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기/옛 사람 이야기

정시한의 율곡 비판 전략과 의도

by 衍坡 2022. 6. 21.

정시한의 율곡 비판 전략과 의도

2022.06.13.


<목차>
1. 들어가며
2. 퇴계의 「심통성정도」와 율곡의 비판
3. 정시한의 퇴계 지지와 율곡 비판
(1) 퇴계 학설 ‘답습’의 의도
(2) 퇴계 학설 중심의 율곡 비판과 ‘이단화’
4. 나가며

1. 들어가며


17세기는 퇴계와 율곡의 학설을 둘러싸고 다양한 학술 담론이 등장하던 시기다. 한편에는 율곡학파가 형성되었다. 주로 서인계 인물들로 구성된 이들은 정치적으로 결집하는 과정에서 율곡의 저술을 모으고 문집을 간행하는 학술 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율곡을 문묘에 배향하려는 시도 역시 그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에는 그런 움직임에 대응해서 퇴계의 학설을 중심으로 율곡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愚潭 丁時翰(1625~1707)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칠추원」과 「사칠변증」이라는 글을 지어 율곡의 학설을 비판하고 퇴계의 학설을 방어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면 정시한은 이 두 텍스트에서 퇴계와 율곡의 학설에 어떤 견해를 드러내는가. 이 질문이 이 글의 핵심 주제다.

정시한이 지은 「사칠추원」과 「사칠변증」은 제목에서부터 사단칠정 문제가 핵심 주제임을 시사한다. 그렇지만 두 텍스트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우선 「사칠추원」은 짤막한 글이지만 정시한이 퇴계 학설에서 어떤 주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텍스트다. 이 짧은 텍스트에는 네 개의 그림이 실려있다. 정지운의 「天命舊圖」와 이황의 「天命新圖」, 이황의 「心統性情圖」와 이이의 「心性情圖」가 바로 그것이다. 이 그림들은 정시한의 관심이 퇴계 학설 중에서도 특히 心性情의 문제에 모여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퇴계가 정지운의 천명도를 수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그 의도가 心性情을 둘러싼 논의의 구조에 어떻게 반영되었는가. 율곡은 이 논의를 어떤 식으로 비판했으며 그 견해가 왜 잘못인가. 정시한은 「사칠추원」이라는 짧은 글에서 이 문제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간략히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 그에 비해서 「사칠변증」은 우계에게 보낸 율곡의 편지에서 40여 조목을 골라 정시한 자신의 비판 논리를 상세하게 서술한 텍스트다. 그 내용은 주로 퇴계 호발설을 비판한 율곡의 논법을 재비판하는 것이다. 요컨대 「사칠추원」이 정시한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서론’격의 텍스트라면, 「사칠변증」은 본인의 입론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본문’격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정시한의 「사칠추원」과 「사칠변증은」은 종래의 연구에서도 검토된 바 있다. 선행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이 저작이 ‘퇴계 옹호’와 ‘율곡 비판’을 목적으로 저술되었다고 지적했다.(1) 그렇지만 관련 연구에서는 주로 ‘율곡 비판’에 논의가 집중되었을 뿐이지, 정작 정시한이 퇴계 학설을 어떻게 보완하거나 수정하는지는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사칠변증」이 율곡의 편지 내용과 정시한의 비판으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정시한이 퇴계의 글을 직접 인용해서 검토하지는 않은 것이다. 퇴계 학설에 관한 입장은 율곡을 비판한 서술을 통해 간접적으로밖에 파악할 수 없다.

문제는 정시한이 퇴계 학설에 관해 독자적인 주장을 뚜렷하게 내놓지 않았다는 데 있다. 「사칠추원」만 보더라도 「심통성정도」를 두고 퇴계의 설명을 그대로 되풀이할 뿐이다. 그런 이유로 선행 연구는 정시한의 학설을 이렇게 평가했다. “전반적으로 퇴계의 이론을 답습하는 정도에 그치는 아쉬움이 없지 않으나, 다만 율곡의 퇴계 비판에 대해 퇴계 심통성정도 의 해석을 중심으로 율곡을 재비판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시한이 퇴계 이론을 답습했다고만 평가하면 더 진전된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 이 글에서 궁금한 건 이런 질문이다. 정시한은 어째서 「심통성정도」에 관한 이황의 설명을 그대로 자신의 글에서 반복하는가?

