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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비망록

세밑

by 衍坡 2024. 12. 27.



1. 또 한 해의 끝이 보인다. 새해를 앞두고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문득, 사람 삶이 참 황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2. 할머니는 생전에 아주 깔끔한 분이었다. 염을 하기 직전에 장의사는 그렇게 깔끔한 시신은 처음 본다고 이야기했다. 체면치레를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내 할머니는 생전에도 그런 분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아주 부지런한 분이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주 어릴 적부터 보아온 할머니는 늘 무언가 일을 하고 계셨다. 밭을 매고 깨를 심고 두부를 만들고 절구질을 하고 술을 빚는 할머니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할머니는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를 않으셨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평생동안 할머니가 낮잠 주무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3.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건 꽤나 복받은 일인 것 같다. 그 점에서 내 삶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돌아보니 내 가치관과 삶의 태도는 많은 부분에서 그 분들에게 배운 것이었다. 하루 종일 지난 일을 생각하니 허전함과 상실감에 마음이 먹먹하다. 모든 일이 엊그제 일만 같다.

4.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에 더 잘 해드릴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잘 못해드린 것들이 생각나고, 그게 참 많이 아쉽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 하고 있나 싶은 반성도 하게 된다. 지나간 인연에 느끼는 후회 만큼,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 해야겠다고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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