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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조선시대 기록 읽기

허균 - 유재론(遺才論)

by 衍坡 2018. 4. 14.

유재론(遺才論)


허균



유재론 원문



爲國家者, 所與共理天職, 非才莫可也. 天之生才, 原爲一代之用, 而其生之也, 不以貴望, 而豐其賦, 不以側陋, 而嗇其稟, 故古先哲辟知其然也, 或求之於草野之中, 或拔之於行伍, 或擢於降虜敗亡之將, 或擧賊, 或用莞庫士. 用之者咸適其宜, 而見用者亦各展其才, 國以蒙福, 而治之日隆, 用此道也.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왕과 함께 하늘이 내린 직분을 다스리는 이들이니 인재가 아니면 안 된다. 하늘이 인재를 내는 것은 본래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해서다. 그래서 인재를 낼 때 귀하다는 이유로 그 타고난 재능을 풍부하게 하지 않고, 미천하다는 이유로 타고난 재능를 인색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옛날의 명철한 임금은 그러한 바를 알아서 혹은 초야에서 인재를 구하기도 했고, 혹은 병졸 중에서 인재를 선발하기도 했으며, 혹은 항복한 포로나 패전한 장수 중에서 인재를 발탁하기도 했다. 혹은 도적을 등용하기도 하고, 혹은 창고지기를 기용하기도 했다. 등용한 자는 모두 소임에 합당했고 등용된 자 역시 각기 그 재주를 펼쳤다. 국가가 복을 입어 다스림이 날로 융성해졌던 것도 이 도를 썼기 때문이다.


ㆍ貴望(귀망): 귀함

ㆍ哲辟(철벽): 어진 임금, 명철한 임금

ㆍ莞庫士(완고사): 창고지기

ㆍ蒙福(몽복): 복을 받다, 복을 입다



以天下之大, 猶慮其才之或遺, 兢兢然側席而思, 據饋而歎. 奈何山林草澤, 懷寶不售者比比, 而英俊沈於下僚, 卒不得試其抱負者, 亦多有之? 信乎才之難悉得, 而用之亦難盡也. 

천하의 큰 나라를 가지고도 혹시 인재가 버려질까 전전긍긍 누워서나 앉아서나 생각하고 밥을 먹다가도 탄식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산림과 초택(草澤)에 보물과 같은 뜻을 품고도 등용되지 못하는 자가 흔하고, 영특하고 빼어난 인재 중에 하급 관료에 침체하여 끝내 포부를 시험하지 못하는 자가 많은가? 진실로 인재를 모두 알아내기 어렵고, 모두 서용하기도 어렵다.



我國地褊, 人才罕出, 蓋自昔而患之矣. 入我朝, 用人之途尤狹, 非世胄華望, 不得通顯仕, 而巖穴草茆之士, 則雖有奇才, 抑鬱而不之用, 非科目進身, 不得躡高位, 而雖德業茂著者, 終不躋卿相. 天之賦才爾均也, 而以世胄科目限之, 宜乎常病其乏才.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인재가 드물게 나와서 옛날부터 근심했다. 우리 왕조에 들어서는 사람을 기용하는 길이 더욱 좁아졌다. 대대로 녹을 받는 명망 있는 집안이 아니면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없어서 석굴이나 초가에 사는 선비는 비록 특별한 재주가 있어도 억울하게 등용되지 못한다. 과거 출신이 아니면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없어서 비록 덕업(德業)이 훌륭한 자라고 해도 끝내 재상에 오르지 못한다. 하늘이 재주를 부여함은 균등한데도 대대로 녹을 받는 집안과 과거 출신으로만 한정하니 항상 인재 부족에 괴로워하는 것이 마땅하다.


ㆍ世胄(세주): 대대로 벼슬하여 녹을 받는 집안

ㆍ華望(화망): 명망 있는 경화거족

ㆍ巖穴(암혈): 석굴

ㆍ草茆(초묘): 초가집

ㆍ茂著(무저): 크게 드러남. 훌륭함.



古今之遠且久, 天下之廣, 未聞有孼出而棄其賢, 母改適而不用其才者. 我國則不然, 母賤與改適者之子孫, 俱不齒仕路. 以區區之國, 介於兩虜之間, 猶恐才之不爲我用, 或不卜其濟事, 乃反自塞其路, 而自歎曰: “無才! 無才!” 何異適越北轅? 而不可使聞於隣國矣.

옛날과 지금은 시대가 멀고 오래되었으며 천하는 넓지만, 서출이라 하여 어진 사람을 버리고 어머니가 개가했다 하여 재능 있는 사람을 기용하지 않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서 어머니가 천한 자와 개가(改嫁)한 자의 자손은 모두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변변찮은 나라로서 두 오랑캐 사이에 끼어있으므로 인재가 우리에게 쓰이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하더라도 혹 나랏일을 구제할지 점칠 수 없다. 그런데도 도리어 그 길을 막고는 스스로 탄식하여 “인재가 없구나! 인재가 없구나!”하고 말하니, 월나라로 가려고 하면서 북쪽으로 수레를 끄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웃나라에 알려지게 할 수 없는 일이다.


ㆍ改適(개적): 시집 갔던 여자가 다시 다른 남자에게 시집 감 = 개가(改嫁)

ㆍ轅(원): 끌채, 수레



匹夫匹婦含冤, 而天爲之感傷, 矧怨夫曠女半其國, 而欲致和氣者, 亦難矣. 古之賢才, 多出於側微, 使當世用我之法, 是范文正無相業, 而陳瓘、潘良貴 不得爲直臣, 司馬穰苴、衛靑之將, 王符之文, 卒不見用於世否?

한 사내와 한 여인이 원통함을 품어도 하늘은 그들을 위하여 슬퍼하는데 하물며 원한을 품은 남자와 남편 없는 여자가 나라의 절반이니 화목한 분위기를 이루는 것은 역시 어려울 것이다. 옛날의 어진 인재는 미천한 가운데서 많이 나왔다. 당대의 세상에 우리의 법을 쓰게 했다면, 범문정(范文正)은 정승으로서의 업적이 없었을 것이고, 진관(陳瓘)과 반량귀(潘良貴)는 강직한 신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며, 사마양저(司馬穰苴)ㆍ위청(衛靑) 같은 장수와 왕부(王符)의 문장은 끝내 세상에 쓰이지 못했을 것 아닌가?


ㆍ感傷(감상): 하찮은 일에도 쓸쓸하고 슬퍼져서 마음이 상함. 또는 그런 마음.



天之生也而人棄之, 是逆天也. 逆天而能祈天永命者, 未之有也. 爲國者, 其奉天而行之, 則景命亦可以迓續也.

하늘이 냈는데 사람이 버린다면 이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짓이다. 하늘을 거스르고도 나라를 길이 유지해달라고 바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하늘의 뜻을 받들어 행한다면 천명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ㆍ景命(경명): 하늘이 왕위를 수여하는 명

ㆍ迓續(아속): 끊이지 아니하게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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