정시한의 율곡 비판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간의 연구에 의하면, 정시한이 율곡을 비판한 표적은 주로 혼륜설과 인심도심상위종시설, 기발일도설이었다.(2) 그는 율곡의 주요 견해를 비판하면서 퇴계의 상수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氣에 대한 理의 주재력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것은 선행 연구에서 지적한 것처럼 분명히 정시한의 이기론이 지닌 특징이지만, 그렇다고 퇴계의 입론과 뚜렷이 구분되는 자신의 학술 체계를 갖추었는지는 의문이 생긴다. 또 다른 연구에서 정시한이 “퇴계의 이론을 답습하는 정도에 그치는 아쉬움”을 표현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시한이 「사칠추원」과 「사칠변증」을 지은 목적은 퇴계의 이론을 보완해서 고유한 학술사적 위치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퇴계의 학설이 왜 옳은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율곡의 편지 내용을 발췌해서 일일이 비판을 붙이는 작업 방식은 그런 의도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정시한 학설의 특징을 묻는 질문 방식은 달라질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 글의 관심사는 이런 것이다. 정시한은 퇴계의 학설을 어떤 방식으로 옹호하려 했는가? 율곡의 학설을 비판해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이 글은 앞에서 던진 질문들을 중심으로 정시한의 「사칠추원」과 「사칠변증」을 검토하려고 한다. 먼저 이황의 「심통성정도」에 덧붙인 주석과 그에 대한 이이의 비판을 제시하고, 정시한이 두 사람의 학설을 어떻게 독해하는지 구체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다만 이황 옹호와 이이 비판을 별개의 사안으로 다루기보다는 이 두 가지가 긴밀하게 연동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려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이 글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려 한다.

첫째, 정시한이 퇴계의 「심통성정도」를 그대로 수용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선택이다. 「사칠추원」에 퇴계의 학설을 그대로 제시한 것은 퇴계 학설이 아무런 결함 없이 주희의 학설을 충실히 계승한 것임을 재천명하려 한 것이다. 그러면서 곧바로 율곡 「심성정도」를 거론한 것은 철저히 퇴계 학설을 기준으로 율곡을 비판하려 했기 때문이다.

둘째, 정시한은 퇴계 이론을 기준으로 율곡 학설을 검토하고 유사점과 차이점을 분별해냈다. 그는 유사한 대목에서는 율곡의 주장이 이미 퇴계가 밝힌 이야기라고 비판했고, 서로 다른 대목에서는 율곡의 학문이 순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異端’으로 공격했다.

셋째, 율곡을 이단으로 비판한 정시한의 논점은 율곡 이론을 나흠순과 동일시하는 데까지 나아가 이황과 이이의 학설 차이를 선명히 하려 했다. 그것은 이이의 학설이 바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지만, 동시에 주희의 적통으로서 이황의 위상을 부각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이의 학술을 계승한 율곡학파 전체를 ‘이단의 후예’로 자리매김하고 율곡의 문묘 종사를 비판하는 효과도 있었다. 결국 정시한의 사칠론은 율곡의 학설을 ‘이단’으로 비난하던 기존 퇴계학파의 공격을 세련되게 다듬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 이상익, 2007, 「愚潭 丁時翰의 「四七辨證」과 그 비판」, 『한국철학논집』 22; 김경호, 2007, 「우담의 호발설 옹호와 율곡비판 - 사칠변증을 중심으로」, 『한국철학논집』 22; 안유경, 2014, 「17~18세기 退溪學派의 「心統性情圖」 해석에 관한 연구 ─拙齋 柳元之와 愚潭 丁時翰을 중심으로─」, 『유교사상문화연구』 55.
(2) 김경호, 2007, 위의 글.


