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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자집/사서집주

[맹자] 양下-2. 문왕의 동산, 제 선왕의 동산(文王之囿)

by 衍坡 2019. 8. 26.

양혜왕장구下 (2) : 문왕지유(文王之囿)

 

 

문왕지유

 

 

齊宣王問曰: “文王之囿, 方七十里, 有諸?” 孟子對曰: “於傳有之.”

제 선왕이 물었다.

“문왕(文王)의 동산[囿]은 사방이 70리였다고 하는데, 그런 사실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옛 기록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囿者, 蕃育鳥獸之所. 古者四時之田, 皆於農隙以講武事. 然不欲馳騖於稼穡場圃之中, 故度閒曠之地以爲囿. 然文王七十里之囿, 其亦三分天下, 有其二之後也與. 傳, 謂古書.

‘囿’(유)는 새와 짐승을 번식시키고 기르던 곳이다. 옛날에는 사시(四時)의 사냥은 모두 농한기에 하여 무사(武事)를 익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곡식을 심고 거두는 채마밭[場圃] 안에서 말을 달리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한가롭고 빈 땅을 헤아려 동산을 만들었다. 그러나 문왕의 70리 동산도 아마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그중 둘을 차지한 뒤에 만들었을 것이다. ‘傳’(전)은 옛 책을 말한다.

 

 

曰: “若是其大乎?” 曰: “民猶以爲小也.” 曰: “寡人之囿, 方四十里, 民猶以爲大, 何也?” 曰: “文王之囿, 方七十里, 芻蕘者往焉, 雉免者往焉. 與民同之, 民以爲小, 不亦宜乎?

왕이 말했다. “그렇게 컸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백성이 오히려 작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이 말했다. “과인의 동산은 사방 40리인데도 백성이 오히려 크다고 여깁니다. 어째서일까요?”

맹자가 말했다.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였으나 꼴과 땔나무를 베는 자들이 그곳에 가고 꿩과 토끼를 잡는 자들이 그곳에 갔습니다. 백성과 그곳을 함께 이용했으니 백성이 작다고 여기는 것도 마땅하지 않습니까?

 

芻, 草也. 蕘, 薪也.

‘芻’(추)는 풀이다. ‘蕘’(요)는 섶이다.

 

 

臣始至於境, 問國之大禁, 然後敢入. 臣聞郊關之內, 有囿方四十里, 殺其麋鹿者, 如殺人之罪, 則是方四十里, 爲阱於國中, 民以爲大, 不亦宜乎?”

신이 처음에 국경에 이르러 나라에서 크게 금하는 것을 물은 뒤에 들어왔습니다. 신이 듣기로는 교외의 관문[郊關] 안에 사방 40리가 되는 동산이 있는데 그곳의 사슴을 죽이는 것은 사람을 죽인 죄와 같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방 40리 되는 땅으로 도성 안에 함정을 만든 것이니 백성이 크다고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禮, 入國而問禁. 國外百里爲郊, 郊外有關. 阱, 坎地以陷獸者, 言陷民於死也.

『예기』에 따르면 ‘나라에 입경하여 금지하는 것을 묻는다’고 했다. 도성 밖의 100리는 ‘郊’(교)라고 하는데, 교외에는 관문이 있다. ‘阱’(정)은 땅에 구덩이를 파서 짐승을 빠뜨리는 것이다. [여기서는] 백성을 죽음에 빠뜨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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