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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명철보신

MBC 계약직 아나운서 고용 분쟁에 관한 단상

by 衍坡 2019. 7. 22.

MBC 계약직 아나운서 고용 분쟁에 관한 단상



2019.07.22.



1. MBC 아나운서는 왜 계약직 아나운서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가?


“이제 어떻게든 MBC에 다시 들어와야겠다며 몸부림치는 너희의 모습이, 더이상 안쓰럽게만 느껴지지는 않는구나.” MBC 아나운서 손정은 씨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에 올린 긴 글의 한 구절이다. 그는 밤새 고민한 끝에 어렵게 글을 썼다고 한다. 수신자는 MBC와 고용 문제를 두고 분쟁을 겪고 있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이었다. 그들이 MBC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위반’으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신고한 직후의 일이었다. 손정은 아나운서의 편지는 기사화되어 빠르게 퍼져나갔다. 네티즌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편에서는 계약직 아나운서에게, 다른 한편에서는 손정은 아나운서에게 거친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 글의 핵심을 제대로 독해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손정은 씨의 글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라는 맥락에서 독해했다. 하지만 그것은 손정은 아나운서의 본의와 거리가 멀다. 글을 쓴 그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사태의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논쟁 중인 계약직 아나운서 고용 문제의 발단은 박근혜 정부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던 MBC는 경영진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아나운서들을 업무에서 배제했다. 그 자리를 대신한 이들은 2016년과 2017년에 MBC에서 채용한 ‘계약직 아나운서’다. 물론 아나운서를 ‘계약직’으로 뽑는 상식 밖의 행동에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있었다. 고용 문제를 미끼로 직원을 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통제하지 못하더라도 손쉽게 해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MBC 사장이 교체되고 계약직 아나운서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서 발생했다. 2016~2017년에 계약직 아나운서를 채용할 당시 MBC는 ‘평가에 따라 계약 연장 가능’, ‘향후 MBC 내부 기준에 따라 고용 형태 변경 가능’이라는 내용을 채용 공고에 기재했다. 하지만 사장이 바뀐 MBC는 그들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계약직 아나운서는 ‘계약 갱신 기대권’을 들고 나오며 MBC의 결정에 반발했다. 결국 양쪽의 갈등은 법정 소송으로 이어졌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MBC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위반’으로 신고한 것도 그런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간의 상황을 고려하면, 손정은 씨가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비판하는 이유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손정은 씨는 단순히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비판하는 대상이 결코 ‘평범한’ 계약직 직원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박근혜 정권에 부역하던 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채용한 사람들이다. 손정은 씨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본인의 신념을 이유로 제작 거부에 참여”했던 “같은 처지였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달랐다. 그래서 “진정으로 약자의 터전에 선 자”가 아니었다. 손정은 씨로서는 그런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회사에 남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손정은 씨가 느끼는 불편함의 본질은 무엇일까? 도대체 그는 왜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주장을 용납하기 어려웠을까? 그 답은 또 다른 MBC 아나운서인 전종환 씨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각주:1]



언젠가 또다시 쟁의는 발생할 거고, 사측은 노동자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대체 인력을 채용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 앞으로도 쟁의가 생기면 사측은 대체인력을 구할 것이고, 대체인력은 사측의 회유의 말을 근거로 ‘갱신기대’를 주장할 겁니다. 역사는 되풀이되기 마련이니까요. 저희는 이런 상황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갱신기대권’을 쉽게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비정규직 아나운서 개개인을 인정하지 못하게는 게 아니라, 박근혜 정권 당시 언론 탄압 과정에서 나온 말들이 ‘갱신기대권’으로 인정받는 상황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 출처: 전종환 아나운서 개인 SNS



