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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곽광 고사의 정치적 활용 양상 일고

衍坡 2024. 4. 1. 00:21

최혜미, 2018, 곽광 고사의 정치적 활용 양상 일고, 근역한문학회(49)

 
 

2024.03.31
 

 

 
이 글은 한나라 권신 곽광의 고사가 조선 전기에 어떤 방식으로 독해되었는가에 주목한다. 곽광의 고사가 특정한 정치적 맥락 속에서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담아 활용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게 보면 조선 지배층이 곽광 고사를 언급한 사례는 수사학적 차원에서만 분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발화가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저자는 이 글에서 그 작업을 수행했다. 저자에 의하면, 조선에서는 중종반정을 기점으로 곽광에 대한 평가와 그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양상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의 논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본래 중국에서 곽광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곽광을 “군주의 폐립을 통해 사직을 구원한 공신”으로 규정하는 긍정적 평가다. 다른 하나는 그가 “임금을 압도하여 정권을 전유한 권신”이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다. 반고가 전자의 견해를 부각했다면, 사마광은 후자의 평가를 중시했다고 한다.
 
(2) 조선에서는 대체로 신하의 권력이 왕을 압도할 때 곽광의 사례가 소환되는 경향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국왕권이 강했던 조선 전기에는 곽광이 별로 언급되지 않은 반면, 성종대부터는 곽광이 ‘權奸’의 상징처럼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종반정을 거치면서 곽광이 소환되는 맥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3) 중종반정의 공신들은 거사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곽광의 고사를 활용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군주의 폐립을 통해 사직을 구원한 공신’으로서의 위상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대간도 공신들과 마찬가지로 사직을 구한 곽광의 공로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공신 책봉의 남발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곽광을 소환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곽광과 같은 공훈이 있다면 논공행상 역시 곽광 때처럼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4) 중중과 대간은 똑같이 곽광의 고사를 언급했지만 양쪽의 의도는 달랐다. 대간은 부당하게 정국공신이 된 이들을 가려내야 한다는 맥락에서 곽광의 공훈을 강조했다. 곽광 같이 큰 공로를 세운 인물만 공신의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중종은 곽광이 왕실을 안정시키고 왕을 보필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중시했다. 그렇게 보면 공신들은 왕을 보필해야 한다는 의도에서 곽광의 고사를 언급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논점들은 조선 전기에 곽광 고사가 소환되고 활용되는 양상이 전반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중종 대에 국왕과 공신, 대간이 각각 곽광을 소환하는 의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한 대목은 이 글에서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몇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아 기록해두려 한다.
 
1. 저자의 아이디어는 충분히 참신하고 흥미롭다. 전반적으로 저자가 채택한 방법론과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다만 논의의 완결성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저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할 지점에서 자신의 논의를 끝맺고 있다. 저자의 분석 대상이 곽광 고사를 인용하는 ‘수사’가 아니라 ‘정치적 맥락’임을 고려한다면, 당대의 논의 지형과 역사적 맥락을 좀 더 세심하고 세밀하게 복원해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정작 저자는 이 부분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2. 저자가 곽광 고사를 인용한 ‘정치적 맥락’에 주목한 것은 대체로 퀜틴 스키너로 대표되는 언어맥락주의로부터 이론적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류의 논문들을 읽을 때면 대체로 아쉬운 마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여러 이론적 도구들을 활용해서 과거인들의 말속에 담긴 의도를 읽어내는 것은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언어맥락주의의 방법론을 채택한 것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어맥락주의의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충분히 체득해서 능숙하게 구사하는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