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경국전을 지어 올리는 전문(1394)
撰進朝鮮經國典箋
정 도 전
奮義佐命開國功臣ㆍ輔國崇祿大夫ㆍ判三司事ㆍ同判都評議使司事兼判尙瑞司事ㆍ修文殿大學士ㆍ知經筵藝文春秋館事ㆍ判義興三軍府事ㆍ世子貳師ㆍ奉化伯臣鄭道傳, 臣言. 伏承都承旨臣尙敬爲臣具啓, 令臣投進所撰朝鮮經國典, 奉敎投進者.
분의좌명개국공신(奮義佐命開國功臣)ㆍ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ㆍ판삼사사(判三司事)ㆍ동판도평의사사사(同判都評議使司事) 겸 상서사사(判尙瑞司事)ㆍ수문전대학사(修文殿大學士)ㆍ지경연예문춘추관사(知經筵藝文春秋館事)ㆍ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ㆍ세자이사(世子貳師)ㆍ봉화백(奉化伯) 신 정도전은 아룁니다. 도승지 한상경(韓尙敬)이 신에게 구계(具啓)한 것을 받았는데 신에게 편찬된 『조선경국전』을 올리라는 내용이어서 교서를 받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秉籙膺圖, 肇啓鴻休之運. 立經陳紀, 以詒燕翼之謀, 倣成周六官之名, 建朝鮮一代之典. 恭惟主上殿下體天之德, 保位以仁, 定國號以繫民心, 立儲副以隆邦本. 世系著積累之慶, 敎書頒寬大之恩. 謂治道責成於相臣, 而貞賦實歸於公用. 制禮作樂, 以和神人, 講武修兵, 以正邦國. 刑則詰姦而禁暴, 工則謹度而課程. 可見創業垂統之艱難, 俾爲持盈守成之悠久, 宜載汗簡, 以藏名山.
전하께서는 부록(符籙)을 붙잡고 도참(圖讖)에 부응해서 처음으로 왕업[鴻休]의 운수를 여셨습니다. 법도[經]를 세우고 규율[紀]을 펼쳐놓아 자손을 위한 좋은 계책[燕翼之謀]을 남겨야 하니, 주나라 육관(六官)의 명칭을 본떠서 조선의 한 시대의 전범[一代之典]을 세워야 합니다. 공손히 생각해보면 주상전하께서는 하늘의 덕을 체득하고는 인(仁)으로 왕위를 얻으셨고, 국호를 정해서 민심을 안정시켰으며, 세자[儲副]를 세워서 나라의 근본을 융성하게 만드셨습니다. 세계(世系)로는 축적된 선행을 드러내셨고, 교서(敎書)로는 관대한 은전을 베푸셨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재상에게 책임을 맡겨 직임을 이루게 하셨고, 세금은 실상에 맞게 관청의 용처에 돌아갔습니다. 예(禮)와 악(樂)을 제정해서 귀신과 사람을 화합하도록 하셨고, 무사(武事)를 강습하고 병기를 정비해서 나라[邦國]을 바르게 하셨습니다. 형벌을 내리시거든 간사한 사람을 꾸짖고 포악한 짓을 금지하셨으며 공사를 하시거든 규모와 절차를 알맞게 하셨습니다. [이런 사실들에서] 왕업을 열고 대통이 이어지게 하는 일의 어려움을 알 수 있으니 오래도록 조상이 이룬 왕업을 보존하기[持盈守成] 위해서는 서책[汗簡]에 실어 명산(名山)에 보관해야 합니다.
臣以庸疏, 獲叨遭遇. 庶將著作之末技, 仰答生成之至恩. 盛德豐功, 固難備述, 大綱小紀, 悉皆鋪張. 謹繕寫朝鮮經國典, 隨菚以獻. 伏望聖慈幸當燕閒, 時賜觀覽. 雖未助於緝煕之學, 少有取於施設之宜. 臣無任激切屛營之至, 頓首頓首謹言.
신은 용렬한 자질을 지니고도 외람되이 전하께서 저를 알아주시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글을 짓는 변변찮은 재주로 생성(生成)의 지극한 은혜에 보답하려 합니다. 전하의 성대한 덕과 위대한 공은 정말로 상세히 서술하기가 어려워서 크고 작은 강기(綱紀)만을 모두 펼쳐놓았습니다. 삼가 『조선경국전』을 정서하여 전(箋)과 함께 바치오니, 성상[聖慈]께서 한가할 때에 가끔씩 보아주십시오. 비록 성상의 밝은[緝熙] 학문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정치를 펴는 알맞은 방도에는 조금이나마 취할 만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신은 지극히 격절하고 두려운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씀드립니다.
*責成(책성): 관직을 책임지게 하여 직임을 이루게 하는 것
*응도(膺圖): 承受瑞應之圖。指帝王得國或嗣位。
*홍휴(鴻休): 鴻業;大統。
*持盈(지영) : 이미 이루어진 공업(功業)을 보전하여 지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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