전종환 씨의 생각은 간단하다. ‘정권 부역자가 채용했던 이들을 받아들인다면 추후에 사측은 또 똑같은 방식으로 노동자를 탄압할 것이다. 정권 부역자를 위해 일했던 계약직 직원을 이번에 정규직화한다면, 추후에도 정권 부역자를 위해 일하면서 계약갱신기대권을 운운할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전종환 씨는 자신의 생각을 매우 완곡하게 표현한다. “비정규직 아나운서 개개인을 인정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에는 현재 MBC와 고용 분쟁을 겪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전직 경영진이 이용한 사람들이자 전직 경영진을 위해 일한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들이 ‘대체인력’이었음을 입증하려 애쓰는 논설이야말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손정은 씨와 전종환 씨가 계약직 아나운서를 채용하는 데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두 사람이 보기에 계약직 아나운서는 ‘김장겸 일당의 하수인’이기 때문이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김장겸 일당에게 부역해놓고도 염치없이 정규직이 되어 MBC에 남으려 하니 용납할 수 없다.’ 이 생각이야말로 손정은 씨와 전종환 씨가 계약직 아나운서를 비판하는 가장 솔직하고 본질적인 이유다. 손정은 씨는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기도 했”던 계약직 아나운서가 “안쓰럽고 기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을 채용한 이들이 김장겸 일당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한다면, 손정은 씨는 김장겸 일당에 대한 감정을 계약직 아나운서 고용 문제에 투영하고 있다. 그것은 전종환 씨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박근혜 정권 당시 언론 탄압 과정에서 나온 말들이 ‘갱신기대권’으로 인정받는 상황을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을 고려한다면, 두 사람은 전 경영진에 대한 반감을 계약직 아나운서에 투영하고 그것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다. ‘계약직 아나운서가 김장겸 일당 아래에서 일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제도와 절차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손정은 씨는 실로 이렇게 썼다. “가처분 상태이니 만큼 회사에 출근하고, 급여를 지급해주며, 법의 판단을 기다려보자는 회사를 너희는 직장 괴롭힘 1호로 지목하고 언론플레이에 나섰더구나.” 계약직 아나운서가 제도와 절차를 무시하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읽힐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설령 그것이 본의라고 하더라도 설득력은 높지 않다. 계약직 아나운서와 고용 분쟁이 발생한 근본적 이유는 MBC 자체가 제대로 된 제도와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변호사 박훈 씨의 지적은 경청할 만 하다.


이른바 전문계약직 아나운서로 2016. 4과 2017. 5.에 입사한 노동자들은 채용공고에 모두 “평가에 따라 계약 연장 가능, 향후 평가 등 회사 내부 기준에 따라 고용형태 변경가능” 이라고 적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경영정책상으로도 이들에 대한 고용형태를 변경한다는 문서가 존재했다.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갱신기대권”을 인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업무 평가는 전무했다. “평가에 따라 계약 연장 가능, 고용형태 변경”이 가능했으나 그 전제가 되는 이들에 대한 평가가 없었다.

* 출처: 박훈 변호사 개인 SNS



이런 사정을 고려한다면, MBC 자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계약직 아나운서가 제도와 절차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MBC

▲MBC의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MBC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위반으로 신고한 날 연 기자회견이다.(사진 출처: 미디어오늘)





