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닥나무와 한반도 종이의 재발견
(이정, 2023,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 푸른역사)
1. 서두
(1) 중국의 종이 발명
① 후한 시기 채륜(蔡倫): 죽간과 비단의 대안 → 종이(105년)
- “나무껍질(樹膚) 삼베 조각(麻頭) 및 헌 헝겊(敝布)과 그물(魚網) 따위를 사용하여 종이를 만들었다”(『後漢書』)
② 특징: 간단한 제작 공정, 종이의 가벼운 무게
(2) 제지술의 전파: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는 오랜 후에야 전파됨
① 한반도 이외 지역: 제지술 구현의 어려움
- 종이 만드는 기술의 실행은 “체화된 암묵지”를 필요로 하는 행위
- 제지 기술의 전파는 재료의 확보, 작업 공정의 분담 등 물질적·사회적 관계의 복제를 수반하는 행위
③ 한반도: 닥나무의 활용 → 저자가 주목하는 지점
- “닥나무를 인간의 ‘발명’에 수동적으로 이용되기만 한 재료나 도구로 바라보면 한반도에서 닥종이를 만들게 된 일은 이미 발명된 기술에 재료만을 대체해 넣은, 별것 아닌 일이 된다. (…) 문자와 단편적인 관찰이 만들어놓은 미로를 넘어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기로 한 선택의 과학기술적 의미를 헤아려보고자 한다.”(44쪽)
2. 기록의 미로
(1) 말하지 않아도 모든 종이가 닥종이
① 성현이 본 조선 종이: 조선 제지의 전성기 = 닥나무 이외의 재료로 종이를 만들던 시기
- “세종이 조지서(造紙署)를 설치하여 표전지(表箋紙)와 자문지(咨文紙)를 제작하는 것을 감독하게 하고, 또 서적 찍는 여러 색지(色紙)를 만드니 그 품종이 한가지가 아니었다. 고정지(蒿精紙)ㆍ유엽지(柳葉紙)ㆍ유목지(柳木紙)ㆍ의이지(薏苡紙)ㆍ마골지(麻骨紙)ㆍ순왜지(純倭紙)가 그 정묘함이 지극하여 찍어낸 서적도 역시 좋았다. 지금은 다만 고정지와 유목지뿐이요, 자문지ㆍ표전지도 또한 옛날같이 정묘하지 못하다.”(『용재총화』 권10)
② 기록의 한계: “닥나무는 조선 제지에서 당연한, 변치 않는 주인공”
- 다양한 재료로 종이 제작을 실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종이에 닥나무가 사용됨
- 조선 초기 종이의 닥나무 비중은 작지만 16세기 이후로 점차 증가
(2) 곡(穀)과 저(楮), 닥나무와 꾸지나무의 혼동
① 닥나무와 꾸지나무의 혼동
- 중국 제지기술사 관련 저작에서는 채륜의 곡지(穀紙)를 닥나무 종이로 간주하거나 곡(穀)이 곧 저(楮)와 통용된다고 설명함
- 조선에서는 『산가요록』부터 『농정회요』까지 여러 책에서 ‘곡’과 ‘저’가 통용된다고 설명함
② 실상: 중국과 한국 사료에서 ‘곡’과 ‘저’는 혼용되지 않음
- 한국 사료에서 ‘저’를 주로 쓰고 ‘곡지’라는 용어는 잘 사용하지 않으나 중국에서 ‘저지(楮紙)’라는 용어는 잘 사용되지 않음.
- ‘곡’은 ‘곡상(穀桑)’, ‘곡저(穀楮)’로 쓰여 꾸지나무를 의미함. 꾸지나무는 외목대가 올라가는 큰키나무로 떨기나무인 닥나무와 다른 나무임.
3. 경험의 미로
(1) 일제 강점이 만든 혼돈
① 일본 제지 기술에 관한 서술
- 다드 헌터는 “중국의 일부였던 한국”의 담징이 꾸지나무를 이용한 제지법을 일본에 전해준 것으로 기록했는데, 이는 꾸지나무와 닥나무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료를 참조했기 때문으로 추정됨.
- 일본 제지 재료에 관하여 상세하게 기술했으나 꾸지나무, 산닥나무, 삼지닥나무를 직접 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임. 산닥과 삼지닥 나무는 좋은 종이를 생산하는 데 적합한 재료였지만 팥꽃나무과로 뽕나무과인 닥나무와는 다른 특성을 가짐.
