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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록/독서노트

‘대동’, ‘소강’과 「예운」의 편성 연대

by 衍坡 2022. 11. 9.

 

 

예운의 구성과 내용

  • 「예운」은 『예기』의 아홉 번째 편이다. 주로 周禮의 기원과 발전, 변천과 운용 등을 논술하였으므로 ‘예운’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 『공자가어』의 「예운」은 개별적인 문자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이 편[『예기』의 「예운」]과 같다.
  • 「예운」은 또 성왕 예제의 근거와 원칙, 예와 仁ㆍ义ㆍ乐ㆍ顺의 관계, 예제의 운행 규칙을 탐구한다. 특히 예가 사회를 다스리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사회가 “大順”의 경지에 도달하도록 했다.
  • 「예운」은 예가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준칙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이런 까닭에 禮라는 것은 군주의 큰 權柄이니, 혐의를 분별하고 은미함을 밝히며 鬼神을 대접하고 制度를 상고하며 仁義를 구별하는 것으로, 政事를 다스리고 君主를 편안히 하는 方法이다. 그러므로 정사가 바르지 않으면 군주의 지위가 위태롭고, 군주의 지위가 위태로우면 대신이 배반하고 소신이 도둑질하며, 형벌이 엄해지고 풍속이 피폐해지면 법이 일정함이 없게 되고, 법이 일정함이 없게 되면 禮가 等列이 없게 되니, 예가 등렬이 없게 되면 벼슬아치가 맡은 직책을 일삼지 않고, 형벌이 엄하고 풍속이 무너지면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으니, 이것을 일러 병든 나라[疵國]라 한다.”

 

대동과 소강의 개념

  • 「예운」은 子游가 질문하고 공자가 대답하는 형식이며 중국 역사에서 유명한 ‘大同’과 ‘小康’ 개념을 제시했다.
  • 「예운」의 ‘대동’은 계급과 위계가 없는 사회를 가리키며 공자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소강’은 빈부가 나뉘어 계급과 위계가 있는 사회를 가리킨다. ‘소강’은 대동으로부터 변화한 것이며 ‘예제’는 소강 사회의 산물이다. 소강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하고 각자 자신과 가까운 사람만 친하므로 반드시 예의를 알아야 사회가 정상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 후대에 康有爲, 邓小平 같은 사람들은 ‘대동’과 ‘소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는데, 이것은 공자의 개념을 차용해서 더욱 발전시킨 결과다.

 

「예운」의 편성 연대

역대의 주요 견해들

  • 원대의 陈澔는 자유의 문인이 기록한 것이라고 인식했다.
  • 강유위는 「예운」은 “공자가 생각한 禮治의 근본을 밝힌 것으로 대의와 은미한 말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다.
  • 任铭善(1912-1967) 先生은 「예운」이 자유 본인의 기록이지만 그중에는 후대 사람들이 글자를 고치거나 삽입한 것도 있다고 보았다.
  • 周予同(1898-1981) 先生은 “「예운」이 유가의 한 지류 중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자의 작품일 뿐이며, 이르면 전국 말기에 출현했거나 심지어는 한나라 초기에 출현했을 수도 있다. 이것은 봉건적 사회 정치 제도의 수호자 혹은 대변자일 뿐, 사회주의의 초월적인 사상이 들어있지 않다”고 보았다.
  • 杨天宇 先生은 「예운」이 “음양오행 사상이 성행한 전국시대 말보다 일찍 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秦漢 시대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저자의 견해

  • 「예운」은 많은 사람이 여러 차례에 걸쳐 기록하고 정리하여 완성된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전체 편은 공자와 자유가 예제를 토론한 글로 주요 부분은 아마 자유가 기록한 것으로 전국시대 전기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래되는 과정에서 대략 전국시대 후기에 음양오행가의 말이 섞여들었으며, 후대인의 정리를 거쳐 현재 우리가 보는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 근거①: 「예운」은 전부 자유가 묻고 공자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기록되었는데, 그중에서 칭호를 보면 자유는 이름을 다 “言偃”이라고 칭했고 자유가 공자를 부를 때는 “夫子”로, 공자가 자신을 부를 때는 “丘”로 칭했다. 편의 첫머리에서만 공자의 이름을 두 차례 “仲尼”라고 호칭하고 나머지는 다 “공자”라고 칭했다. 이러한 호칭은 『논어』와 부합하니 「예운」이 아마도 자유의 기록일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 근거②: 『論語』ㆍ『易傳』과 비교해보면, 해당 편([예운])에 자유가 기록한 공자의 언설이 진실하고 믿을 만하다는 것이 증명된다.
  • 근거③: 「예운」에 제시된 ‘太一’ 개념은 『주역』의 「계사전」, 곽점초간의 『太一生水』와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
  • 근거④: 음양오행과 관련이 있는 세 단락의 글은 전국시대 후기 음양오행가의 말이 흘러 들어간 것이다. 해당 편에서 자유가 질문한 것과 공자가 답한 것은 모두 주대 예제의 일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국가 통치에서 예의 중요성, 예의 발전 및 변천 과정, 예와 개인 수양의 관계, 통치자가 예제를 위배하는 위험성 등이 그것이다.
  • 근거⑤: 「예운」 마지막 단락의 글도 음양오행가의 말이다. (…) 「예운」의 이 단락을 보면 “禮”의 운용을 음양오행가의 사상으로 해석했다. 그 찬술은 가장 일러도 전국시대 말이며 앞에서 공자가 ‘禮’를 논한 글과는 같지 않다. (…) 이것은 「예운」의 편성이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비교적 긴 과정을 거치고서야 정리된 것임을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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