2. 퇴계의 「심통성정도」와 율곡의 비판


정시한은 본격적으로 이이의 학설을 비판하기 전에 「사칠추원」이라는 짧은 글에서 퇴계와 율곡의 학설을 비교했다. 이때 「심통성정도」와 율곡의 「심성정도」를 제시하며 논의를 전개하고 있으므로 우선 두 그림을 중심으로 퇴계와 율곡의 학설을 비교해보려 한다.

그림 1: 퇴계의 심통성정도


퇴계는 1568년에 『성학십도』를 저술하면서 여섯 번째에 「심통성정도」를 수록했다. 上ㆍ中ㆍ下圖로 구성된 이 그림은 퇴계의 성리설을 아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중에서 上圖는 임은 정복심이 그리고 설명을 붙인 것이고, 나머지 中圖와 下圖는 퇴계 자신이 직접 그리고 설명을 붙인 것이다. 따라서 중도와 하도는 퇴계 본인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퇴계는 중도와 하도에 해설을 붙여 본인의 의도를 부연했다.

中圖는 氣稟 가운데 나아가서 기품에 뒤섞이지 않은 本然의 性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子思가 말한 ‘천명의 성’[天命之性], 맹자가 말한 ‘성선의 성’[性善之性], 程子가 말한 ‘즉리의 성’[卽理之性], 張子가 말한 ‘천지의 성’[天地之性]이 곧 이것입니다. 性이 이와 같다고 말했기 때문에 발동해서 情으로 드러난 것도 모두 선한 것을 가리켜서 말했습니다. 자사가 말한 ‘中節한 情’[中節之情], 맹자가 말한 ‘사단의 정’[四端之情], 정자가 ‘어찌 不善하다고 이름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을 때의 情, 주자가 ‘性 가운데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은 원래 선하지 않음이 없다’고 말했을 때의 情 같은 것이 곧 이것입니다. (…) 程夫子가 말하기를 “性만 논하고 氣는 논하지 않는다면 다 갖추지 못하게 되고, 기만 논하고 성을 논하지 않는다면 다 밝혀지지 않게 되므로 [성과 기를] 두 가지로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맹자와 자사가 理만 가리켜서 말한 것은 다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니라, 氣를 아울러서 말하면 性이 본래부터 선하다는 것을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도를 지은 뜻입니다. (『성학십도』, 「第六 心統性情圖」)

其中圖者, 就氣稟中, 指出本然之性不雜乎氣稟而爲言. 子思所謂天命之性, 孟子所謂性善之性, 程子所謂卽理之性, 張子所謂天地之性, 是也. 其言性旣如此, 故其發而爲情, 亦皆指其善者而言. 如子思所謂中節之情, 孟子所謂四端之情, 程子所謂何得以不善名之之情, 朱子所謂從性中流出, 元無不善之情, 是也. (…) 故程夫子之言曰: ‘論性不論氣不備, 論氣不論性不明, 二之則不是.’ 然則孟子ㆍ子思所以只指理言者, 非不備也, 以其幷氣而言, 則無以見性之本善故爾. 此中圖之意也.


이황은 사람의 마음을 이와 기가 합쳐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와 기 중 어느 한 가지만 존재하는 경우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퇴계는 굳이 本然之性만 따로 가리켜 中圖를 그렸다. 퇴계는 氣를 아울러서 말할 경우 性이 본래 선하다는 것을 보일 수 없기 때문에 굳이 굳이 本然之性만 가리켜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즉, 이 그림은 ‘理氣不相雜’의 조건에 있는 理를 표현한 것이다. 氣가 배제된 中圖의 상태에서는 순선한 理가 기의 방해를 받지 않고 그대로 발현되어 선한 정감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중도의 핵심이다.

반면, 하도는 이와 기를 모두 아우르는 마음의 상태를 표현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구분해서 그 사이에 층위를 설정한다는 점이다.

