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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조선시대 기록 읽기

[삼봉집] 공양왕에게 올리는 상소(정도전의 '척불상소')

by 衍坡 2020. 4. 11.

공양왕에게 올리는 소 (정도전 書)

[上恭讓王疏, 이른바 '척불상소']





* 관련 자료: 공양왕의 구언교서


 政堂文學臣鄭道傳伏讀敎書。 上以謹天文之變。 下以求臣庶之言。 而以八事自責。 臣讀之再三。 不勝感歎。 殿下以天之譴告。 引而歸之於己。 開廣言路。 冀聞過失。 雖古哲王。 未之或過也。 臣待罪宰相。 無所匡輔。 以貽君父之憂。 至煩敎諭之丁寧。 臣實赧焉。 嘗謂君爲元首。 臣爲股肱。 比之人身。 實一體也。 故君倡則臣和。 臣言則君聽。 或曰可。 或曰不可。 期於致治而已。 然則天之譴告。 由臣所致也。 古者有災異。 三公策免。 爲大臣者亦避位而讓之。 請免臣職。 以弭災異。 然念古之大臣。 當請退之時。 必有陳戒之辭況今獲奉敎書。 安敢不效一得之愚。 仰備採擇之萬一。 


정당문학 신 정도전은 교서를 받들어 읽어보았습니다. 위로는 천문(天文)의 변화를 보고 스스로 반성하시고 아래로는 신하들의 간언을 구하셔서 여덟 가지 일로 스스로를 책망하셨습니다. 신은 교서를 두세 차례 읽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전하께서 하늘의 견책(譴責)을 끌어다가 자신의 허물로 돌리시고는 언로를 널리 열어서 잘못에 관해 들으려 하시니 옛날의 현명한 왕들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신이 재상의 반열에 올랐는데도 임금을 보필하는 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해서 군부(君父)에게 근심을 끼치고 번거롭게 여러 번 교유(敎諭)를 내리게 만들었으니 정말로 부끄럽습니다. 일찍이 “군주는 머리이고 신하는 팔다리다”라 하는데, 사람의 몸에 비유한다면 실로 한 몸일 뿐입니다. 그래서 군주가 말을 꺼내면 신하는 화답하고 신하가 간언하면 군주는 들어주어서 어떤 경우에는 된다, 혹은 안 된다고 이야기해야 훌륭한 정치[致治]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견책은 신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옛날에는 재이(災異)가 생기면 삼공(三公)을 면직시켰고, 대신도 자리에서 물러나 그 지위를 다른 이에게 양보했습니다. 신도 면직하여 재이를 그쳐주십시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옛날의 대신들이 물러나기를 청할 때는 반드시 진계(陳戒)하는 말을 올렸습니다. 하물며 지금은 교서를 받들었는데 천려일득의 어리석인 생각이라도 어떻게 바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의 하나라도 채택될 경우에 대비하려 합니다.



伏讀敎書曰。 涼德未修而不孚於帝心歟。 政令有闕而未協於輿望歟。 臣愚以爲德者得也。 得於心也。 政者正也。 正其身也。 然所謂德者。 有得於稟賦之初者。 有得於修爲之後者。 殿下大度寬洪。 天性慈仁。 得於稟賦之初者然也。 殿下平日未嘗讀書以考聖賢之成法。 未嘗處事以知當世之通務。 安敢保德之必修。 政之無闕也。 漢成帝臨朝淵默。 有人君之度。 無補漢室之亡。 梁武帝臨死刑。 涕泣不食。 有慈仁之聞。 不救江南之亂。 徒有天質之美。 而無德政之修故也。 伏望殿下毋以稟賦之善自恃。 而以修爲之未至者爲戒。 則德修而政擧矣。 


