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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구제4

이른바 ‘세조구제론’ 다시 보기 이른바 ‘세조구제론’ 다시 보기 2020.01.17. 1. 들어가며: 고려-몽골 관계사 연구의 쟁점 고려와 몽골은 오랜 전쟁 끝에 강화를 맺었다. 1259년(고종 46)의 일이었다. 이로부터 시작된 양국의 관계는 13세기 후반까지 약 100여 년간 이어졌다. 그런데 고려-몽골 관계는 몽골 복속기 이전에 고려가 다른 중국 왕조들과 이어갔던 외교 방식과는 사뭇 달랐다. 예를 들어 고려 국왕이 몽골 황실과 통혼하여 부마의 작위를 받는가 하면, 몽골 황제의 의사에 따라 고려 국왕의 폐위와 즉위가 결정되기도 했다. 고려 국왕은 몽골 황제에게 친조(親朝)해서 외교 현안을 해소하기도 하고, 몽골 황실의 권위를 등에 업은 ‘부원배’(附元輩)가 고려 안팎에서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왕의 권위를 위협하기도 했다.. 2020. 2. 8.
「공민왕 5년(1356) ‘반원개혁’의 재검토」를 읽고 「공민왕 5년(1356) ‘반원개혁’의 재검토」를 읽고 ( 이강한, 2009, 「공민왕 5년(1356) ‘反元改革’의 재검토」, 『대동문화연구』 65 ) 2019.05.04 ○ 총론: 지금껏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반원’의 개념이 그리 엄밀하지 않다는 점, 고려후기 지배층이 매우 복잡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 공민왕이 추진한 개혁에서 국내정치의 맥락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매우 유익했다. 다만 ‘반원’이라는 틀을 배제하고 공민왕의 개혁을 분석하다보니 몽골(원)이라는 변수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공민왕이 ‘세조구제’를 회복ㆍ유지하려고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몽골(원)은 여전히 고려의 정치에서 중요한 변수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몽골(원)이 매우 수동적.. 2019. 5. 4.
고려-몽골 관계에서 보이는 책봉-조공관계의 탐색 이익주, 「고려-몽골 관계에서 보이는 책봉-조공관계의 탐색」(『13~14세기 고려-몽골관계 탐구』, 동북아역사재단, 2011) 1. 머리말 1259년부터 1356년까지 약 100년에 가까운 시기를 ‘원 간섭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를 ‘원 간섭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원의 간섭을 받았으나 국가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지배’가 아닌 ‘간섭’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관점에 동의하는 저자는 고려-몽골(원) 관계를 구조적으로 파악하여 ‘세조구제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고려와 몽골(원) 관계의 원칙인 세조구제는 책봉-조공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원의 간섭은 책봉-조공관계의 한 시기적 양상이었다. 이런 관점은 몽골사 연구자와 모리히라 마사히코의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2000년대.. 2018. 4. 20.
고려 ‧ 원관계의 구조에 대한 연구 이익주, 「고려 ‧ 원관계의 구조에 대한 연구 ―소위 ‘세조구제’의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사론』 36, 1996) 1. 논문의 목적 이익주의 논문은 고려 원종과 충렬왕 때의 고려-몽골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소위 ‘세조구제’의 내용과 성격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고려-몽골의 형식과 특징에 대해 살펴보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이는 “元代史의 전개에 있어서 世祖代는 원의 모든 제도가 정비되는 시기로, 고려와의 관계를 비롯한 외교정책 역시 이 때 일정한 원칙을 가지면서 정립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세조구제’가 성립되는 과정 및 그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고려 ‧ 원관계의 구조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2. 원종대 고려 ‧ 원관계의 전개 저자의 말에 따라 고려와 몽골이 강화를 .. 2018.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