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문록/영화와 드라마

영화 〈리얼〉: 김수현이 주연인 포르노

衍坡 2021. 9. 4. 10:41


어쩌다 영화 〈리얼〉을 두 번이나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영화가 개봉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한창 말들이 많을 때였다. 그때 이 영화가 참 너저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심지어 영화 뒷부분에서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다. 이번에 같은 영화를 다시 보면서도 작품이 난삽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겉멋은 잔뜩 부렸는데 정작 알맹이가 없다는 느낌, 또래 건달을 동경하는 어느 중학생의 로망을 성인판으로 풀어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이 영화 〈리얼〉에 불필요한 장면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는  주인공 장태영A(카지노 보스)와 그의 연인이 교합하는 장면이다. 과연 두 사람이 교합하는 장면이 없으면 그들이 연인 관계인 걸 표현할 방법이 없는가? 아무 맥락 없이 등장하는 교합 장면이 작품 전체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냉정하게 말하면, 이 영화에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몸 전체를 노출하는 모든 장면은 아무런 맥락도 의미도 없다. 즉, 굳이 그 장면이 없어도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성적인 코드를 작품 여기저기에 배치한 것은 자극적인 장면으로 관객을 유도해보려는 얄팍한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안에서 설명되어야 하는 것들이 충분히 설명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서, 장태영B(투자자)는 왜 장태영A와 똑같은 인물이 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한 육체의 두 자아(정신)가 어떻게 각자의 자아를 가진 두 육체(물질)로 분리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감독은 엉성한 스토리 라인의 문제점을 관객의 해석에 맡긴다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한다.




주인공의 유치함도 이 영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 중의 하나다. 김수현이 연기하는 장태영A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딱 두 가지다. 육두문자를 날리거나 때려부수거나. 더구나 영화 가장 초반에 장태영A가 본인을 소개하는 방식을 보면 허세의 결정체다. 꼭 중학교 때 학교에서 일진 행세 하고 다니던 어린 양을 보는 느낌이다. 더구나 장태영B는 거의 병적으로 장태영A가 되려고 하는데,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개연성이 전혀 없다.

여성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도 심각한 문제다. 전체 스토리 안에서 여성 캐릭터는 그저 장태영의 '소유물' 정도로 활용된다. 장태영B가 장태영A와 그 연인의 성관계 장면을 몰래 카메라로 들여다 보는 장면도 영화 제작자들이 그런 행위의 윤리적 문제에 둔감하다는 걸 보여준다. 여성의 몸을 촬영하는 방식이나 스트립쇼를 보여주는 방식 등을 보면 영화 제작자들이 여성의 신체에서 성적인 측면들을 부각하면서 그것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전반적으로 영화의 스토리가 짜임새 있지도 않고, 진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캐릭터가 입체적이거나 행위논리가 개연성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영화를 다 본 다음에 기억에 남는 것은 몇 가지 자극적인 장면과 영화 말미의 우스꽝스러운 격투 장면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김수현이 주인공인 코미디 포르노'라고 평가하고 싶다.