교서를 받들어 읽어보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부족한 덕이 가다듬어지지 않아 상제(上帝)의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일까? 정령(政令)에 빠진 것이 있어서 여망에 부응하지 못한 탓일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덕’(德)은 ‘득’(得)이니 마음에서 얻는 것입니다. ‘정’(政)은 ‘정’(正)이니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덕이라는 것에는 처음부터 타고나서 얻은 것이 있고 뒤에 길러서 얻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도량이 크고 관대하시며 천성은 자애롭고 어지십니다. 처음부터 타고난 자질은 그렇지만, 전하께서는 평소에 책을 읽어서 성현들의 성법(成法)을 살펴보신 적이 없습니다. 나랏일을 처리해서 이 세상의 통무(通務)를 아신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덕이 꼭 길러지리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한(漢)의 성제(成帝)는 조회를 볼 때 침착하고 말수가 적어 군주의 도량을 갖추었지만, 한나라가 망할 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양(梁)의 무제(武帝)는 사형을 참관하면 눈물을 흘리고 음식도 먹지 않아서 자애롭고 어질다는 평판을 얻었지만, 강남의 반란을 막지 못했습니다. 천성만 아름다웠을 뿐이지 덕과 정치를 가다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는 좋은 천성을 타고났음을 자부하지 마시고 수양이 아직 부족한 것을 경계로 삼으신다면 덕이 길러지고 정치가 흥할 것입니다.



伏讀敎書曰。 任用之人或徇於私歟。 賞罰之道有戾於王歟。 臣愚以爲任用之人出於公私。 在殿下自知之耳。 臣何足知之。 然除目旣下。 外人目而議之曰。 某也故舊也。 某也外戚也。 外議如此。 臣恐徇於私者。 雜之也。 賞者。 勸有功也。 刑者。 懲有罪也。 賞曰天命。 刑曰天討。 言天以賞刑之柄。 付之人君。 爲人君者。 代天而行之耳。 賞刑雖曰出於人君。 固非人君所得私而出入之也。 殿下卽位以來。 蒙賞受刑之人。 有事同而施異者。 金佇之言。 一也。 有置于極刑者。 有加擢用者。 金宗衍在獄致逃。 一也。 其監守官吏。 一誅一用。 其在逃謀亂一也。 同謀容接之人。 或生或死。 臣愚不知刑誅而死者爲有罪耶。 則擢用而生者獨何幸歟。 擢用而生者爲無罪耶。 則刑誅而死者獨何辜歟。 


교서를 받들어 읽어보니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등용한 사람 중에 혹시라도 사사로운 마음으로 발탁한 경우가 있어서일까? 상과 벌을 내리는 방도에 정도와 어긋나는 것이 있기 때문일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등용된 자들이 공정한 마음으로 발탁되었는지 사사로운 마음으로 발탁되었는지는 전하께서 스스로 아실 뿐이지, 신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제목(除目)이 내려지자 바깥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누구는 친구네, 누구는 외척이네 떠들어댑니다. 바깥의 논의가 이와 같으니 신은 (등용된 인재 중에) 사사로운 마음으로 발탁한 자가 섞여있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상(賞)은 공이 있는 사람을 권장하는 것이고, 형(刑)은 죄가 있는 사람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상은 ‘천명’(天命)이라 하고 형은 ‘천토’(天討)라고 합니다. 하늘이 상과 벌을 내릴 권한을 임금에게 주었고, 임금은 하늘을 대신해서 그것을 집행할 뿐임을 말한 것입니다. 상과 벌은 비록 임금에게서 나오지만, 정말로 임금이 사사롭게 행사하거나 거둬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상이나 형벌을 받은 사람 중에 사안이 같은데도 상벌이 다르게 베풀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김저가 진술한 사람들이 한 사례입니다. 그중에는 극형에 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발탁해서 등용한 사람도 있습니다. 김종연이 감옥에서 달아난 사건도 한 가지 사례입니다. 옥사를 감시하는 관원의 경우 한 사람은 처벌을 받고 한 사람은 기용되었습니다. 도망가던 길에 반란을 모의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같이 모의하며 가까이 지낸 사람들 중에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죽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형벌을 받아서 죽은 자에게 죄가 있다면, 기용되어 살아남은 자는 유독 무슨 행운을 누린 것인지요? 기용되어 살아남은 자에게 죄가 없다면, 형벌을 받아 죽은 자는 유독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요?