② 한국 제지법에 관한 서술
- 다드 헌터는 한국의 제지법을 조사했으나 식민지의 상황 탓에 제한된 견문만 쌓을 수 있었고, 일본과 구별되는 한국의 제지법을 발견하지 못했음.
- “[공업전습소는] 일본에 제지 기술을 전한 한국이 천여 년간 이 기술에 거의 진보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일본의 더 솜씨 좋은 제도를 전하도록 세운 것”(53쪽)
(2) 일제 강점이 만든 경험의 단절
① 1890년 프랑스 서지학자 모리스 쿠랑의 한국 방문
- 모리스 쿠랑: 유럽 도서관에 소장된 한국 책 3,821종에 대한 서지를 작성한 바 있음. 한국 방문 때 길거리 책의 종이나 제지 과정 등을 기록함
- 한국어 번역본: 모리스 쿠랑, 이희재 역, 1994 『한국서지』, 일조각
- 일본식 제지법 유입 이전의 현장 경험담으로 추정되는 닥나무 가공 과정을 기록함: “한국의 종이는 한국과 일본에서 다량으로 자라는 뽕나무의 일종인 저(楮), 즉 닥나무의 껍질로 만들어지는데 이 껍질을 일정 기간 물에 담갔다가 꺼내어 두드리고 납작하게 만들어 햇빛에 말려 희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껍질은 절대로 완전히 빻아지는 법이 없어 종이 속에 상당 분량 섬유질이 그대로 남게 된다. 가장 양질의 종이는 가을에 만들어진다.”(54~55쪽)
② 1960년대 제지법의 전승 상황: 조선 제지법은 이미 단절된 상태
- “조지서가 있던 세검정에서 만난 당시 가장 나이가 많은 61세의 지장은 조선시대의 종이 이름 중 아는 것이 없었고, 자신이 만드는 종이는 닥이 부족해 모조지 조각 등을 섞어 종이 품질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 조선시대에 창호지를 진상했다는 77세의 장인이 있었다. 5대가 제지업을 했다는 이 노인도 닥이 부족해 순닥지는 만들지 못하며(…)”(55쪽)
- 닥나무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 공통으로 지적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띔.
③ 김영연의 한지 기술 복원 노력
- 문헌 자료 고증 및 닥나무 껍질의 성분 분석 등을 통해 한지 기술에서 닥이 차지하는 역할을 부각함.
- 한계: 작업 환경, 지역별 차이 등을 고려하지 못했고, 그가 제시한 18단계의 제지법 중 도침 공정이 누락됨.
- 도침: ‘먹이나 인쇄액이 번지지 않도록 하는 번짐 방지 방법으로 종이에 방망이질하는 것’
4. 사물이 말하는 발명
(1) 법장의 저, 신라의 저
① 한반도에서 닥종이 기술의 활용
- 닥나무 사용 이전: 고구려의 경우 마지(麻紙)를 종이로 사용하였으나 새로운 종이 재료를 개발하면서 닥이 활용되었을 것.
- 중국학자 판지싱: 신라가 754~55년경에 중국 화엄종 조사 법장(法藏)의 『화엄경전기』(702년)에 적힌 닥종이 제작 기술을 베낀 것으로 파악함.
- 저자의 반론: 『화엄경전기』에서는 ‘저’를 심고 3년을 기다려 가지를 수확했지만, 신라는 곧바로 수확하여 종이를 제작함. 즉, 『화엄경전기』의 ‘저’는 큰키나무이고, 신라의 ‘저’는 떨기나무임.
- 한자가 실제의 대상을 정확하게 지칭하지 못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서 눈에 띔. 실제로 농서, 기술서, 의궤 같은 것을 보면 실제의 대상을 한자로 표기해놓았는데, 한자로 표현된 그 글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문제가 있음. 한자가 가하는 제약을 지적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함.
②아시아 제지 재료의 차이
- 중국: 9세기경부터 대나무로 종이를 만드는 데 성공 → 죽지(竹紙) 사용의 활성화
- 일본: 나무껍질 원료를 지역별로 다양화
- 한국: 닥나무를 활용한 종이 제작에 천착
(2) 명품 ‘고려지’의 탄생
① 한반도 닥종이만의 특징 형성 → ‘고려지’의 형성(10세기 이후)
- 『계림지』(왕운): “고려 닥종이는 빛이 희고 사랑스러워 백추지(白硾紙)라고 한다.”
