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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록/독서노트

선진ㆍ진한 시대 월령 연구사 정리

by 衍坡 2022. 11. 9.

 

서언

월령의 개념

  • 월령은 중국 고대의 ‘時憲書’로 자연적 시간에 의지하여 인위적으로 설계한 시간적 규범이다. (…) 상고 시기의 월령은 판본이 많은데 주요 월령으로는 『夏小正』, 『일주서』의 「時月解」, 『呂氏春秋』의 ‘12기’, 『회남자』의 「時則」과 『예기』의 「월령」 등의 문헌이 있다. 그중에서 뒤에 언급한 세 개 문헌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월령 연구

  • 월령의 정리와 연구는 전한[西漢] 말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 촉한[季漢] 이후로 청나라 말에 이르기까지 월령 문헌의 기원과 월령의 예제에 관한 연구는 계속 풍부하게 이루어졌다. 지난 반세기 이래로 죽간 및 백서 문헌이 점차 출토되면서 더욱 많은 월령의 판본과 관련 정보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 새로운 자료들은 더욱 다양한 연구 시각을 낳게 했다.

월령의 기원에 대한 검토

  • 『예기』「월령」의 저자 및 저술 연대: 『예기』의 「월령」은 유가 경전으로 그 책이 성립된 연대와 문헌적 기원은 학자들에게 가장 중시되었다.

전통시대 학자들의 견해

  • 주공의 저작이라는 견해: 蔡邕은 『월령장구』에서 최초의 『월령』을 주공이 지은 것으로 보았다. 賈逵와 馬融, 王肅은 모두 채옹의 설과 같았고, 청대에 이르러서도 戴震과 孫星衍, 黃以周 등이 이런 관점을 유지했다.
  • 『여씨춘추』를 베꼈다는 견해: 정현은 이 편(「월령」)을 예문가가 진나라 사람의 『여씨춘추』를 베껴서 만든 것으로 보았다. 공영달은 『예기정의』에서 정현의 설을 옹호하고 문자와 관직명, 歲首와 服色 등의 증거를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월령」이 『여씨춘추』에서 나왔다는 결론을 분명하게 밝혔다.
  • 그 외의 견해: (1) 束晳[서진 시대 사람]은 「월령」에 夏正을 채용한 정황을 근거로 「월령」이 夏代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2) 牛弘[수나라 사람]은 「월령」에 순과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의 법제가 뒤섞여있다고 인식했다. (3) 方以智[명말 청초 사람]는 「월령」이 「夏小正」을 답습했고 『여씨춘추』가 「월령」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했다. (4) 汪鎏와 崔适 등은 「월령」이 주나라와 진나라 시대의 서적을 근간으로 한 것이며 한나라 사람들의 개수를 거쳐 완성되었다고 인식했다. (楊寬, 「月令考」( 《杨宽古史论文选集》, 上海人民出版社,2003))

근현대 학자의 견해

  • 顾颉刚은 『중국상고사연구강의』(중화서국, 2002)에서 「월령」 전편이 모두 王莽 시대에 지어졌다고 판단했고, (…) 容肇祖는 「월령의 기원에 대한 고찰」(『연경학보』 1935년 18기)에서 「월령」이 전국시대 음양가의 손에서 나왔다고 생각했고, (…) 向宗鲁은 『月令章句疏证敍錄』(商务印书馆,1945年)에서 「월령」은 곧 「明堂月令」으로 周代의 서적에 근본을 두었으며 나중에 증보와 산삭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 양관은 『월령에 대한 고찰』에서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예기』 「월령」의 작자는 晉人의 후예이며, 그 책은 서주 시대의 「七月」 및 춘추시대의 「夏小正」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전국 말기 음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 岛邦男은 월령 문헌이 전승된 맥락을 세밀히 정리하고 월령 문헌이 추연의 五德終始說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았다.