禑ㆍ昌竊我王氏之位。 實祖宗之罪人。 而爲王氏之子孫臣庶所共讎也。 其族姻黨與。 不加刑誅。 則屛諸四裔而後快於人神之心。 昔武才人以高宗之后。 奪其子中宗之位。 五王擧義。 退武氏復立中宗。 武氏母也。 中宗子也。 以母之親。 奪子之位。 胡氏尙譏五王不能斷大義。 誅其罪而滅其宗。 況禑,昌之於王氏。 無武氏之親。 有武氏之罪。 則族姻及其黨與。 奚啻武氏之宗也。 頃者臺諫上言。 逐之於外。 縱不能明示天誅。 庶幾小雪祖宗臣庶之憤也。 曾未數月。 俱承寵召。 聚會京城。 出入無禁。 今雖以諫官之言。 放其數人。 殿下黽勉從之。 有遲留顧惜之意。 不知此擧果何義也。 諸將回軍。 議立王氏。 此上天悔禍。 祖宗陰相。 王氏復興之機也。 有沮其議。 卒立子昌。 使王氏不復興者。 有謀迎辛禑。 永絶王氏者。 其爲亂賊之黨。 王法所不容也。 殿下旣全其生。 置之遠方可也。 今皆召還于家。 慰而安之。 若以其罪爲誣也。 其沮王氏而立僞昌者。 諸將之所共知也。 親自招服。 明有辭證。 其迎辛禑而絶王氏者。 金佇,鄭得厚言之於前。 李琳,李貴生招承於後。 辭證甚明。 此而謂之誣也。 天下安有亂臣賊子之可討者也。 大抵人之所爲。 不合於公議。 則必有合於私情。 殿下此擧以爲合於公議。 則禑,昌之黨。 皆祖宗之罪人也。 以爲合於私情。 則留禑,昌之黨。 以遺後日之患。 如尹彝,李初之請親王動天下兵。 亦何便於人情哉。 若曰有罪者赦之。 恩莫大焉。 佗日必得其力矣。 人心自安而禍亂自止矣。 臣愚以爲刑法。 所以禁亂也。 人君所恃以存安者也。 刑法一搖。 禁亂之具先毀。 力未得而禍先至。 心未安而亂不止矣。

