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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저 정리/조선시대사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 (1)

by 衍坡 2025. 6. 9.

1장 닥나무와 한반도 종이의 재발견

(이정, 2023,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 조선의 과학기술사, 푸른역사)

 

1. 서두

 

(1) 중국의 종이 발명

 

후한 시기 채륜(蔡倫): 죽간과 비단의 대안 종이(105)

  • “나무껍질(樹膚) 삼베 조각(麻頭) 및 헌 헝겊(敝布)과 그물(魚網) 따위를 사용하여 종이를 만들었다”(『後漢書』)

특징: 간단한 제작 공정, 종이의 가벼운 무게

 

 

(2) 제지술의 전파: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는 오랜 후에야 전파됨

 

한반도 이외 지역: 제지술 구현의 어려움

  • 종이 만드는 기술의 실행은 “체화된 암묵지”를 필요로 하는 행위
  • 제지 기술의 전파는 재료의 확보, 작업 공정의 분담 등 물질적·사회적 관계의 복제를 수반하는 행위

한반도: 닥나무의 활용 저자가 주목하는 지점

  • “닥나무를 인간의 ‘발명’에 수동적으로 이용되기만 한 재료나 도구로 바라보면 한반도에서 닥종이를 만들게 된 일은 이미 발명된 기술에 재료만을 대체해 넣은, 별것 아닌 일이 된다. (…) 문자와 단편적인 관찰이 만들어놓은 미로를 넘어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기로 한 선택의 과학기술적 의미를 헤아려보고자 한다.”(44쪽)

 

 

2. 기록의 미로

 

(1) 말하지 않아도 모든 종이가 닥종이

 

성현이 본 조선 종이: 조선 제지의 전성기 = 닥나무 이외의 재료로 종이를 만들던 시기

  • “세종이 조지서(造紙署)를 설치하여 표전지(表箋紙)와 자문지(咨文紙)를 제작하는 것을 감독하게 하고, 또 서적 찍는 여러 색지(色紙)를 만드니 그 품종이 한가지가 아니었다. 고정지(蒿精紙)ㆍ유엽지(柳葉紙)ㆍ유목지(柳木紙)ㆍ의이지(薏苡紙)ㆍ마골지(麻骨紙)ㆍ순왜지(純倭紙)가 그 정묘함이 지극하여 찍어낸 서적도 역시 좋았다. 지금은 다만 고정지와 유목지뿐이요, 자문지ㆍ표전지도 또한 옛날같이 정묘하지 못하다.”(『용재총화』 권10)

 

기록의 한계: “닥나무는 조선 제지에서 당연한, 변치 않는 주인공

  • 다양한 재료로 종이 제작을 실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종이에 닥나무가 사용됨
  • 조선 초기 종이의 닥나무 비중은 작지만 16세기 이후로 점차 증가

 

(2) ()과 저(), 닥나무와 꾸지나무의 혼동

 

닥나무와 꾸지나무의 혼동

  • 중국 제지기술사 관련 저작에서는 채륜의 곡지(穀紙)를 닥나무 종이로 간주하거나 곡(穀)이 곧 저(楮)와 통용된다고 설명함
  • 조선에서는 『산가요록』부터 『농정회요』까지 여러 책에서 ‘곡’과 ‘저’가 통용된다고 설명함

실상: 중국과 한국 사료에서 는 혼용되지 않음

  • 한국 사료에서 ‘저’를 주로 쓰고 ‘곡지’라는 용어는 잘 사용하지 않으나 중국에서 ‘저지(楮紙)’라는 용어는 잘 사용되지 않음.
  • ‘곡’은 ‘곡상(穀桑)’, ‘곡저(穀楮)’로 쓰여 꾸지나무를 의미함. 꾸지나무는 외목대가 올라가는 큰키나무로 떨기나무인 닥나무와 다른 나무임.

 

 

3. 경험의 미로

(1) 일제 강점이 만든 혼돈

 

일본 제지 기술에 관한 서술

  • 다드 헌터는 “중국의 일부였던 한국”의 담징이 꾸지나무를 이용한 제지법을 일본에 전해준 것으로 기록했는데, 이는 꾸지나무와 닥나무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료를 참조했기 때문으로 추정됨.
  • 일본 제지 재료에 관하여 상세하게 기술했으나 꾸지나무, 산닥나무, 삼지닥나무를 직접 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임. 산닥과 삼지닥 나무는 좋은 종이를 생산하는 데 적합한 재료였지만 팥꽃나무과로 뽕나무과인 닥나무와는 다른 특성을 가짐.