 

출토된 간책ㆍ백서 월령에 관한 연구

월령관련 출토 문헌

  • ① 장사 자탄고 楚帛书, ② 임기 은작산 汉简 중 阴阳时令류 文献, ③ 居延漢簡 중 “월령간”, ④ 敦煌 悬泉置『四时月令诏条』

子彈庫 楚帛書

  • 陈梦家는《战国楚帛书考》에서 비교적 일찍부터 ‘초나라의 월령’이라는 관점을 주장했다. (…) 郭沫若은《古代文字의 辩证的发展》에서 초백서가 『관자』의 「幼官」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보았다. 俞伟超는 《关于楚文化发展的新探索》에서 백서가 「明堂图」의 성격을 진 초나라의 서적임을 분명히 제시했다. 曹锦炎도 《楚帛书〈月令〉篇考释》에서 초백서가 『예기』 「월령」의 기원이라고 보았다. 이학근은 《楚帛书研究》에서 초백서가 모두 월령 문헌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는다고 보면서도 초백서와 월령에 유사한 지점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았다.
  • 초백서와 월령 사이에 유사한 지점들이 있다는 것은 인정되는 것으로 보임.
  • 李零은 (…) 앞선 연구자들의 연구를 종합하고 세밀하게 정리하여 초백서와 『관자』「玄宮」 등 월령 문헌의 관계를 자세히 논의했다. 실전된 『관자』의 현궁도를 다시 제작해서 초백서와 비교한 결과 양자의 성격이 비슷한 면도 있지만 분명한 차이도 있음을 발견했다. 초백서가 歷忌에 속하는 텍스트라면 월령은 역기에서 발전하여 계통이 더욱 복잡한 문헌이라는 것이다.

雀山 漢簡

  • 《迎四时》, 《天地八风五行客主五音之居》, 《三十时》, 《四时令》, 《五令》 같은 편은 적지 않은 내용이 세상에 전해지는 월령 문헌과 유사하다.
  • 李零은 은작산 한간과 『관자』에 실린 30개의 時節을 비교하여 양자 모두 ‘五行時令’ 계통에 속하지만 형식과 세부 절목에서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연구는 월령 문헌 사이에 계통이 같지 않다는 것과 각 계통 내부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 陈侃理는 또 《迎四时》이 내용 면에서 「월령」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목록학의 측면에서도 두 문헌은 모두 ‘음양가’에서 ‘예류’로 변환되었다고 지적했다.

居延漢簡월령간

  • 이 간서들은 주로 전한 말에서 동한 초까지의 유물이다. 비록 책으로 엮은 월령 문헌은 아니지만 兩漢 시대의 정치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돈황의『月令诏条』

  • 돈황의 懸泉置 유허에서 발견된 『月令诏条』는 元始 5년(A.D 5)에 태황태후의 명의로 반포된 월령의 원형을 완전하게 보여준다. (…) 黃人二의 《돈황 현천치 「사시월령조조」의 정리 및 연구》(우한대학출판사, 2010)는 조서의 내용에 교감과 해독, 주해를 진행했으며, 이어서 조서의 형성과 전달 과정, 정치와 경학 사이의 관련성을 고찰했다.

 

월령과 진한대 정치의 관계에 관한 연구

정령으로서 월령

  • 정현은 (…) 이미 월령이 ‘정령’으로서의 성격을 갖추었음을 지적해 보였다. (…) 한대 이후로 월령은 차츰 지면상에 남아있는 글에서 현실의 제도로 변화해갔다.
  • [일본인 학자] 马场理惠子는 (…) 전한 때 황제의 조칙과 결부시켜 “월령”의 “令”을 율령의 측면에서 고찰했고, 한나라는 전체적으로 時令 사상에서 황제 법령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거쳤다고 보았다. 于振波도 (…) 『사시월령조조』가 법률적 효력을 갖추었으며 한 대 律ㆍ令ㆍ科ㆍ比의 법률 체계 안에서 ‘令’의 성격에 속했다고 보았다.