신우(辛禑)와 신창(辛昌)은 우리 왕씨의 왕위를 훔쳤으므로 실로 조종(祖宗)의 죄인입니다. 왕씨의 자손과 신하들이 함께 그들을 원수로 여깁니다. 그런데도 그의 족당[族姻]과 당여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으시려거든 그들을 사방의 변두리로 내쫓은 뒤에야 사람과 신령의 마음이 통쾌해질 것입니다. 옛날에 무재인(無才人: 측천무후)은 당 고종의 황후로서 자기 아들 중종의 제위(帝位)를 빼앗았습니다. 오왕(五王)이 의를 내세우고 거병하여 무씨를 물러나게 하고 중종을 다시 옹립했습니다. 무씨는 어머니고 중종은 아들이었는데도 친어머니가 아들의 제위를 빼앗은 것입니다. 호씨[胡安國]은 오히려 오왕이 대의로 결단해서 무씨의 죄를 처벌하고 그의 친족을 없애버리지 못한 것을 비난했습니다. 하물며 우와 창은 왕씨에게 무씨 같은 가까운 혈연적 관계도 없으면서 무씨와 같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렇다면 그 족당과 당여의 죄가 어찌 무씨의 종족에만 비견될 뿐이겠습니까? 지난번에 대간에서 간언을 올려서 그들을 외지로 쫓아냈습니다. 비록 천주(天誅)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조종과 신하들의 공분을 조금은 씻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몇 달도 지나지 않아서 그들이 모두 전하의 총애를 입고 부름을 받아 경성(京城)에 모여들어 거리낌없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이제 간관들의 간언으로 그들 몇 사람을 쫓아냈지만, 전하께서 간언을 억지로 따르시면서도 그들을 머무르게 하여 아끼며 돌보려는 마음을 품고 계십니다. 이런 거동이 과연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장수들이 회군하고 왕씨를 옹립할 것을 의논했습니다. 이것은 상천(上天)이 재앙을 내렸던 것을 뉘우치고 조종이 은밀하게 도와서 왕씨가 부흥할 계기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논의를 막아버리고는 끝내 우의 아들 창을 옹립해서 왕씨가 다시 부흥하지 못하게 한 자가 있습니다. 신우를 맞이해서 왕씨의 대를 영영 끊어버리기를 모의한 자도 있습니다. 그들은 난신적자(亂臣賊子)의 무리이므로 왕법(王法)으로 용납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전하께서 벌써 그들의 목숨을 보전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을 먼 곳에 안치해야 옳을 것인데, 모두 집으로 불러들이셔서 위로하고 편안히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마치 그들의 죄가 무고였다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왕씨의 즉위를 막고 가짜 왕씨인 창을 옹립했다는 것은 장수들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직접 공초(供招)하여 자복했으므로 사증(辭證)이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신우를 맞이해서 왕씨의 대를 끊으려 한 것은 김저와 정득후가 앞서 이야기했고, 이림과 이귀생도 뒤에 자복했으므로 사증이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무고라고 여기신다면 세상에 토벌할 난신적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체로 사람의 행동은 공의(公義)에 맞지 않으면 틀림없이 사정(私情)에 맞는 법입니다. 전하께서 이런 거동을 공의에 부합한다고 여기신다면 우ㆍ창의 당여는 모두 조종의 죄인이고, 사정에 부합한다고 여기신다면 우ㆍ창의 당여를 살려두어 뒷날의 우환거리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가령 윤이(尹彝)와 이초(李初)가 친왕(親王)에게 천하의 군대를 움직여 달라고 요청한 것이 어떻게 인정(人情)에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혹여 ‘죄인을 놓아주면 은혜가 그보다 더 클 수가 없으므로 뒷날에 틀림없이 힘이 되어 인심(人心)이 저절로 안정되고 화란(禍亂)이 저절로 멈출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 형법(刑法)은 난리를 막는 것이니 임금이 의지해서 안녕을 보존하는 수단입니다. 형법이 한 번 흔들리면 난리를 막는 도구가 먼저 무너져서 힘이 되기도 전에 재앙이 먼저 닥치고 마음이 편안해지기 전에 난리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請以中宗三思之事明之。 武氏之黨最用事者三思。 中宗以母之親姪。 誅討不加。 待遇甚厚。 自今觀之。 五王旣立武氏之子爲帝。 故三思得免其机上之肉。 則五王不惟有功於中宗。 於三思亦有天地再造之恩也。 讒人之謀。 其初不過自保其身而巳。 爲惡不止。 則馴致其道。 至於亡人之身。 滅人家國。 以底自敗而後已。 如三思者。 豈有古今之殊也。 天人之際。 間不容髮。 吉凶災祥。 各以類應。 今內則百官受職。 庶民安業。 外則上國和通。 島夷讋服。 亂何由生。 讒人交構於下。 則虞憂之象著於上。 客星孛于紫微。 臣恐三思之在於側也。 火曜入于輿鬼。 臣恐終有三思之禍也。 臣等雖遭五王之害。 無足恤也。 爲王氏已成之業惜之也。 若曰。 保無此事。 言之者妄也。 彼中宗之心。 豈不爲保也。 卒貽後人之笑。 臣恐後人之笑今。 猶今之笑古也。 董子曰。 天心仁愛人君。 先出災異以譴告之。 欲其恐懼修省之也。 伏望殿下當用人刑人之際。 不論其親疏貴賤。 一視其功罪之有無。 處之各當其可。 使不相陵。 則任用公而賞罰正。 人事得而天道順矣。 