2. MBC 측의 입장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MBC의 두 아나운서가 계약직 아나운서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과 상처 때문이다. 그래서 전종환 씨는 이렇게 말한다. “두렵습니다. 언젠가 또다시 쟁의는 발생할 거고, 사측은 노동자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대체 인력을 채용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 충성하던 전 경영진의 악행을 생각하면, 그들의 입장에도 이해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그러나 계약직 아나운서 고용문제는 MBC 구성원 개개인의 경험과 구분해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해당 사안은 기본적으로 MBC라는 ‘법인’과 계약직 아나운서들 사이의 고용 분쟁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도에서 보면 MBC의 입장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계약직 고용 분쟁에서 현재 MBC가 보여주는 태도는 매우 무책임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것은 계약직 아나운서가 ‘대체인력’이었는지 여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설령 MBC 아나운서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계약직 아나운서가 대체인력이었다고 한들 MBC의 태도가 매우 무책임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계약직 아나운서 채용 당시 MBC는 분명히 채용 공고에 ‘평가에 따라 계약 연장 가능’, ‘향후 MBC 내부 기준에 따라 고용 형태 변경 가능’이라고 기재했다. 손정은 씨에 따르면, 신동호 전 국장은 계약직 아나운서를 마치 정규직화해줄 것처럼 약속했던 듯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계약 아나운서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수용한 근거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르면, “16·17 사번 아나운서들이 ‘신입’ 아나운서로 불리며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했다. 그들은 “정규직 아나운서와 유사한 사내 교육 과정을 거친 후 실제 방송 업무에 투입”되었고, 정규직 아나운서와 같은 “급여 및 복리후생”을 보장받았다. MBC가 “특별채용 기준이나 합격 예상 인원 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MBC는 자신들의 결정과 행동에 어떤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준 적이 없다. 계약직 아나운서에게 회사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책임을 지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 그보다는 MBC 자신의 책임을 계약직 아나운서에게 떠넘기는 행위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어쩌면 손정은 씨처럼 ‘계약직 아나운서를 채용한 전 경영진이었으니 그들에게 항의하라’고 답할 수도 있다. “그에게도 물어보렴. 그때 왜 쓸데없는 희망을 주셨냐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 왜 하신 거냐고.” 하지만 이 주장은 다소 생뚱맞다.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계약직 아나운서 채용 과정은 명백히 MBC라는 ‘법인’의 권한으로 이루어졌다. 직원을 채용하고 관리한 것도 신동호라는 개인이 아니라 ‘아나운서국 국장’이라는 직위가 지닌 공적인 권한에 의거한 행위였다.[각주:2] 채용 과정과 그 결과가 법과 사규에 위배되지 않는 한, MBC가 채용한 계약직 아나운서에 대한 책임은 MBC라는 법인체에 있다. 김장겸이나 신동호 같은 개개인에게는 단지 도의적인 책임만 물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계약직 아나운서에게 전 경영진에게 따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물론 계약직 고용 연장을 거부한 MBC를 전종환 씨처럼 옹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계약직들에게 어떤 회사가 ‘너희들은 2년 뒤 나갈 테니 그 때까지만 열심히 해’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내 말만 잘 들으면 정규직 될 거야. 열심히 해. 이 기회에 자리 잡아야지.’ 아마도 이런 말을 하겠지요. 그리고 실제 MBC에서도 이런 말들이 공공연히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쟁의가 생기면 사측은 대체인력을 구할 것이고, 대체인력은 사측의 회유의 말을 근거로 ‘갱신기대’를 주장할 겁니다. 역사는 되풀이되기 마련이니까요. 저희는 이런 상황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갱신기대권’을 쉽게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 출처: 전종환 아나운서 개인 SNS



전종환 씨가 인정하듯이, 고용주가 계약직에게 희망을 섞인 말로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그것을 이유로 계약갱신기대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더 따져볼 여지가 있지만 일단 ‘사실’로 받아들이자. 하지만 두 가지 사실로부터 계약갱신기대권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도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전종환 씨의 의견은 논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반문할 수도 있다. 같은 사실로부터 계약갱신기대권이 성립한다는 결론은 도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계약직 아나운서에게 계약갱신기대권이 성립한다는 판단은 단순히 ‘정규직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회사 측의 공언(空言)만 가지고 내린 결론이 아니다. 회사 측이 계약직 아나운서들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대우했는가 하는 구체적인 문제들이 충분하게 고려된 판단이다. 이 점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판단을 살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설령 전종환 씨의 논리가 성립한다고 인정하더라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계약갱신기대권’을 인정하는 것과 사측이 노동자를 탄압하려고 대체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가? 전종환 씨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계약직 아나운서를 정규직화하면 계약갱신기대권을 인정하게 된다. 계약갱신기대권을 인정하면 사측은 노동자의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 계약직 근로자를 채용할 것이다. 그렇게 채용된 계약직 근로자는 계약갱신기대권을 통해 정규직으로 회사에 남게 될 것이다.’ 그의 생각을 아무리 호의적으로 읽어도 동의하기 어렵다. 회사가 노동자 탄압을 위해 계약직 직원을 채용하는 것은 계약갱신기대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김장겸이나 신동호가 계약갱신기대권을 고려하면서 계약직 아나운서를 채용한 것은 아니다. 계약갱신기대권을 인정하지 않아도 회사는 얼마든지 계약직을 채용할 수 있고, 그들을 정규직으로 만들 수도 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MBC의 파행은 계약갱신기대권이 아니라 MBC 안팎의 '정치적' 조건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계약갱신기대권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같은 파행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전종환 씨가 우려하는 상황과 계약갱신기대권은 애초부터 아무런 관련도 없다.


