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96

앵콜요청금지 이야기를 나누면 다른 화제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꼭 정치 사회 이슈들을 끄집어내면서 '논리'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여러 명 있는데, 작년부터 이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해 왔다.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그들의 그런 태도가 일종의 '허세'라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들의 논변은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정작 논리의 허술함을 지적 받으면 어쩔줄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논리"는 정말로 어떤 실체적인 사실을 파악하고 판단하는 수단이라기보다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자신을 꽤 유능한 사람인 양 포장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그들이 감추려고 하는 약점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 능력에 특히 약점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처지와 감정.. 2025. 7. 6.
저널리즘 전통적인 저널리스트들은 유튜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저널리스트들은 자신들이 사실을 다루는 부분에서 유튜버보다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엄격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가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한 말은 유튜브 뉴스에 대한 직업 저널리스트의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소비자가 유튜브를 골고루 돌아다니며 정보를 습득하지 않는다. 선택적 노출은 유튜브가 더 심하다." "언론도 정파성이 있지만 유튜브는 정파성이 더 심하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그런데 나는 그런 인식 자체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콘텐츠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할 것이라는 전제 자체에 문제가 있고, 저널리스트들의 위선과 무능함에 대한 비판적·대안적 성찰이 없다는 점에서 진정.. 2025. 7. 5.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1. 졸업한 학교를 방문했다가 옛날 생각이 났는데, 이소라가 부르는 이 노래도 생각났다. 이소라가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 가수인지 보여주는 영상이라고 생각한다. 2. 생각해보면, 사람도 다르고 구체적인 사안도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매번 똑같은 이유로 상처 받고 화를 낸다. 언제나 늘 그랬다.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자기 일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어야 내가 상처 받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의 마음을 돌보는 데 훨씬 유용하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은 어지간하면 잘 변하지 않으니까. 2. 일상에서 적절하지 않게 쏟아낸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을 추적해가며 자책하는 것보다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에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되짚는 일이 좀 더 생산적.. 2025. 7. 2.
백종원의 몰락 백종원에 대한 비판은 단지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김재환 씨의 지적처럼 백종원과 관련된 이슈들은 한국 프랜차이즈가 가진 야만성, 한국 지자체의 무능함과 부도덕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김재환 씨의 영상을 주의 깊게 보는 것은 가맹점을 남설해서 프랜차이즈 본사만 배불리는 것을 하지 못하게 가맹사업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또 지역 토호의 잇속을 챙겨주기 바쁜 지역 축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아주 공감하기 때문이다. 김재환 씨의 문제 제기와 근거, 더본코리아의 반론들을 종합해보면 전체적으로 김재환 씨가 지적한 지적들은 매우 개연성 있다. 더본코리아의 반론은 대단히 허술하며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방어하지도 못한다. 한편으로는 백종원이 염치 없는 사람이라는 .. 2025. 7. 1.
정치학과 역사학 아주 우연히, 조선왕조실록의 "규범적 이상"을 재구성하고 실록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제시하려 한 정치학 분야의 논문을 보았다. 이 연구의 논점을 거칠게 요약한다면, 조선왕조실록은 '정치적 텍스트'로서 사건이나 인물의 시비선악(是非善惡)에 관한 당대인의 공적 합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당대인이 공유했던 "규범적 이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것은 이 글의 강점이다. 다만 이 글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근래의 정치학 연구가 기존의 한국사 연구를 비판하며 내놓는 대안들에 관해서 생각이 많아진다. 그동안 여러 사회과학자들은 한국사 연구자들이 이론 공부를 도외시한다고 비판해왔다. 물론 그런 지적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실증에만 천착하는 연구들이 쏟아져나오는 현실을 보면 그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한국사 .. 2025. 6. 19.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 (1) 1장 닥나무와 한반도 종이의 재발견(이정, 2023,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 푸른역사) 1. 서두 (1) 중국의 종이 발명 ① 후한 시기 채륜(蔡倫): 죽간과 비단의 대안 → 종이(105년)“나무껍질(樹膚) 삼베 조각(麻頭) 및 헌 헝겊(敝布)과 그물(魚網) 따위를 사용하여 종이를 만들었다”(『後漢書』)② 특징: 간단한 제작 공정, 종이의 가벼운 무게 (2) 제지술의 전파: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는 오랜 후에야 전파됨 ① 한반도 이외 지역: 제지술 구현의 어려움종이 만드는 기술의 실행은 “체화된 암묵지”를 필요로 하는 행위제지 기술의 전파는 재료의 확보, 작업 공정의 분담 등 물질적·사회적 관계의 복제를 수반하는 행위③ 한반도: 닥나무의 활용 → 저자가 주목하는 지점“닥.. 2025. 6. 9.