당나라 중종과 무삼사의 고사로 그 의미를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씨의 족속 중에서 가장 큰 권세를 휘두른 사람이 바로 무삼사(武三思)입니다. 중종은 그가 어머니의 친조카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고 몹시 후하게 대우했습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오왕(五王)이 무씨의 아들을 황제로 옹립했기 때문에 무삼사가 도마 위의 고기 꼴이 되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왕은 중종에게만 공을 세운 것이 아니라 무삼사에게도 천지(天地)가 다시 살려준 은혜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삼사는 이것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죄가 세상 사람들에게 용납되지 않을까 두려워해서 밤낮으로 “권세가 막중하고 공을 믿고 우쭐댄다”며 오왕을 참소하여 중종의 마음을 현혹했습니다. 중종은 무삼사가 자신을 아낀다고 여겨서 그를 가까이했고, 오왕은 권세가 막중하다고 여겨서 멀리했습니다. 오왕은 날로 소원해지고 무삼사는 날로 친밀해져서 결국은 오왕이 죽임을 당하고 중종도 시해당했습니다. 설령 중종이 잘못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공신들의 목숨을 보전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데 불과했지, 자신이 무삼사의 손에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을 알았겠습니까? 혈연관계로 말한다면 어머니의 조카요, 은혜로 말하면 그의 목숨을 살려준 것인데도 힘은 얻지 못하고 화만 입었습니다. 참소하는 자를 믿기가 어려운 것이 이와 같습니다. 참소하는 사람들의 계책은 처음에는 자기 몸을 스스로 지키는 것에 불과하지만, 악행이 멈추지 않고 점점 더 그 방법에 길들여져서 다른 사람의 몸과 국가를 망치는 지경에 이르러서 자기 자신을 망친 뒤에야 그만둡니다. 무삼사 같은 사람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하늘과 사람의 관계는 터럭만큼의 틈도 용납하지 않아서 길흉(吉凶)과 재상(災祥)이 각기 종류에 따라 상응합니다. 이제 안으로는 백관(百官)이 직분을 받고 서민이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며 바깥으로는 상국(上國)과 우호적인 관계를 트고 섬 오랑캐[島夷]가 두려워하며 복종하는데 난리가 무엇으로부터 생겨나겠습니까? 참소하는 사람들이 아래에서 서로 음해하니 걱정하고 근심하는 형상이 위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객성(客星)이 자미성(紫微星)을 침범했다 하니 신은 무삼사 같은 자가 전하의 곁에 있을까 걱정스럽습니다. 화요성(火曜星)이 여귀성(輿鬼星)으로 들어갔다고 하니 신은 끝내 무삼사의 재앙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들이야 오왕처럼 해를 입는다고 해도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만, 왕씨가 이루어 놓은 왕업을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만일 누군가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보장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망령된 것입니다. 중종의 마음이라고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보장하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끝내 후세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신은 오늘날 사람들이 옛날을 비웃듯이 후대 사람들이 오늘날을 비웃을까 두렵습니다. 동자[董仲舒]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심(天心)이 임금을 사랑하고 아끼면 먼저 재이를 일으켜서 견책하여 임금이 두려워하며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전하께서 사람을 발탁하거나 형벌을 내리시는 경우에는 친한지 소원한지, 귀한지 천한지를 따지지 않고 한결같이 공죄(功罪)가 있는지 없는지만을 보셔서 각각 마땅하게 처리해서 서로 침범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재를 기용하는 일이 공정해지고 상과 벌을 내리는 일이 바르게 되어 인사(人事)도 잘 풀리고 천도(天道)도 순조로울 것입니다.



伏讀敎書曰。 民弊未除而財用妄費歟。 下情未達而冤抑未伸歟。 茂異之才未擧者。 誰歟。 讒佞之徒未斥者。 誰歟。 臣聞三司會計。 佛神之用居多焉。 財用之妄費者。 莫斯若也。 然佛神之害。 自古難辨也。 爲其徒者曰。 此好事也。 善事也。 歸我者國可富也。 民可壽也。 爲人君者聞是說而樂之。 殫其財力。 諂事佛神。 人有言之者。 則以爲我事佛而彼非之。 我善而彼惡也。 我道而彼魔也。 我之事佛神。 爲富國也。 爲壽民也。 非爲我也。 持是說以固其心。 而人之言莫得以入也。 殿下卽位以來。 道場高峙於宮禁。 法席常設於佛宇。 道殿之醮無時。 巫堂之祀煩瀆。 此殿下以爲善事而不知其實非善事。 以爲富國而不知國實瘠。 以爲壽民而不知民實窮。 雖有言之者。 擧皆不納。 不自以爲咈諫。 是臣所謂爲善福壽之說先入之也。 昔梁武帝屈萬乘之尊。 三舍身爲寺家奴。 殫江南之財力。 大起佛塔。 其心豈以爲非利而苟爲之也。 匹夫作亂。 身遭霸辱。 子孫不保。 而國家隨之。 佛氏所謂修善得福者。 果安在哉。 此猶異代也。 玄陵崇尙佛敎。 親執弟子之禮於髡禿之人。 宮中之百高座。 演福之文殊會。 無歲無之。 雲菴之金碧。 輝映山谷。 影殿之棟宇。 聳于霄漢。 財殫力竭。 怨讟竝興。 而皆不恤。 事佛可謂至矣。 卒不獲福。 豈非明鑑乎。 周末。 神降于有莘。 太史過曰。 國家將興。 聽於人。 國家將亡。 聽於神。 周果以亡。 由是言之。 事佛事神。 無利而有害可知矣。 伏望殿下申命有司。 除祀典所載外。 凡中外淫怪諂瀆之擧。 一皆禁斷。 則財用節而無所妄費矣。 殿下卽位以來。 人或犯罪。 有不問者。 有放免者。 疑若無冤抑之未伸者也。 然赦者姦人之幸。 良善之賊也。 則其數赦。 乃冤抑之所在也。 近者臺諫以宗社大計。 上書論執。 皆遭放逐。 臣恐冤抑之未伸。 茂才之未擧者。 此其時也。 至於讒佞之人。 蹤迹詭祕。 言語隱密。 難可得而料也。 大抵君有過則明爭之。 人有罪則面折之。 落落不合。 矯矯獨立。 不畏他人之議者。 正士也。 祕其蹤迹。 惟懼人知。 在衆不言。 獨對浸潤者。 讒佞之人也。 殿下於外而士大夫。 內而小臣宦寺。 試以臣言觀之。 讒佞之情可得矣。