下圖는 理와 氣를 합해서 말한 것입니다. 孔子가 ‘서로 근사하다’[相近]고 말한 성, 程子가 ‘性이 곧 氣이고 기가 곧 성이다’라고 말했을 때의 성, 張子가 말한 ‘기질의 성’[氣質之性], 주자가 ‘氣 가운데 있으나 기는 기이고 성은 성이어서 서로 섞이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의 성이 곧 이것입니다. 性을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발해서 情이 된 것도 이와 기가 서로 의지하거나 방해하는 곳을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가령 四端의 정은 理가 발하고 氣가 따르는 것이므로 본래부터 순선하여 악이 없습니다. 반드시 이가 발하고도 미처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기에 가려진 뒤에야 흘러가 선하지 않게 됩니다. 일곱 가지의 정[七情]은 氣가 발하고 理가 올라타는 것이므로 선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만약 기가 발했으나 중절하지 않아서 理를 사라지게 만들면 방탕해져서 악하게 됩니다. (…) 요약하면 이와 기를 아우르고 성과 정을 통섭하는 것이 마음이고, 성이 발해서 정이 되는 사이가 곧 마음의 기미이자 온갖 조화의 중추이자 선과 악이 나뉘게 되는 곳입니다. (『성학십도』, 「第六 心統性情圖」)

其下圖者, 以理與氣合而言之. 孔子所謂相近之性, 程子所謂性卽氣, 氣卽性之性, 張子所謂氣質之性, 朱子所謂雖在氣中, 氣自氣性自性, 不相夾雜之性, 是也. 其言性旣如此, 故其發而爲情, 亦以理氣之相須或相害處言. 如四端之情, 理發而氣隨之, 自純善無惡. 必理發未遂, 而掩於氣, 然後流爲不善. 七者之情, 氣發而理乘之, 亦無有不善. 若氣發不中而滅其理, 則放而爲惡也. (…) 要之, 兼理氣統性情者, 心也, 而性發爲情之際, 乃一心之幾微, 萬化之樞要, 善惡之所由分也.


퇴계에 따르면, 四端은 理로부터 발한 정감이다. 理가 발하고 氣가 그것을 순조롭게 따라서[理發氣隨] 발현되면 선한 정감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아무리 理가 순선하더라도 氣에 가려져 방해를 받게 되면 선하지 않은[不善] 정감으로 흘러가게 된다. 반면 七情은 氣로부터 발한 정감이다. 칠정이 발할 때 理의 통제를 잘 받게 되면[氣發理乘] 선하게 드러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理의 제어가 사라져 제멋대로 굴게 되므로 선하지 않은 감정으로 표출된다. 이처럼 性이 발해서 情으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선한 정감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불선한 정감으로 발현되기도 하므로 선과 악의 ‘분기처’를 주도면밀하게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

문제는 퇴계의 설명 구도를 수용할 경우 정감이 발현되는 기원, 즉 所從來를 구분하게 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四端은 理로부터 온 것이지만, 七情은 氣質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간주된다. 물론 이때 퇴계는 四端이라고 해서 氣 없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며, 七情이라고 해서 理가 배제된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전자를 ‘理發而氣隨之’, 후자를 ‘氣發而理乘之’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性(本然)과 氣質이 ‘동거하면서’ 각각 주체로서 발현한다”는 한형조의 표현처럼, 퇴계가 사단과 칠정을 주관하는 주체를 다르게 설정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개 ‘이기호발설’이라고 불리는 퇴계의 입론은 율곡으로부터 신랄하게 비판을 받았다. 율곡은 퇴계의 호발설을 “사단이 마음 안으로부터 유래하여 발하고, 칠정은 바깥에 감응해서 발한다고 여긴 것”으로 규정했다.(3) 하지만 율곡은 이런 구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칠정이 外物에 감응해서 생기는 정감이라면, 그와 묘맥이 다른 사단은 外物에 감응하지 않고도 마음 안으로부터 저절로 생겨난다. 그런 식이면 부모가 없는데도 효도하려는 마음이 생겨나고, 임금이 없어도 충성하는 마음이 생겨나는가? 사단 중 하나인 측은지심을 예로 들더라도, 우물에 빠질 위험에 처한 아이를 보고서 측은안 마음이 생기는 것이니 외물 없이 발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런 논법은 사단과 칠정의 소종래를 구분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율곡은 사단이든 칠정이든 모두 사람이 느끼는 정감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칠정 외에 별도로 사단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사단을 이발기수로, 칠정을 기발이승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주자의 “理에서 발하고 氣에서 발한다”는 주자의 말은 의도가 분명히 다른 곳에 있는데, 오늘날에 그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그 말 자체만을 지켜서 [이와 기를] 분개하여 끌어다 대니 어찌 갈수록 참뜻을 잃지 않겠습니까? 주자의 생각도 “사단은 오로지 理만을 말하고 칠정은 氣를 아울러 말한 것이다”라고 말한 것에 불과하니 “사단은 이가 먼저 발하고 칠정은 기가 먼저 발한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퇴계는 이것을 근거로 입론하여 “사단은 이가 발하고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고 이가 올라타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기가 발하고 리는 올라탄다”고 말한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것 칠정만 그런 것이 아니며, 사단도 기가 발하고 리가 타는 것입니다. (『율곡전서』 권10, 「答成浩原-壬申」)

