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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명철보신

‘기레기’가 판치는 세상

by 衍坡 2018. 6. 1.

‘기레기’가 판치는 세상

 

2018.06.01.

 

 

언론의 사회적 책임은 무겁다. 그들에게는 국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책임이 있다. 언론은 그래서 시민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하지만 막상 ‘기레기’라는 조롱이 난무하는 현실을 보면 한국 언론이 시민의 신뢰를 얻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도대체 왜 시민들은 언론을 믿지 않는가? 추측컨대 언론이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론 그 자체가 권력인데 도대체 누가 누구를 견제한다는 말인가? 국가 권력과 자본 권력에 종속된 언론이 도대체 얼마나 공정할 수 있는가? 언론은 언론계 외부의 비판에 얼마나 열린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으로 수렴된다. 언론은 과연 스스로 얼마나 엄격한 비판과 성찰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가?

 

 

'기레기'에 항의하는 시민들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언론을 질타하는 시민들이 조선일보사 앞에 모였다.

(출처: 오마이뉴스)

 

 

언론업계 종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언론이 자신들에게 몹시 관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품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에 벌어졌던 ‘박철상 사태’다. 박철상은 주식 투자로 400억을 모았다고 알려져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그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결정적 계기는 2013년경에 있었던 언론 보도였다. 그때 박철상에게는 ‘청년 버핏’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진실이 드러나면서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주식투자로 큰 재산을 모았다는 박철상의 이야기는 허구로 밝혀졌다. 그를 칭송하던 사람들은 완전히 태도를 바꾸어 그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언론 역시 박철상의 실체를 알리고 비판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자신들의 책임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철상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동안 언론은 스스로 면죄부를 내렸다.

 

누군가는 반문할 수도 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잘못이지 언론이 무슨 잘못이 있는가? 하지만 박철상 사태의 본질적 책임은 명백히 언론에게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거짓말쟁이가 있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화제의 인물이 되는 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박철상이 유명해진 것이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청년 버핏’이라는 그의 명성은 수년 동안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동안 언론은 무엇을 했는가? 주식으로 400억을 벌었다는 박철상의 주장이 거짓임을 밝혀낸 신경준 한 사람이 품을 수 있는 의심을 언론은 품지 않았던 것인가? 그동안 박철상이 떠들고 다닌 거짓말들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여기저기서 제기되었다. 그런데 언론은 왜 박철상의 실체를 밝히지 못했을까? 밝히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외면했던 것일까? 어느 쪽이든 언론이 박철상 사건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은 책임 있는 자세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박철상에 대한 언론 보도

▲박철상을 보도한 언론 기사들

 

 

박철상의 거짓말이 들통 난 이후에도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기사를 읽다보면 실제로 한국 언론이 대단히 무책임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예컨대 남북정상회담 직후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실린 문정인의 글을 두고 한국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보면 정말 나름대로 취재를 해서 기사를 내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문정인이 『포린 어페어즈』에 글을 기고했다는 사실과 그 내용을 처음 보도한 언론사는 세계일보였다. 2018년 5월 1일 세계일보는 <문정인 “평화협정 후 주한미군 주둔 정당화 어렵다”>라는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이후 다른 언론사에서는 세계일보와 거의 흡사한 기사를 작성해 내보냈다. 일단 각 언론사가 낸 기사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언론사  기사 제목  보도 날짜 
세계일보  [단독] 문정인 “평화협정 후 주한미군 주둔 정당화 어렵다”   2018-05-01
경향신문  문정인 “평화협정 후엔 주한미군 정당화 어려울 것”  〃
중앙일보  문정인 “남북 평화협정 체결뒤 주한미군 주둔 정당화 어렵다”  〃
조선일보  문정인 "남북 평화협정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 정당화 어렵다"  〃
한국일보  문정인 “평화협정 이후 주한미군 주둔 정당화 어렵다”  〃
국민일보  “평화협정 체결되면 주한미군 정당화 어려울 것” 문정인 발언 논란  〃

 

 

 

 

표를 보면 문정인의 글을 소개한 기사들의 제목은 거의 똑같다. 제목 등을 포함해서 총 1788개의 단어로 구성된 글에서 한국 언론이 주목한 것은 고작 30개의 단어를 포함한 두 문장뿐이다. “What will happen to U.S. forces in South Korea if a peace treaty is signed? It will be difficult to justify their continuing presence in South Korea after its adoption.”[각주:1] 기사의 내용이 대동소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른 언론사가 세계일보의 기사를 베껴서 보도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한편, 디스패치처럼 독자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아무런 가치 없는 기사를 내는 언론사도 있다. 디스패치는 2018년 5월 2일 <“저는 구원받았습니다”…박진영, ‘구원파’ 전도 포착>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기사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글이다. 디스패치가 낸 기사의 문제점은 이미 김어준이 5월 3일에 방송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정확하게 지적한 바 있다.