교서를 받들어 읽어보니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민폐(民弊)가 모두 사라지지 않아서 재용(財用)에 마음대로 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일까? 아랫사람들의 사정이 모두 진달되지 않아서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이 풀어지지 않은 경우가 있어서일까? 뛰어난 인재 중에 아직 누군가 발탁되지 않은 자가 있어서인가? 참소와 아첨을 일삼는 이들 중에 아직 누군가 쫓겨나지 않아서인가?” 신이 듣기로는 삼사(三司)의 회계에서 부처와 신[佛神]에 관한 용처(用處)가 많다고 합니다. 재용(財用)이 제멋대로 쓰이는 것이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부처와 신의 해악은 예로부터 분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 [부처와 신을 섬기는] 무리들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이것은 좋은 일이고 선한 일이다. 우리에게 귀의하면 나라가 풍족해질 수 있고 백성도 장수할 수 있다.” 임금은 이런 말들을 듣고 즐거워하면서 자신의 재력을 탕진하고 부처와 신을 아첨하며 섬깁니다. 그에 관해 간언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내가 부처를 섬기는데 저들이 비방하니, 나는 선하고 저들은 악하다. 나는 도를 따르며 저들은 마귀를 따른다. 내가 부처와 신을 섬기는 것은 나라를 풍족하게 하기 위해서요, 백성을 장수하게 하기 위해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꼭 붙들고 그 마음을 굳게 먹어서 다른 사람의 간언이 받아들여질 수가 없습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뒤로 궁궐에 도량(道場)이 높이 치솟고, 불당(佛堂)에는 항상 법회(法會)가 열립니다. 도전(道殿)의 초제(醮祭)는 시도 때도 없이 열리고 무당의 제사는 번잡하고 너저분합니다. 이것은 전하께서 부처와 신을 섬기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실제로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풍족하게 한다고 생각하시지만 실제로는 나라가 궁핍해지고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백성을 장수하게 한다고 여기시지만 실제로는 백성이 곤궁해지고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간언을 올리는 사람이 있어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스스로 간언을 거스른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신이 ‘선행과 복과 장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 것이 전하에게 선입견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양 무제는 천자의 귀한 몸을 굽히고 세 번이나 자신을 희사하여 절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남의 재력을 탕진해서 불탑을 크게 세웠습니다. 그의 마음이 이런 일들을 이롭지 않다고 여겼다면 구차하게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필부가 반란을 일으키자 자신은 치욕을 당하고 자손은 보존되지 못했으며 나라도 따라서 망해버렸습니다. 부처가 ‘선(善)을 기르고 복을 얻는다’고 한 것이 과연 어디에 있는 겁니까? 이것[양 무제의 고사]은 그래도 다른 시대의 일입니다. 공민왕[玄陵]은 불교를 숭상해서 머리를 빡빡 깎은 중에게 몸소 제자의 예를 지켰습니다. 궁중에는 백고좌(百高座)가, 연복사(演福寺)에는 문수회(文殊會)가 열리지 않는 해가 없었습니다. 운암사(雲庵寺)의 금벽(金璧)은 휘황찬란하게 산과 계곡을 비추고 영전(影殿)의 용마루와 추녀는 하늘[霄漢]에까지 솟았습니다. 재력이 고갈되고 원망이 한꺼번에 일어나는데도 전혀 돌아보지 않았으니 부처를 섬기는 것이 극진하다고 할 만합니다. 하지만 끝내 복을 얻지 못했으니 좋은 본보기가 아니겠습니까? 주나라 말기에 신(神)이 신(莘) 땅에 내려오자, 태사(太史) 과(過)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라가 흥성하려 할 적에는 사람의 말을 듣고, 나라가 망하려 할 적에는 귀신에게 듣는다.” 그리고는 주나라가 정말로 망해버렸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부처와 신을 섬기는 것이 아무런 이익도 없고 해악만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유사(有司)에 명을 내려서 사전(祀典)에 기재된 것을 제외하고는 중외의 모든 음란하고 더러운 제사를 모두 금지하십시오. 그러면 재용이 절약되어 제멋대로 쓰이는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뒤로 간혹 죄를 짓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문책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방면해준 사람도 있습니다.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을 펴지 못한 사람은 없는 듯합니다만, 사면은 간사한 사람들의 행운이고 선량한 사람들의 적이니 잦은 사면은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이 있게 되는 이유입니다. 근래에 대간이 종사(宗社)의 대계(大計)를 간언하려고 글을 올려 논집(論執)했으나 모두 쫓겨났습니다. 신은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이 펴지지 않고 뛰어난 인재들이 발탁되지 않는 것이 아마도 이때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참소하고 아첨하는 자들로 말하자면, 행적을 속이고 감추며 말은 은밀하게 해서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대개 임금에게 잘못이 있으면 분명하게 간쟁하고 다른 사람에게 죄가 있으면 면대해서 꾸짖으며, 다른 사람의 뜻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꿋꿋이 홀로 서서 다른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바른 사(士)입니다. 자신의 행적을 감추고는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을 때는 말하지 않다가 독대해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은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람입니다. 전하께서 신의 말을 가지고 시험 삼아서 밖에서 사대부(士大夫)를, 안에서 소신(小臣)과 환시(宦寺)를 보신다면 참소하고 아첨하는 사람의 실상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人雖至愚。 皆知自愛。 至於妻子之計。 孰無是心。 昔漢成帝時。 日有食之。 言者皆以爲外戚用事之象。 成帝疑之。 問於張禹。 禹以身老而子孫微弱。 恐得禍於外戚。 不明言其故。 卒使王莽移漢鼎。 谷永輩直攻成帝。 略無忌憚。 至於王氏之用事。 畏避不言。 漢室卒以亡。 亦爲妻子計而不暇及漢室也。 臣雖狂妄。 不至病風。 敢不自恤乎。 臣以一身。 孤立於群怨之中。 非不知言出而禍至。 然殿下以不諱問。 臣敢不以切直對。 此臣所以寧得禍而不恤。 切言而不諱者也。 伏望殿下留神採擇。 以白臣忘身徇公之意。 萬死無憾。 


