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빠'는 옳은가?
2017.05.18.
이른바 ‘문빠’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문재인을 싫어하는 것과 ‘문빠’를 싫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나는 문재인을 존경하고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만, ‘문빠’는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문빠’가 비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도 문재인을 지지하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그 나름의 이유를 존중한다. 하지만 그들이 문재인 또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을 비난하는 태도는 전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러한 태도가 박근혜 탄핵 당시 태극기를 들고 나오던 이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1
▲문재인 대통령 취임(2017.05)
노무현ㆍ문재인이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 이명박ㆍ박근혜가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보다 훨씬 더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문재인ㆍ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박사모’보다 훨씬 합리적인 정치적 가치를 공유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문재인ㆍ문재인 정부가 아무리 바람직한 정치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도, 그것을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에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문재인ㆍ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지향점에 공감한다고 해도 그들이 구사하는 구체적인 정책과 국정운영의 방향에는 얼마든지 다른 의견을 내고 비판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도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은 현재 문재인ㆍ문재인 정부에 관한 비판 자체를 차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권 교체와 적폐 청산은 중요하다. 탄핵 정국에서 정권 교체는 매우 시급한 과제였다. 새로운 정부가 등장한 지금,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기강을 바로잡아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의 중차대한 과제다. 하지만 문재인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고 문재인 정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폐 청산과 국가 개혁이 중요하니 문재인과 문재인 정부를 방해하지 말라는 태도는 반민주적인 독선이다. 사상의 자유와 다원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본 원리에 배치된다.
‘차별금지법’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문재인을 비판하는 성소수자가 비난받는 것이 정당한가? 민주노총이 정부를 비판했다고 해서 비난받는 것이 정당한가? 한겨레ㆍ경향신문ㆍ오마이뉴스가 ‘시시콜콜한 것’으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다고 비난받는 것은 정당한가?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가 지향하는 가치, 한겨레ㆍ경향신문ㆍ오마이뉴스가 지향하는 가치를 ‘시시콜콜한 것’으로 치부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오랜 시간 존재를 부정당해온 이들이 차별을 금지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민주노총이 노동권 보호와 노동자 권익 향상을 요구하며 파업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겨레ㆍ경향신문ㆍ오마이뉴스가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는 것일 뿐이다.
지난 겨울 수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광장에 나섰다. 박근혜 퇴진과 정권 교체를 열망했다는 점에서는 그들은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똑같은 이유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광화문 광장 안에는 수많은 입장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누군가는 광장에서 이석기 석방을 요구했지만, 누군가는 같은 공간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외쳤다. 누군가는 농민의 생계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떨어지는 집값과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걱정했다. 노동자와 기업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에서 똑같은 이유에서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2016.11)
40%가 넘는 사람들이 19대 대통령으로 문재인을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각자의 신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문재인에게 표를 던졌다. 그 이해관계가 모두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성소수자는 차별을 금지해달라고 투표했고, 비정규직은 고용안정을 보장해달라고 투표했으며, 농민들은 소득을 높여달라고 투표했고, 기업인들은 회사의 이익을 보장해달라고 투표했다.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는 어떤 문제를 우선적으로 처리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권리가 ‘대의’를 위해서 희생되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의’를 위해서 희생되어도 좋은 권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공평한 입장에서 자신의 신념과 이익을 위해 투표했고, 그런 점에서 모두의 권리는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반론할 수도 있다. ‘성소수자가, 노동자가, 농민이, 진보언론이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당시에는 침묵하더니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니까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것 아니냐. 문재인이 만만한 거냐.’ 하지만 그런 비판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 그들은 사회 곳곳에서 오랫동안 자기 목소리를 내왔다. 단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가 공론의 장을 차단해버리면서 그런 목소리들이 가려졌을 뿐이다. 그들은 일관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왔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노력했다. 문재인이 만만해서 그런 것이 아니며, 갑자기 들고 일어난 것도 아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이 문재인ㆍ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이유는 합리적일 수 있지만, 그들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보이는 태도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박근혜를 끝까지 지지하던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었다. 박근혜가 인간적으로 불쌍했든,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이 조작되었다고 믿었든, 어용단체로부터 돈을 받았든. 다만 그들은 박근혜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박근혜를 비판하지 못하게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난 문재인ㆍ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 자체를 차단하는 태도가 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다. 정말 문재인과 문재인 정부를 위한다면 비판의 목소리에 신중하게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게 더 바람직한 태도 아닐까. 그래야만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이 닫아버린 공론의 장이 우리 사회에 다시 마련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추기]
블로그를 옮기다가 약 1년 전에 쓴 이 글을 다시 읽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민의 일방적인 지지에 기대야만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면 그 사람은 왜 정치를 해야 하며, 나는 왜 그런 사람에게 표를 줘야 하는 걸까? 여전히 문재인 정부를 '지켜줘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묻고 싶다. (2018.04.18)
- 엄밀히 말해서 문재인 을 열렬히 지지하는 이들을 '문빠'라고 표현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문빠'의 범주와 기준이 그리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문빠'는 일부 문재인 지지자의 열혈 지지자를 언급한다는 정도로만 규정하기로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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