- 『부훤잡록』: 고려의 ‘만지(蠻紙)’ 언급
- “중국에서 나지 않는 것은 외이(外夷)에게서 많이 가져다가 쓰므로, 당나라 사람들의 시 가운데 만전(蠻牋)이란 글자를 많이 쓰는 것도 역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고려에서는 해마다 만지(蠻紙)를 조공하는데, 서권(書卷)을 장정하면서 이것을 많이 쓴다.”(한치윤, 『해동역사』권27, 物産志, 文房類 에 재수록됨)
5. 다양한 사물과 연대하는 기지
(1) 닥나무와의 대화(참고: 국가문화유산)
① 닥나무: 경상도·전라도에 다수 식재됨. 좋은 품질의 닥 껍질은 강원도·충청북도에서 생산.
② 닥나무 가지의 쪄낸 후 껍일을 벗겨냄 → 껍질 겉면을 제거한 후 속껍질을 개울에 씻어 햇빛에 건조함
(2) 첫 번째 두드리기, 추
① 섬유의 분해: 속껍질을 잿물에 불려 삶음
② 추(硾): 잿물에 삶은 닥을 돌 위에 놓고 쳐서 적절히 빻아내는 공정
- 닥나무의 긴 섬유를 활용하기 위한 선택으로 나무껍질을 삶은 후 맷돌에 곱게 갈아내는 중국 및 일본과는 다른 방식의 기술임
③ 빻아낸 닥을 물에 풀어낸 후에 발로 얇게 떠내면 종이가 만들어짐
(3) 닥 섬유와 연대하는 닥풀
① 닥풀[黃蜀葵]: 뿌리에 점액성의 물질을 다수 함유한 식물
- 닥나무 섬유가 물에 고루 뜨게 하고 서로 엉겨붙어 종이가 되도록 함. “닥풀의 농도가 낮으면 종이를 뜰 때 물 빠짐이 빨라서 두꺼운 종이가 되고, 농도가 높으면 물 빠짐이 느려서 얇은 종이가 되는 식의 조절도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젖은 종이를 겹쳐 놓더라도 붙지 않아서 떼기가 좋다고 한다.”(69쪽)
(4) 흘림 뜨기와 두 번째 두드리기, 도침(참고: 국가문화유산)
① 흘림 뜨기(외발 뜨기): 긴 닥섬유를 활용하기 위한 공정 → 종이가 훨신 단단해짐
- “종이 뜨는 발틀을 한쪽만 고정해서 섬유를 떠오르게 한 다음 전후, 좌우 모든 방향으로 물을 흘려보내 섬유가 서로 얽히도록 하는 방식”(70쪽)
② 도침: 건조한 종이를 다듬이질 하듯이 두드려 밀도를 높이는 과정
- “이 공정은 묵의 번짐을 조절하는 데도 효과를 발휘해서 중국 서화가들의 사랑을 받았다.”(71쪽)
- 천따추안은 한반도의 도침법이 송대 저작에 거론된 ‘추지법’을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근거가 없음. 오히려 중국 문인이 고려지를 흉내 내려고 하면서 도침법을 흉내내었을 가능성이 있음(근거: 송대 서법가 미불의 사례)
- “미원장(米元章)이 일찍이 논서(論書) 1편과 잡서(雜書) 10편을 가지고 있었는데, 계림지(鷄林紙)를 사용하여 장대형 가보(張大亨嘉父)에게 써서 주었는데, 이는 미로(米老)의 득의(得意)의 서(書)이다.” (한치윤, 『해동역사』권27, 物産志, 文房類 에 재수록됨)
(5) 한반도 종이의 재발명
① ‘발명’, ‘전파’ 서사의 한계: ‘기원’과 ‘아류’의 도식 → 서구중심주의, 제국주의의 잔향
- 서구중심주의, 제국주의: “전파 과정의 제국성은 비판받아 마땅하며, 현지화 과정에서 서구의 발명에 대한 의미 있는 저항과 창의적 변용이 모두 있었지만, 발명이라는 가장 의미심장한 일은 결국 서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73~74쪽)
② 착상 실현 과정의 복잡성: 설계의 구현 과정은 ‘전파’된 것의 온전한 수용 혹은 변용 과정이 아니라 “재발명”의 과정
③ 사물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
- “한반도 제지에 대한 역사 서술도 마찬가지 문제를 노정해왔다. (…) 꾸지나무와 삼지닥나무와 닥나무라는 사물의 차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매 단계 특별한 한반도 장인들의 기지를 중국이나 일본의 것과 구별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74쪽)
- “사물의 차이, 그 사물이 지역의 다른 사물이나 환경과 일으키는 상호작용, 사물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장인들의 세심한 기지에 주의를 기울여서 바라보면 (...) 하나하나 공정과 노동에 기지가 들어간 일이었다.”(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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