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도감 도청의궤 편목 구성의 변화
2022.06.29
도청의궤가 포함된 가장 오래된 국장도감의궤는 바로 『인조국장도감의궤』(1649)다. 여기서는 이 의궤를 기준으로 이후의 도청의궤 체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인조국장도감의궤』(이하 『인조의궤』)부터 『영조국장도감의궤』(이하 『영조의궤』)까지 국왕 국장도감 도청의궤 체재를 살펴보면 아래의 <표1>과 같다.
『인조의궤』가 17-18세기의 나머지 의궤와 구분되는 가시적인 차이점은 총목차가 없다는 점이다. 그 체재에 ‘좌목’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물론 내용상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효종의궤』에서 『영조의궤』의 총목차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좌목’인데, 이 항목은 이조단자와 도감사목단자로 구성되었다. 『인조의궤』에도 책머리에 두 단자가 실려있기 때문에 적어도 [좌목]에서 뚜렷한 차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계사]도 모든 의궤에서 공통으로 서두에 등장한다. 조선에서 사위의례가 흉례에 포함된 데서 알 수 있듯이, 국장은 망자에 대한 애통함을 표현하는 흉례 본연의 기능뿐 아니라 왕위 승계의 정통성과 왕실의 정당성을 밝히는 정치적 기능도 수행했다. 그런 점에서 국장의 주체는 국왕이었고, 국장에 관계된 부서가 국왕과 국장 절차를 논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계사]는 국왕과 관계된 항목이었으므로 의궤 서두에 등장한다고 해서 어색할 것은 없었다.
다만 <표1>을 보면 『인조의궤』의 구성이 이후 의궤의 목차상 구성과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품목]이 [계사] 뒤에 배치된 점과 [이문]이 [예관]보다 뒤에 놓인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구성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각 편목의 기능을 파악한 뒤에야 분명해지겠지만, 『인조의궤』의 전체 구성이 적어도 목차 상에서는 이후 의궤와 이질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표1>은 『인조의궤』에서 볼 수 없던 항목이 이후의 의궤에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장계질’이 추가된 점이다. 장계란 “조선시대에 왕명을 받고 외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자기 관하의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거나 청하는 문서”를 가리킨다. 국장도감의궤에 [장계]가 추가된 것은 발인과 관련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도성에서 출발한 상여가 능지에 도달하는 과정을 주기적으로 국왕에게 보고한 항목이 ‘장계질’로 정리된 것이다. 그것은 의궤의 실제 구성에서 [장계]가 처음 등장한 『현종의궤』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현종의궤』 「장계질」의 첫 기사는 甲寅年(1674) 12월 11일에 대여가 노제소를 거쳤다가 辰時에 주정소를 지나고 巳時에 산릉 정자각에 도착하는 과정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이후의 의궤에서도 「장계질」이 편성되어 발인 상황을 시시각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별단질’도 『인조의궤』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항목이다. [별단]이 목차 상에 등장하는 것은 『효종의궤』지만, 『현종의궤』에 이르러서야 실제 편목 상에 나타난다. 여기에는 誌文ㆍ哀冊文ㆍ諡冊文의 제술관 및 서사관의 명단과 국장에 소용되는 물품 목록을 제시했다. 비록 [별단]이 도청의궤에 수록되었지만, 그 실제 품목은 도청 자체보다는 그 예하에 소속된 각방과 수리소의 소용 품목을 망라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현종의궤』의 「별단질」에는 挽章紙가 10권 소요되었다고 수록했다. 현종국장도감 삼방의궤의 「各樣實入與用餘並錄秩」을 보면, 할당받은 11권의 만장지 중에서 10권이 실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별단]이 實入을 기준으로 서술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품목 명단 자체는 중복으로 서술된 것이다. 『영조의궤』에서 [별단]이 배제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실제로 [별단]에 제시되던 제술관과 서사관 명단은 『영조의궤』에서 [계사질]에만 한 차례 등장한다. 『효종의궤』에서 별단질이 목록 상에서만 나타난 점과 『영조의궤』에서 별단질이 배제된 점은 의궤 자체가 오랜 기간에 걸쳐 체계화ㆍ정형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문질의 변화도 간과할 수 없다. 우선 이문질의 위치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인조의궤』에서 이문질은 도청의궤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수록되었지만, 『효종의궤』에서부터는 계사질과 장계질에 이어서 등장한다. 『효종의궤』에서부터 보이는 이런 특징은 이후의 모든 의궤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이문질이 이문질과 내관질로 분화되었다는 점이다. 『인조의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문질은 본래 移文과 來關을 모두 포괄하는 항목이었다. 『효종의궤』의 실제 편목에서 이문질을 ‘文移往復秩’로 기록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숙종의궤』(1720) 부터는 발송한 공문과 수령한 공문을 구분해서 이문질과 내관질로 구성하기 시작했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예관질과 별도로 [의주]가 편제되기도 했다. 의궤 목차만 보면 [의주]가 등장하는 시점은 『영조의궤』에 이르러서다. 그러나 실제 편목을 보면 [의주]는 이미 『현종의궤』에서부터 등장하고 있었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이미 『현종의궤』에서 등장했던 의주질이 목차 상에 반영되지 못하다가 『영조의궤』 단계에서야 목차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의궤 서두에 제시된 목차와 실제 구성이 일치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로 『효종의궤』에서는 목차와 실제 편목이 상이했지만, 『영조의궤』에서는 양자가 거의 유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의궤 구성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체계화ㆍ정형화되기 시작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조의궤』부터 『영조의궤』까지의 편목 구성 변화를 살펴보았다. 『인조의궤』 단계의 의궤 구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몇 가지 변화를 겪었다. [장계]와 [별단]이 등장하고, 이문질 자체도 이문과 내관으로 분화되었으며, 그 위치도 계사질과 장계질 뒤로 고정되어갔다. 비록 [별단]은 나중에 의궤 편목에서 삭제되었지만, 몇 가지 항목이 새로 도입되거나 변화한 것은 의궤 작성에서도 나름대로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목차 상의 구성과 실제 편목 구성이 서로 일치하지 않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유사해진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변화하지 않은 것도 있다. 품목질과 감결질, 감결질과 예관질은 이미 『인조의궤』에서부터 한 세트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언뜻 보기에 품목과 감결, 감결과 예관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는 데 있었다. 이 문제의 답을 모색하려면 의궤의 편차뿐 아니라 각 편목에 포함된 실제의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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