억지로나마 전종환 씨의 논리를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이렇게 볼 수도 있다. ‘계약갱신기대권을 인정하면, 회사 측이 노동자를 탄압하려고 계약직을 채용할 때마다 정규직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더 많이 지원할 것이다.’ 물론 설득력 있는 주장은 아니다. 계약직 자리에 지원하는 이들이 꼭 정규직 자리를 노리고 지원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뒤집어 말하면, 정규직을 노리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계약직 채용에 응시할 수 있다. 계약갱신기대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계약직 채용에 사람들이 적게 지원할 것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추측에 기대는 논리가 타당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전종환 씨의 본의에 가장 가깝게 해석한다면, 그의 긴 글은 결국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장겸 일당이 저지른 짓을 ‘계약갱신기대권’이라는 명목 아래 법적으로 공인받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계약직 아나운서에 대한 MBC 측의 태도가 감정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김장겸과 신동호에게 느끼는 악감정을 비정규직 문제에 투영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백 번 양보해서 그것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MBC가 계약직 고용 문제에 관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빠져있다. 전종환 씨가 MBC를 옹호하는 논리들은 MBC의 책임 문제를 외면한다는 점에서 반대편을 설득하기에 충분치 않다. [각주:3]



MBC의 무책임함은 계약직 아나운서에 대한 처우에서도 잘 드러난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MBC가 제기한 행정 소송의 결론이 나올 때까지 ‘임시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손정은 씨는 MBC가 “가처분 상태이니 만큼 회사에 출근하고, 급여를 지급해주며, 법의 판단을 기다려보자”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손정은 씨의 주장과 다르다. MBC는 그들에게 “월급은 줄 테니 출근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사내 인터넷망을 쓰지 못하게 차단했다. 결론이 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런 대우를 견디며 기다리라는 요구야말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MBC는 계약직 아나운서에게 책임감 있는 대안을 마련하려고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소송을 일삼으며 폭력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을 벌주는 게 진보는 아니다.” 정의(justice)는 더더욱 아니다.






※ 참고문헌
ㆍ손정은 아나운서 SNS 글
ㆍ전종환 아나운서 SNS 글
ㆍ박훈 변호사 SNS 글
ㆍ「"평범한 사람을 벌주는 게 진보는 아니다"」, 『미디어오늘』 2019.05.30.
ㆍ「"직장 내 괴롭힘 1호 사업장 MBC를 신고한다"」, 『미디어오늘』 2019.07.16.
ㆍ「MBC 12층에 이상한 방이 있다」, 『시사IN』 2019.07.18.




  1. 손정은 씨는 전종환 씨의 글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에 공유하기도 했다. 따라서 손정은 씨가 전종환 씨의 논점에 동의했다고 판단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본문으로]
  2. 물론 신동호가 공적인 권한을 공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3. 전종환 씨가 계약직 아나운서 정규직화에 반대하며 내세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2016~2017년 계약직 아나운서 채용 공고에 지원하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서라도 계약직 아나운서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적인 맥락을 엮어서 공적인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이런 주장은 전형적인 논점 이탈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고용주인 MBC와 계약직 아나운서 사이에 벌어진 고용 분쟁이다. 따라서 2016~207년 채용 공고에 지원하지 않은 이들은 언급될 이유가 없다. 엄밀히 말해서 채용 공고에 지원하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높이 사는 것과 계약직 아나운서 고용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다. 감정에 호소하면서 별개의 사안을 한데 뒤섞어 놓으면 반대편을 설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전종환 씨의 논리는 당연히 모두가 채용 공고에 응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서있다. 적어도 채용 공고에 응시한 선택이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전종환 씨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취업준비생’들에게 ‘도덕적인 선택’을 강요할 수 있는가? 도덕적인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면, 계약직 아나운서가 비록 도덕적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전종환 씨가 ‘차분히 정리’한 글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계약직 아나운서의 정규직화를 막는 것이 채용 공고를 응하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것이라는 주장을 명확히 입증해야 한다. 아울러 2016~2017년도에 계약직에 지원한 사람들, 특히 채용된 사람들이 왜 지탄을 받아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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