한국 제지법에 관한 서술

  • 다드 헌터는 한국의 제지법을 조사했으나 식민지의 상황 탓에 제한된 견문만 쌓을 수 있었고, 일본과 구별되는 한국의 제지법을 발견하지 못했음.
  • “[공업전습소는] 일본에 제지 기술을 전한 한국이 천여 년간 이 기술에 거의 진보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일본의 더 솜씨 좋은 제도를 전하도록 세운 것”(53쪽)

 

(2) 일제 강점이 만든 경험의 단절

 

1890년 프랑스 서지학자 모리스 쿠랑의 한국 방문

  • 모리스 쿠랑: 유럽 도서관에 소장된 한국 책 3,821종에 대한 서지를 작성한 바 있음. 한국 방문 때 길거리 책의 종이나 제지 과정 등을 기록함
    • 한국어 번역본: 모리스 쿠랑, 이희재 역, 1994 『한국서지』, 일조각
  • 일본식 제지법 유입 이전의 현장 경험담으로 추정되는 닥나무 가공 과정을 기록함: “한국의 종이는 한국과 일본에서 다량으로 자라는 뽕나무의 일종인 저(楮), 즉 닥나무의 껍질로 만들어지는데 이 껍질을 일정 기간 물에 담갔다가 꺼내어 두드리고 납작하게 만들어 햇빛에 말려 희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껍질은 절대로 완전히 빻아지는 법이 없어 종이 속에 상당 분량 섬유질이 그대로 남게 된다. 가장 양질의 종이는 가을에 만들어진다.”(54~55쪽)

1960년대 제지법의 전승 상황: 조선 제지법은 이미 단절된 상태

  • “조지서가 있던 세검정에서 만난 당시 가장 나이가 많은 61세의 지장은 조선시대의 종이 이름 중 아는 것이 없었고, 자신이 만드는 종이는 닥이 부족해 모조지 조각 등을 섞어 종이 품질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 조선시대에 창호지를 진상했다는 77세의 장인이 있었다. 5대가 제지업을 했다는 이 노인도 닥이 부족해 순닥지는 만들지 못하며(…)”(55쪽)
    • 닥나무를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 공통으로 지적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띔.

김영연의 한지 기술 복원 노력

  • 문헌 자료 고증 및 닥나무 껍질의 성분 분석 등을 통해 한지 기술에서 닥이 차지하는 역할을 부각함.
  • 한계: 작업 환경, 지역별 차이 등을 고려하지 못했고, 그가 제시한 18단계의 제지법 중 도침 공정이 누락됨.
    • 도침: ‘먹이나 인쇄액이 번지지 않도록 하는 번짐 방지 방법으로 종이에 방망이질하는 것’

 

 

4. 사물이 말하는 발명

 

(1) 법장의 저, 신라의 저

 

한반도에서 닥종이 기술의 활용

  • 닥나무 사용 이전: 고구려의 경우 마지(麻紙)를 종이로 사용하였으나 새로운 종이 재료를 개발하면서 닥이 활용되었을 것.
  • 중국학자 판지싱: 신라가 754~55년경에 중국 화엄종 조사 법장(法藏)의 『화엄경전기』(702년)에 적힌 닥종이 제작 기술을 베낀 것으로 파악함.
  • 저자의 반론: 『화엄경전기』에서는 ‘저’를 심고 3년을 기다려 가지를 수확했지만, 신라는 곧바로 수확하여 종이를 제작함. 즉, 『화엄경전기』의 ‘저’는 큰키나무이고, 신라의 ‘저’는 떨기나무임.
    • 한자가 실제의 대상을 정확하게 지칭하지 못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서 눈에 띔. 실제로 농서, 기술서, 의궤 같은 것을 보면 실제의 대상을 한자로 표기해놓았는데, 한자로 표현된 그 글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문제가 있음. 한자가 가하는 제약을 지적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함.

아시아 제지 재료의 차이

  • 중국: 9세기경부터 대나무로 종이를 만드는 데 성공 → 죽지(竹紙) 사용의 활성화
  • 일본: 나무껍질 원료를 지역별로 다양화
  • 한국: 닥나무를 활용한 종이 제작에 천착

 

(2) 명품 고려지의 탄생

 

한반도 닥종이만의 특징 형성 고려지의 형성(10세기 이후)

  • 『계림지』(왕운): “고려 닥종이는 빛이 희고 사랑스러워 백추지(白硾紙)라고 한다.”
  • 『부훤잡록』: 고려의 ‘만지(蠻紙)’ 언급
  • “중국에서 나지 않는 것은 외이(外夷)에게서 많이 가져다가 쓰므로, 당나라 사람들의 시 가운데 만전(蠻牋)이란 글자를 많이 쓰는 것도 역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고려에서는 해마다 만지(蠻紙)를 조공하는데, 서권(書卷)을 장정하면서 이것을 많이 쓴다.”(한치윤, 『해동역사』권27, 物産志, 文房類 에 재수록됨)

 

 

5. 다양한 사물과 연대하는 기지

 

(1) 닥나무와의 대화(참고: 국가문화유산)

 

닥나무: 경상도·전라도에 다수 식재됨. 좋은 품질의 닥 껍질은 강원도·충청북도에서 생산.