월령과 지방 통치

  • 월령과 진한의 지방 통치는 학계의 관심을 꽤 많이 받은 의제였다. 1959년 武威 磨咀子의 墓에서 “王杖十简”이 출토되었다. 陈梦家은 『王杖十简考释』에서 그것을 “养老令” 연계하여 고찰하고 仲秋養老의 본원을 월령의 고제로까지 끌어올렸다. 그 외에도 藤田胜久는 『汉代의 地方统治와 时令思想』에서 「월령」이 준수할 필요가 있는 항목만 열거했을 뿐, 준수하지 않는 자를 처벌하는 것에 관한 기록은 없기 때문에 「월령」은 교화를 할 때 지켜야 할 항목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 邢义田과 杨振红이 앞뒤로 발표한 관련 연구는 출토문헌과 세상에 전해지는 사료를 종합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근래에 가장 중요한 월령 연구 성과다. 邢义田의 『월령과 전한의 정치』와 杨振红의 『월령과 진한 정치의 재검토』는 모두 尹湾에서 출토된 汉简《集簿》에서 “春令으로 戶를 이룬다”[以春令成户]는 구절을 독해하고, 이어서 「한가월령」의 내용과 한 대 정치에 대한 영향의 정도를 깊이 검토했다.

월령과 時令관념

  • 고대의 법률제도에서 ‘時令’ 관념은 월령과 정치의 관계를 탐구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연구 관점이다. 『국어』「周语」에는 「夏令」에서 “9월에는 길을 닦고 10월에는 다리를 놓는다”[九月除道 十月成梁]는 구절이 인용되었다. (…) 焦天然은 (…)「월령「에 비록 그와 직접 대응되는 문구는 없지만, ‘길을 닦고 다리를 놓는 것’은 사실상 월령 문헌에서 季秋와 季冬에 관한 시령 기록과 부합한다고 보았다.
  • 월령의 취지는 봄과 여름의 포상과 가을과 겨울의 형벌에 있다. 杨鸿烈은 (…) 고대 중국에서 형을 집행할 시기를 선택하는 것이 월령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매우 일찍부터 논한 바 있다. 西田太一郎은 (…) 한ㆍ당대에 형을 집행하는 계절과 음양학의 관련성을 탐구했다. (…) 薛梦潇는 동한 때 「월령」에 의거해서 두 차례 형 집행 시간을 조정한 것을 논술하고 개혁의 실패에 드러난 「월령」의 이상화된 설계와 동한의 정치 환경 사이의 간극을 지적했다.

 

월령천문역법, 시령예속과 생태윤리 연구

월령의 星像曆法

  • 서로 다른 월령의 판본들은 천문과 성상에 관한 기록에 차이가 나고 채용한 역법의 계통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 能田忠亮은 『禮記月令天文考』에서 『월령』의 12월 초에 보이는 해의 궤도 기록은 대체로 기원전 620년(±100년)의 천문을 반영한다고 계산했다.
  • 何幼琦의 「<夏小正>의 내용과 시대」, 陈久金의 「<夏小正>이 10월 태양력임을 논함」은 주로 <夏小正>이 결국 ‘10월력’인지 ‘12월력’인지의 문제를 토론한다.

월령과 시간 규범

  • 월령은 ‘時憲’의 책으로 시간에 관한 그 규범은 많은 연구자가 관심을 두는 문제이다. 梁韦弦은 『선진시기의 歷政문화』에서 <하소정>과 <월령> 등의 문헌을 연결지어서 선진 유가의 천인관계론과 歷政문화의 연원을 규명한다. 雷戈의 『전국시대 후기의 자연 합리성 관념에 관한 연구』는 정치사상적 각도에서에서 月令 時政과 정치 권력의 관계를 서술했다.
  • 월령과 오행
  • 정제된 五行 이론은 여러 월령 문헌의 뚜렷한 특징이다. 岛邦男은 『오행사상과 예기 월령의 연구』에서 오행 사상과 월령 본문의 성립 간의 관계를 탐구했다. 久保田刚은 『時令說의 기초적 연구』에서 장을 나누어 각종 월령 문헌의 음양오행이론을 논술했다.

월령에 대한 생태환경사적 접근

  • 생태사와 환경사의 각도에서 월령을 연구한 연구 성과는 많이 있으며 점차 환영받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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