, 데카르트의 힘은 사물이 자신의 상태를 지속하고자 외부 충돌에 저항하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 관성은 신과 관련되어 있었다. [본문으로]
  4. 인간은 사물 그 자체(‘물자체’)가 어떠한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 그는 진리를 대상 그 자체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칸트가 스스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라고 한 것은 이러한 발상을 두고 한 말이다.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