닥나무 가지의 쪄낸 후 껍일을 벗겨냄 껍질 겉면을 제거한 후 속껍질을 개울에 씻어 햇빛에 건조함

 

(2) 첫 번째 두드리기,

 

섬유의 분해: 속껍질을 잿물에 불려 삶음

(): 잿물에 삶은 닥을 돌 위에 놓고 쳐서 적절히 빻아내는 공정

  • 닥나무의 긴 섬유를 활용하기 위한 선택으로 나무껍질을 삶은 후 맷돌에 곱게 갈아내는 중국 및 일본과는 다른 방식의 기술임

빻아낸 닥을 물에 풀어낸 후에 발로 얇게 떠내면 종이가 만들어짐

 

(3) 닥 섬유와 연대하는 닥풀

 

닥풀[黃蜀葵]: 뿌리에 점액성의 물질을 다수 함유한 식물

  • 닥나무 섬유가 물에 고루 뜨게 하고 서로 엉겨붙어 종이가 되도록 함. “닥풀의 농도가 낮으면 종이를 뜰 때 물 빠짐이 빨라서 두꺼운 종이가 되고, 농도가 높으면 물 빠짐이 느려서 얇은 종이가 되는 식의 조절도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젖은 종이를 겹쳐 놓더라도 붙지 않아서 떼기가 좋다고 한다.”(69쪽)

닥풀

 

(4) 흘림 뜨기와 두 번째 두드리기, 도침(참고: 국가문화유산)

 

흘림 뜨기(외발 뜨기): 긴 닥섬유를 활용하기 위한 공정 종이가 훨신 단단해짐

  • “종이 뜨는 발틀을 한쪽만 고정해서 섬유를 떠오르게 한 다음 전후, 좌우 모든 방향으로 물을 흘려보내 섬유가 서로 얽히도록 하는 방식”(70쪽)

도침: 건조한 종이를 다듬이질 하듯이 두드려 밀도를 높이는 과정

  • “이 공정은 묵의 번짐을 조절하는 데도 효과를 발휘해서 중국 서화가들의 사랑을 받았다.”(71쪽)
  • 천따추안은 한반도의 도침법이 송대 저작에 거론된 ‘추지법’을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근거가 없음. 오히려 중국 문인이 고려지를 흉내 내려고 하면서 도침법을 흉내내었을 가능성이 있음(근거: 송대 서법가 미불의 사례)
    • “미원장(米元章)이 일찍이 논서(論書) 1편과 잡서(雜書) 10편을 가지고 있었는데, 계림지(鷄林紙)를 사용하여 장대형 가보(張大亨嘉父)에게 써서 주었는데, 이는 미로(米老)의 득의(得意)의 서(書)이다.” (한치윤, 『해동역사』권27, 物産志, 文房類 에 재수록됨)

 

(5) 한반도 종이의 재발명

 

발명’, ‘전파서사의 한계: ‘기원아류의 도식 서구중심주의, 제국주의의 잔향

  • 서구중심주의, 제국주의: “전파 과정의 제국성은 비판받아 마땅하며, 현지화 과정에서 서구의 발명에 대한 의미 있는 저항과 창의적 변용이 모두 있었지만, 발명이라는 가장 의미심장한 일은 결국 서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73~74쪽)

착상 실현 과정의 복잡성: 설계의 구현 과정은 전파된 것의 온전한 수용 혹은 변용 과정이 아니라 재발명의 과정

사물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

  • “한반도 제지에 대한 역사 서술도 마찬가지 문제를 노정해왔다. (…) 꾸지나무와 삼지닥나무와 닥나무라는 사물의 차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매 단계 특별한 한반도 장인들의 기지를 중국이나 일본의 것과 구별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74쪽)
  • “사물의 차이, 그 사물이 지역의 다른 사물이나 환경과 일으키는 상호작용, 사물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장인들의 세심한 기지에 주의를 기울여서 바라보면 (...) 하나하나 공정과 노동에 기지가 들어간 일이었다.”(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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