사람이라면 아무리 어리석어도 다들 자신을 아낄 줄을 압니다. 처자의 생계를 생각하는 것이라면 누군들 이런 마음이 없겠습니까. 옛날 한 성제 때 일식이 있었는데, 그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들은 모두 외척이 권력을 휘두를 형상이라고 여겼습니다. 성제가 의심스러워서 장우(張禹)에게 그에 관해 질문했습니다. 장우는 자신은 늙고 자손은 미약하여 외척에게 화를 입을까 걱정하면서 그 까닭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가 결국 한나라가 왕망에게 넘어가게 했습니다. 곡영(谷永)의 무리는 성제를 직접 공격할 때는 거리낌이 없다가도, 왕씨가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며 간언하기를 피하다가 한나라가 결국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처자식의 생계를 생각하느라 한실(漢室)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신이 비록 광망(狂妄)하기는 하지만 병을 앓느라 본성을 잃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는데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 한 몸으로 여러 원한을 품은 이들 사이에 홀로 서 있으니 말을 꺼내면 재앙이 이를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거리낌없기 물으시니 신이 절실하고 올곧은 말로 대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차라리 화를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근심하지 않고 절실한 말을 하며 숨기지 않는 까닭입니다. 전하께서 이 글에 관심을 두시고 채택하셔서 신이 자신의 몸을 잊고 공의를 따르는 마음을 밝혀주신다면 만 번 죽어도 유감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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