朱子發於理發於氣之說, 意必有在, 而今者未得其意, 只守其說, 分開拖引, 則豈不至於輾轉失眞乎? 朱子之意, 亦不過曰: ‘四端專言理, 七情兼言氣云爾耳.’ 非曰: ‘四端則理先發, 七情則氣先發也.’ 退溪因此而立論曰: ‘四端, 理發而氣隨之, 七情, 氣發而理乘之.’ 所謂氣發而理乘之者, 可也. 非特七情爲然, 四端亦是氣發而理乘之也.


율곡이 보기에 사단이든 칠정이든 발현된 것은 氣이며 그것을 발현되게 한 근거는 理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단과 칠정이 기발인지 이발인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는 칠정 중에서 中節한 것을 곧 사단으로 규정한다. 즉, 사단은 칠정에 포함되는 개념이다.(4) 절도에 맞지 않는 칠정도 본래는 본성으로부터 기를 통해 나온 것이지만 도리어 본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중절한 칠정, 즉 사단과는 구분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율곡의 논의는 17세기에 접어들며 주류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율곡이 문묘에 배향되었다는 것은 결국 율곡의 논의가 국가의 인정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퇴계의 학설을 지지하는 이들로서는 율곡의 논의를 넘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시한은 바로 그런 정치사적ㆍ사상사적 맥락에서 퇴계의 학설을 방어하려 했던 것이다.

(3) 『율곡전서』 권10, 「答成浩原-壬申」. “竊詳退溪之意, 以四端爲由中而發, 七情爲感外而發. 以此爲先入之見, 而以朱子發於理發於氣之說, 主張而伸長之, 做出許多葛藤, 每讀之, 未嘗不慨嘆.”
(4) 『율곡전서』 권10, 「答成浩原-壬申」. “夫人之性, 有仁義禮智信五者而已. 五者之外, 無他性. 情有喜怒哀懼愛惡欲七者而已. 七者之外, 無他情. 四端只是善情之別名, 言七情則四端在其中矣.”


3. 정시한의 퇴계 지지와 율곡 비판


퇴계와 율곡의 학설을 바라보는 정시한의 관점은 「사칠추원」에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17세기 퇴계학파 인물들의 「심통성정도」 해석을 분석한 연구에서 이 글에 주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에 따르면, 「사칠추원」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퇴계 「심통성정도」에 대한 지지, 다른 하나는 율곡 「심성정도」에 대한 비판이다. 내용만 놓고 보면 이런 지적은 크게 무리가 없다. 따라서 이 장에서도 퇴계에 대한 논점과 율곡에 대한 논점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려 한다.

