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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리뷰과 단상

정조는 ‘마키아벨리스트’인가?

by 衍坡 2024. 10. 5.

정조는 마키아벨리스트인가?

정병설의 권력과 인간을 읽고

 

2020.04.

 

 

 

국문학자 정병설의 책, 권력과 인간은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배경과 의미를 다시 파악하려 한 책이다. 저자는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자라고 보는 기존의 설명에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사도세자가 그의 광증에서 비롯된 반역으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고 보았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의 아들 정조에 의해 미화되었으며, 후대에 이 자료를 근거로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자라는 통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설명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정치사적 측면에서 바라보기보다 개인사혹은 가족사의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특징이 있다. 저자가 이런 설명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주로 사도세자의 처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다.

 

저자는 사도세자의 죽음이 후대에 미화된 주요 원인이 정조의 역사 왜곡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에 따르면, 정조는 자신의 개인적ㆍ정치적 목적에 따라 사도세자의 죽음을 미화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도세자의 죽음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역적들이 사도세자를 모함하여 발생한 비극으로 기억되었다. 역적은 물론 정조의 정적들이기도 했다. 정조는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사도세자의 죽음을 미화했고, 자신의 외가를 역적으로 몰았으며, 관련된 자료를 없애서 역사를 왜곡했다. 그 결과로 정조의 정적들은 제거되었지만, 사도세자의 광증狂症은 철저히 감춰졌다. 이런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정조는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스트였다. 정조의 마키아벨리스트적인 모습은 심환지와 밀서를 주고받으며 정치적 지시를 내리고 신하를 조종하는 공작행위와도 잘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5부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설명의 문제점은 조선시대의 역사적 맥락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조를 포함한 당시의 정치행위자들은 정치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들이 공유하던 정치의 대원칙은 무엇인가. 그들의 정치 행위가 이루어지던 정치문화는 무엇이었는가. 이런 주제들은 당시 정치 행위의 역사적 의미를 드러내는 데 매우 중요하지만, 저자의 설명은 여기에 유익한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김지영의 논문은 정조 시대의 정치문화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정조에게는 애초부터 사도세자를 추숭할 의사가 없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정조가 생부生父를 추숭하려 하지 않았던 이유다. 정조를 비롯한 18세기 조선의 정치가들에게는 현실의 이해관계와 권력의 향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정치의 대원칙이 있었다. 바로 라는 가치였다. 는 국왕이든 신하든, 그 누구도 함부로 훼손하거나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였다. 이 기준에서 보면 사적인 감정에 따라 사친을 추숭하는 것은 공공의 대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사친을 추숭할 수 없다는 원칙은 왕법王法보다도 상위의 가치를 지닌 공법公法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런 공공의 대원칙을 사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왕으로서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분명하게 인식했던 정조는 애초에 사도세자를 추숭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공공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생부 사도세자를 예우하려 했을 뿐이다(김지영, 2013). 그렇다면 정조가 개인적ㆍ정치적 이유로 사도세자를 추숭하려 했다는 저자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세초하게 만든, 혹은 심환지와 몰래 편지를 주고받던 정조의 모습을 마키아벨리스트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과연 정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기록들을 사료史料라고 생각했을까?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삭제하는 일이 역사 왜곡이었다면, 왜 그 당시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문제 삼지 않았는가? 오히려 그 행위를 역사 왜곡이라고 규정하는 시각이야말로 철저히 현대인의 관념을 투영한 것이다. 한편, 정조와 심환지의 편지 교환을 공작 정치로 규정하는 방식에도 몇 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과연 정조와 심환지는 자신들의 정치적 교신 활동이 당시 정치의 대원칙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을까? 그들이 서로 의견을 조율했던 사안들은 당시의 정치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문제였는가?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정조가 마키아벨리스트였는가 여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 편지의 특정한 문구나 내용뿐만 아니라 그 편지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여러 가지 맥락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의 설명에서는 이런 문제에 관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몇 가지 단편적인 사례만으로 너무나 손쉽게 정조를 마키아벨리스트로 규정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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