 

“<박진영, ‘구원파’ 전도 포착> 어제자 디스패치의 단독 기사입니다. ‘박진영 씨가 구원파다.’ 디스패치의 주장인데요. 그래서요? 박진영이 구원파든 아니든 우리 사회가 박진영 씨 개인의 종교관을 왜 알아야 하는 겁니까? 디스패치는 무슨 자격으로 개인의 종교관을 따지고 기사화 하는 거죠? 박진영 개인의 교리해석이 어떤 이유로 사회적 의제가 되는 건가요? 기사 후반은 청해진 해운의 이상한 자금 운영에 대해 말합니다. 그 자금 운영이 세월호 침몰 원인과 직접 관계가 있다는 증언, 증거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그럼 그걸 제시하던지요. 더 황당한 건 박진영의 종교관과 청해진 자금운영을 왜 한 기사에서 쓰고 있는 거죠? 박진영이 그 자금 운영에 개입했나요? 아니면 청해진, 혹은 청해진의 주주인가요? 이 기사의 의도는 뭔가, 도대체.”

 

김어준의 비판은 매우 타당하다. 일단 디스패치의 기사에는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의 주제가 담겨 있다. ①박진영은 구원파다. ②변기춘은 종교를 사업에 이용한다. ③청해진 해운의 기업 운영은 비정상적이다. 한 편의 글에는 일관된 주제가 있어야 한다는 글쓰기의 기본원칙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다. 디스패치는 왜 굳이 이런 산만한 기사를 써서 보도했을까? 디스패치가 정말로 다루고 싶었던 내용은 청해진 해운의 이상한 자금 운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청해진해운의 비정상적인 자금 운영을 입증하는 데 저토록 심혈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 그러면서도 제목을 굳이 “박진영, ‘구원파’ 전도 포착”으로 정하고 박진영의 신앙을 문제 삼았다. 아마도 청해진의 자금 운영보다 박진영이 구원파라는 사실이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훨씬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디스패치의 박진영 종교 보도

▲디스패치의 기사 <

“저는 구원받았습니다”…박진영, ‘구원파’ 전도 포착

>

 

 

물론 언론이 박진영의 신앙을 문제 삼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박진영이 자신의 신앙을 이용해 타인에게 해를 입히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기사를 아무리 읽어도 박진영과 청해진 해운의 비정상적 자금 운영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변기춘의 ‘종교 사업’에 박진영이 어떻게 가담했는지도 알 수 없다. 단지 몇 가지 단편적인 발언만 가지고 두 사람의 세계관이 비슷하다는 수준 낮은 이야기만 볼 수 있다. 따라서 디스패치의 문제제기는 전혀 정당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디스패치는 그럼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박진영의 신앙을 문제 삼았다. 그런 점에서 디스패치의 보도는 독자의 관심을 끌어내 조회 수를 늘리려는 얄팍한 협잡질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원칙과 양심조차 갖추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세 가지 사례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보도에 책임지지 않는 언론. 다른 언론사의 취재 내용을 베껴 같은 기사를 양산해내는 언론.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사를 한낱 가십으로 가득 채우고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발행하는 언론. 그런 언론이 ‘공적인 가치’를 지향한다고 말해도 좋을까? 국가 권력과 자본의 힘을 비판하고 견제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언론 자신은 스스로에게 얼마나 엄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저널리즘’은 정말 중요한 가치일까? 저널리즘 따위는 안중에서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이미 언론의 책임과 사명은 저버리고 ‘생계형 언론’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물론 몇 가지 사례만으로 언론의 현실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여전히 치열하게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언론인이 많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다룬 세 가지 사례 역시 오늘날 언론의 모습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언론은 오늘날 제 본연의 역할을 다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시민사회에 정말 필요한 존재인가? 의구심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1.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평화협정이 채택하고 나면 그들이 남한에 계속 주둔하는 것을 정당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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