(1) 퇴계 학설 ‘답습’의 의도


「사칠추원」은 퇴계 이론이 논쟁거리로 부상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정시한에 따르면, 논쟁의 기원은 이황이 정지운의 「천명도」를 수정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대승은 이황이 수정한 「천명신도」를 선뜻 수용하지 못했다. 그가 망설인 이유는 사단과 칠정을 각각 이와 기로 분속한 「천명도」의 情圈의 구조를 수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대승이 퇴계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그 유명한 ‘사단칠정 논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시한은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논쟁에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강하게 의식한 것은 율곡이었다. “율곡이 또다시 마음에 二本과 兩岐가 생기는 병통이 있다고 여기고는 자신이 心性情圖를 그려서 그 [퇴계의] 의견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즉, 율곡의 호발설 비판을 넘어서는 것이 그의 관심사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율곡의 호발설 비판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율곡의 비판을 재반박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율곡이 비판한 퇴계 호발설의 약점을 보완하는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칠추원」에서 앞의 작업은 충실히 이루어지지만, 뒤의 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기존의 평가에서는 정시한이 퇴계 이론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본 사례도 있다.(5) 실제로 「사칠추원」을 보면 정시한의 논점은 기존에 퇴계가 제시한 관점과 큰 차이가 없다. 「심통성정도」의 중도와 하도에 관한 그의 서술을 보면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중도는 기품 속에 나아가 본성만을 가리켜서 말했다. 그러므로 [본성이] 발해서 정으로 드러날 때도 선악의 기미에서 善一邊만을 말하여 사단이 칠정 가운데 포함되어 하나로 혼합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본성이 기에 뒤섞이지 않아 정감도 선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밝혔다. ( 『우담집』 권7, 「四七推原」)

其中圖則就氣稟中, 指言本性, 故其發而爲情, 亦就善惡幾, 言善一邊, 以四端包在七情中滾合爲一, 以明性之不雜乎氣而情之無不善.


이것은 중도에 관한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본성은 본래 기품 속에 섞여 있지만, 중도는 그중에서 본성만 가리켜서 이야기한 것이다. 그 본성은 기에 뒤섞이지 않으므로 본성이 발하여 드러난 정감도 선하다. 물론 사단과 칠정의 不相離를 강조한 대목은 정시한이 호발설 비판을 의식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논점은 퇴계와 별로 차이가 없다.

하도는 성은 본래 하나이지만 기 가운데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이름을 가진 것이므로 ‘本然’과 ‘氣質’ 네 글자 가운데에 ‘性’자 한 글자를 두었다. [본성이] 발하여 정이 되었을 때는 “이가 발하고 기가 따른다”와 “기가 발하고 이가 올라탄다”를 사단과 칠정 옆에 나누어서 주를 달았다. 그리고 [사단과 칠정을] 일직선으로 배열하여 사단이 위에 있고 칠정이 아래에 있어서 마음 안에 뒤섞여 있다가 감응하는 바에 따라 서로[互相] 발현되어 省察과 用工에 각기 마땅한 바가 있음을 밝혔다. ( 『우담집』 권7, 「四七推原」)

其下圖則以性本一, 因在氣中有二名. 故本然氣質四字之中, 寘一性字, 其發爲情也, 以理發氣隨氣發理乘, 分註於四端七情之傍. 而一直排列, 四端在上, 七情在下, 以明渾淪一心之中, 隨其所感, 互相發現, 而省察用工之節, 各有攸當而已. 反復翫繹, 終未曉栗谷所謂相對爲兩岐, 各自出來之模樣.


하도에 관한 설명에서 성이 본래 하나이며 기 가운데 들어있다고 서술한 대목은 정시한이 호발설 비판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발기수와 기발이승 같은 퇴계의 개념에는 아무런 의심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사단과 칠정이 “互相發現”하는 관계임을 명시했으며, 그에 기초해서 공부론 역시 두 갈래로 나누어 제시했다. 즉, 하도에 관한 설명에서 정시한은 이황의 호발설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정시한은 퇴계 「심통성정도」 중ㆍ하도를 설명하면서 율곡의 호발설 비판을 염두에 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단과 칠정을 이와 기의 관계로 이해했고, 이발기수와 기발이승의 이원적 개념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사단과 칠정이 호상 발현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공부 역시 두 갈래로 나누어 파악했다. 그런 점에서 정시한은 퇴계가 제시한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시한이 기존의 퇴계 이론을 고수한 것이 그저 퇴계 학설을 답습한 탓은 아니다. 오히려 퇴계 학설이 그 자체로 완전하며 주희의 취지를 바르게 계승했다고 여겼기 때문에 퇴계 학설에 수정ㆍ보완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정시한은 “저 퇴계의 학설은 곧 주자의 말을 조술하고 주자의 남은 의도를 부연한 것”이라고 규정했다.(6) 퇴계의 「심통성정도」를 높이 평가하면서 “아무런 조짐이 없는 가운데 森然한 이치가 모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고, 感通하는 사이에 유행하는 정감은 모두 맥락이 있어서 책을 펼쳐보면 일목요연하고 가지런하다”고 평가한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7)