종로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종로에 갔다. 종로가 알게 모르게 참 많이 바뀌었다. 20대의 기억이 많이 묻어있는 장소다. 그러나 이제 나는 20대가 아니고, 지나가는 것들을 보내주어야 한다.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관계 중 대부분은 사실 의미 없는, 나 혼자 붙들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제 그런 무의미한 관계들도 정리한다. 지금의 내 일상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2025. 5. 14.
완벽주의 점점 무언가를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게 된다. 종종 어떤 일들은 시작하지 않고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그렇게 행동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니 결국 내가 가진 완벽주의적인 강박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책 한 권을 읽으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교열 보듯이 읽게 되니 읽는 속도도 더디고 글도 잘 읽지 않게 된다. 글을 정리하려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내 말투로 소화해서 정리를 하려고 하니 정리를 하면 시간이 많이 든다. 일을 제대로 할 게 아니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은 "그런 식으로 일할 거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마"이다. 이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 것 같다.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잘 참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2025. 5. 11.
드라마 〈오늘의 탐정〉에 관한 생각들 드라마 〈오늘의 탐정〉에 관한 생각들 2021.02.17   1. 연초에 우연히 〈오늘의 탐정〉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는 유학자가 아니니 상관 없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잔인하거나 공포스러운 것에 큰 자극을 느끼지 않는 편이라 귀신 호러물은 잘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시청한 것은 작가가 작품에 굳이 '귀신'을 등장시킨 이유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분노 범죄가 약자를 향한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데, 이를 단순히 사이코패스의 소행이라 넘기려는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분노 범죄를 저지르는 연쇄살인범, 분노로 인해 남을 가해하는 사람 등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치 이들을 유령 보듯이 못 본 척 하.. 2024. 10. 6.
정조는 ‘마키아벨리스트’인가? 정조는 ‘마키아벨리스트’인가?― 정병설의 『권력과 인간』을 읽고 ― 2020.04.   국문학자 정병설의 책, 『권력과 인간』은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배경과 의미를 다시 파악하려 한 책이다. 저자는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자라고 보는 기존의 설명에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사도세자가 그의 ‘광증’에서 비롯된 ‘반역’으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고 보았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의 아들 정조에 의해 미화되었으며, 후대에 이 자료를 근거로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자라는 통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설명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정치사적 측면에서 바라보기보다 ‘개인사’ 혹은 ‘가족사’의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특징이 있다. 저자가 이런 설명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주로 사도세자의 처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 2024. 10. 5.
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의 역사 단군과 기자에 대한 인식의 역사  2020.5.25  이른바 ‘개천절’(開天節)은 한국의 국경일 중 하나다. ‘국조’(國祖) 단군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내세워 ‘단군조선’을 건국한 것을 기리는 날이다. 단군이 실존했던 인물인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하지만 단군이 실존했는지와는 별개로, 단군을 민족이나 국가의 시조로 여기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이런 인식은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단군에 대한 인식이 수백 년 동안 한결같았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단군을 바라보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랐고, 동시대의 인물들이 단군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는 단군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시대와 인물에 따라 살펴보려 한다. .. 2024. 10. 4.
신흥유신과 신진사대부 고려 말의 정치세력으로서 '사대부'의 개념을 두고 여러 논의가 존재하는데, 그중에는 사대부의 개념과 별도로 '신흥유신'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입론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익주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그는 '신흥유신'과 '신흥사대부'라는 용어를 엄밀하게 구분해서 사용한다. 이것은 1998년에 발표된 그의 논문 서두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신흥유신은 고려 후기에 성리학자로서 과거에 급제한 관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회경제적 기반을 기준으로 구분되는 세족과 사대부가 모두 포함되는 개념이다. 단지 이들은 성리학자로서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개혁의지를 공유하고 있었고, 좌주·문생 관계를 통해 집단을 형성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흥유신이 주도하는 개혁의 흐름 속에서 신흥유신 가운데 사대부.. 2024.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