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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정님>, 국가주의와 남성주의가 뒤섞인 프로파간다

衍坡 2018. 4. 13. 22:00

<병정님> : 국가주의와 남성주의가 뒤섞인 프로파간다

 

 

2017.09.05

 

 

 

식민지기 전시동원체제(1937~1945)는 당시 한국인들에게 매우 낮선 경험이었다. 물론 일제의 식민통치 자체가 한국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지만, 전시체제기의 폭력과 강압은 1910년대나 1920년대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예컨대, 한국인에게 ‘황국신민’이 될 것을 강요하거나 이들을 전쟁에 동원하던 일제의 정책은 전시체제기 식민통치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식민통치의 주체인 일제도 한국인들에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정책만 구사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강력한 통치 권력도 다양한 조건과 제약 속에서 구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제로서는 전시체제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포장하기 위한 좀 더 ‘세련된’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 결과 전시체제기에 다양한 선전물들이 제작되었는데, 이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방한준 감독의 <병정님>(1944)도 그 중 하나였다. 

 

 

병정님 소개화면

영화가 시작될 때 나오는 소개 화면. "이 작품의 목적은 군대생활에 충만한 대범한 여유, 성실한 인간성을 통한 엄격한 훈련과 가정적인 내무생활을 함께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일제의 전시동원정책에 부응하여 제작된 이 영화는 일제가 자신들의 침략전쟁에 한국인을 동원하는 논리를 잘 보여준다. 그 논리의 핵심은 일본과 조선이 한 몸이라는 주장, 즉 내선일체론(內鮮一體論)이다. 영화 안에서 일제의 전시동원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근본적으로 내선일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인 지휘관이 새로 입대한 한국인들에게 훈시하는 장면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지휘관은 이렇게 말한다. “군대는 제군들과 농촌 청년들을 동등하게 폐하의 적자로 맞을 것이며 둘 사이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00:23:17) 물론 이 대사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출신지에 상관없이 ‘일왕의 적자’ 또는 ‘일본 국민’이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식민지배 초기부터 일제는 공식적으로 조선인과 일본인을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방침을 내세웠지만, 둘 사이에는 엄연히 차별이 존재했다. 호적상 ‘내지인’과 ‘조선인’을 구별하여 표기했던 사실은 둘 사이의 차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사실을 염두에 두면 지휘관의 또 다른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나 부대장은 군대야말로 제군들을 진정한 국민으로 연성하는 최고의 장소라고 단언한다.”(00:24:04) 그는 조선인 역시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국민’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현실과 괴리된 이런 기만적 논리는 철저히 내선일체론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국 국민

부대장이 갓 입대한 조선 청년들에게 훈시하는 장면

 

 

영화 안에서 내선일체의 논리는 자연스럽게 국가주의(Nationalism)와 남성주의(Masculism)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국가ㆍ젠더ㆍ가족ㆍ위생 등 다양한 근대적 개념을 조합해 일제의 전시 정책을 홍보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 국가와 젠더다. 이 두 요소야말로 자원입대를 독려하는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주의는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이 받은 총독의 서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대동아전쟁 중 세 번째 봄을 맞아 드디어 아들과 형제를 폐하의 병사로 입대시키게 되는 귀 가문의 영예에 본인은 충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00:03:11) 하지만 주인공과 그 아버지는 징병 통보에 전혀 슬퍼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오히려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벌이기까지 한다. 이런 장면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을 바라보는 식민권력의 시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들의 시선에서 보면 일제의 침략전쟁은 정당한 것이며, 그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는 그 전쟁이 정당한 것인지를, 무엇을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인지를 묻지 않는다. 내선일체론에 기대어 일본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를 진다는 논리가 구사될 뿐이다.

 

한편, 영화에서 묘사된 ‘지원병’의 삶이 노골적으로 남성주의를 표현한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영화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뚜렷하게 대비된다. 남성이 개인적 감정보다 공공의 대의를 우선시하는 존재로 묘사된다면, 여성은 자신의 감정에 더 충실한 것으로 그려진다. 예를 들어 아들을 군대로 보내는 주인공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태도는 확연하게 다르다. 아버지는 아들의 징집을 명예로운 일로 받아들이지만, 어머니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입영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어머니를 진정시키는 주인공의 모습은 아버지의 태도와 유사하다. 이러한 묘사는 남성 캐릭터에게서 ‘강하고 용맹한’ 모습을 강조하는 반면, 여성 캐릭터의 ‘유약함’을 드러낸다. 더구나 군대와 전쟁이라는 배경과 맞물리면서 남성과 여성에 부여된 성적 고정관념은 더욱 부각되는데, 여기에는 남성을 공적인 존재로 규정해 동원의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남자라면 당연히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징병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남성주의

▲ 입대하는 주인공을 대하는 여성과 남성의 상반된 태도

 

 

 

결국 영화 <병정님>은 한국인을 동원하기 위한 일제의 논리를 충실하게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권력은 내선일체라는 전제 위에서 국가주의와 남성주의를 강조해 한국인이 일본의 침략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심지어 주인공의 입을 빌려 “안심하고 소중한 아드님을 군대로 보내라”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당시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물론 일제는 이 선전 영화가 한국인을 자신들의 전쟁에 동원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달랐다. 영화에서는 제국주의적 논리가 정교하고 일관되게 표현되었지만, 현실에서 일제의 식민지배는 구조적인 모순을 안고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내선일체를 외쳤으나 여전히 차별은 한국인의 현실이었다.

 

 

* 이 글은 2015년 2학기 '영어 한국사' 수업에 제출했던 과제물을 한국어로 고쳐서 작성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