(5) 안유경, 2014, 앞의 글.
(6) 『우담집』 권7, 「四七辨證」. “夫退溪之說, 卽祖述朱子之言, 而推衍朱子之餘意也. 朱子之言, 非不分明直截, 而以其單言理發氣發之故, 退溪又於理發之下, 繫之以氣隨, 氣隨云者, 明其氣之順理而理未嘗無氣而發也. 氣發之下, 繫之以理乘, 理乘云者, 明其理之乘氣而氣未嘗無理而發也.”
(7) 『우담집』 권7, 「四七推原」. “退溪之圖, 寓目尋思, 便見天地間元有此理. 而因以畫成, 其排列位寘, 不費人力, 自然齊整, 無眹之中, 森然之理, 莫不畢具, 感通之際, 流行之情, 皆有脈絡, 開卷瞭然, 井井方方.”


(2) 퇴계 학설 중심의 율곡 비판과 ‘이단화’


퇴계의 학설이 주희의 취지를 충실하게 반영했다는 정시한의 생각은 율곡을 비판하는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율곡의 문제 설정 위에서 그 논변의 정합성을 검토하기보다는 퇴계 이론을 ‘정통’의 위치에 놓고 그것을 기준으로 율곡 학설의 정합성을 검토했다. 이런 특징은 「사칠추원」에서 율곡의 「심성정도」를 검토하는 데 그대로 드러난다. 이 점을 확인하려면 우선 율곡의 「심성정도」(그림 2)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 2 : 율곡의 「심성정도」


율곡의 「심성정도」는 앞서 살펴본 그의 사단칠정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본성은 아직 발하지 않은 상태[未發]에서 선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기질에 따라 淸濁雜駁이 존재하기 때문에 본성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발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성이 정감으로 드러나는 경로가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즉, 율곡이 이발ㆍ기발을 부정하고 제시한 기발일도설이 반영된 것이다. 그렇게 발현된 정감이 바로 칠정이다. 선과 악 아래에 모두 칠정이 표현된 것은 율곡이 칠정을 사단과 구분하지 않고 인간 감정의 총칭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선한 정감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사단이다. 善七情 아래에 사단을 기재한 것은 사단을 ‘중절한 칠정’으로 보는 율곡의 시각을 표현한 것이다. 반면 惡七情에는 그 정감이 선한 본성으로부터 근원했지만 중절하지 못해 도리어 선한 본성을 해친다는 점을 표현했다.

정시한은 율곡이 제시한 「심성정도」에 심각한 문제가 곳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칠추원」에서 율곡의 「심성정도」가 지닌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栗谷之圖, 於心性一圈中, 遺却森然已具之仁義禮智, 乃於無言處, 以言語解釋, 已非從古聖賢建圖之體. 且其發而爲情也, 不言善惡幾, 而直書善字, 橫書惡字. 善惡下, 皆書七情. 善七情下, 書仁義禮智四者之端, 惡七情下, 書源於仁而反害仁原於義而反害義等語. 至於惻隱羞惡辭讓是非, 卽孟子所以發明仁義禮智之端, 擴前聖之所未發者, 而今皆捨而不書. 只書心圈中所不書之仁義禮智於善惡七情之下, 其於性情寂感所以然所當然之條理脈絡, 皆不分曉. 且又惡幾已著, 情熾爲惡之後, 則四端滅息, 七情乖反, 不容更說原仁原義等語於惡七情之下. 而其所以反害仁反害義者, 又不須說矣. 排列位寘, 似非出於天然自有底物事, 而有似乎私智杜撰者然.


이 글에 따르면, 율곡의 그림은 ① 心圈 안에 仁義禮智를 써넣지 않은 점, ② 선악의 기미를 따로 밝히지 않은 점, ③ 심권과 연결되어야 할 사단을 善七情ㆍ惡七情 아래에 써서 성정이 고요히 감발하는 所以然과 所當然의 조리와 맥락을 어그러뜨린 점, ④ 배열한 위치가 부자연스러운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런 비판은 퇴계를 ‘정통’의 위치에 놓고 그의 「심통성정도」를 기준으로 율곡 그림을 비판한 것이다. 이 비판들을 종합해서 수정하면 결국 퇴계 이론에 부합하는 그림이 만들어진다.

한편, 정시한은 「사칠변증」에서도 퇴계 이론을 정통에 놓고 율곡의 학설을 검토했다. 그는 퇴계 이론의 관점을 기준으로 율곡 학설에서 유사해 ‘보이는’ 지점과 차이가 나는 지점을 구분하고, 유사한 지점들을 거론하며 이미 퇴계가 그것들을 모두 밝혔다고 비판했다. 율곡 학설의 특정 지점이 퇴계 학설과 유사해 ‘보이는’ 지점은 물론 퇴계 학설의 관점에서 율곡 학설을 독해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율곡 본인의 논변에서는 정합적이었던 내용을 정시한은 어그러져서 모순이 생겨났다고 비판한 것이다.

정시한은 기발일도설 등 율곡 학설이 퇴계 학설과 다른 지점을 모아서 정암 나흠순의 학설이나 禪學과 연결 짓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논변에는 대체로 이황이 주희의 취지를 조술한 적통임을 주장하는 언설이 짝을 이루어 함께 등장한다. 이것은 이황과 율곡의 학설 사이의 차이점을 더 선명하게 하면서 이황을 정통에, 이이를 이단에 배치하려는 일종의 정치적 프레임이다. 물론 이런 정치적 프레임은 다른 퇴계학파 구성원인 이구와 이현일에게서도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시한은 단순히 정치적 프레임을 주장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단칠정과 관련된 학술적 논리로 뒷받침함으로써 그 정치적 프레임을 훨씬 더 세련되게 다듬어 나갔다는 데 특징이 있다.

5. 나가며


첫째, 정시한이 퇴계의 「심통성정도」를 그대로 수용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선택이다. 「사칠추원」에 퇴계의 학설을 그대로 제시한 것은 퇴계 학설이 아무런 결함 없이 주희의 학설을 충실히 계승한 것임을 재천명하려 한 것이다. 그러면서 곧바로 율곡 「심성정도」를 거론한 것은 철저히 퇴계 학설을 기준으로 율곡을 비판하려 했기 때문이다.

둘째, 정시한은 퇴계 이론을 기준으로 율곡 학설을 검토하고 유사점과 차이점을 분별해냈다. 그는 유사한 대목에서는 율곡의 주장이 이미 퇴계가 밝힌 이야기라고 비판했고, 서로 다른 대목에서는 율곡의 학문이 순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異端’으로 공격했다.

셋째, 율곡을 이단으로 비판한 정시한의 논점은 율곡 이론을 나흠순과 동일시하는 데까지 나아가 이황과 이이의 학설 차이를 선명히 하려 했다. 그것은 이이의 학설이 바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지만, 동시에 주희의 적통으로서 이황의 위상을 부각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이의 학술을 계승한 율곡학파 전체를 ‘이단의 후예’로 자리매김하고 율곡의 문묘 종사를 비판하는 효과도 있었다.

결국 정시한의 사칠론은 율곡의 학설을 ‘이단’으로 비난하던 기존 퇴계학파의 공격을 세련되게 다듬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이 글은 2022년 1학기 '한국유교연구' 수업의 보고서로 작성한 글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